정우성 “난민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다”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07 11:00
  • 호수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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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보호활동 5년’ 책으로 엮어 낸 배우 정우성

“난민에 대한 가장 큰 편견은 난민이 우리와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 그리고 이들을 하나의 성격을 가진 대규모 집단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난민은 우리와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위험에 봉착해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도피한 사람들이다. 우리도 전쟁 앞에서, 박해 앞에서 언제든 갑자기 난민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난민은 각자 사정이 다르고, 성품도 다르고, 저마다 다른 역사, 피신의 이유, 꿈을 가진 개개인이다.”

배우 정우성씨가 난민 구호활동을 펼치는 와중에 쓴 에세이집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을 펴냈다. 2014년 유엔난민기구 명예사절이 됐고, 2015년 6월부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해 온 그는 2014년부터 매해 한 차례 이상 해외 난민촌을 찾아 난민을 직접 만나 그들의 소식을 우리 사회에 전해 왔다. 그동안 난민 보호활동을 하며 만난 이들의 이야기와 난민 문제에 대한 생각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누구라도 난민촌에서 난민들을 만나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사실과 유엔난민기구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연예인이 사회공헌 차원에서 비영리기구 활동을 하는 사례는 그동안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정씨의 사례는 조금 특별하다. 2018년 6월 제주도에 도착한 500여 명의 예멘인 난민 신청자에 대한 수용 문제를 두고 뜨거운 찬반 논란이 있었을 때, 그는 논쟁의 한가운데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도 열린 자세로 토론에 임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난민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다. 난민 문제를 남의 나라 문제라고 생각하고 외면하지 않는 것, 내가 사는 곳의 이웃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국제사회로까지 넓히는 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정우성 지음│원더박스 펴냄 │216쪽│1만3500원 ⓒ NHCR/SEIHON CHO
《내가 본 것을 당신도 볼 수 있다면》 정우성 지음│원더박스 펴냄 │216쪽│1만3500원 ⓒ NHCR/SEIHON CHO

2015년부터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

정씨는 난민을 만날수록 이들이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내전이나 폭압 등 특수한 상황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우리와 다를 바 없었던 평범한 사람들임을 깨달았다고 이야기한다. 난민촌이라고 웃음이 없을 리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보다 아이들 교육 문제를 더 걱정하는 부모들을 마주하며 난민에 대한 이해가 확장되어 갔다고 고백한다.

“이들은 자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기에 난민 지위를 통해 다른 국가의 보호를 받고자 하는 것인데, 난민 지위마저 얻지 못한다면 지구상에 그들을 보호할 정부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이들은 아파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직장을 구할 수도 없고, 아이들 역시 학교에 가지 못한다.”

유엔난민기구의 보호 대상자에는 법률상의 난민뿐 아니라 국내 실향민, 난민 지위 신청자, 귀환민 등이 포함된다. 엄격한 의미의 ‘난민’은 법적으로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사람을 뜻하지만, 통상적으로 앞의 보호 대상자를 통칭하는 의미로 ‘난민’이라는 표현이 쓰이기도 한다.

“난민을 만나며 한 가지 확인한 게 있다면, 그들 누구도 스스로 난민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 원하지도 않았던 난민이 됐다.”

정씨는 난민들의 열악한 삶을 마주하게 되면 자주 말문을 잃다가도 그들이 희망을 갖고 내일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인류의 불가사의한 힘을 확인했다. 하지만 그가 쉽게 희망을 이야기하지 못한 곳이 있다. 바로 방글라데시의 쿠투팔롱 난민촌이다. 2017년 여름 미얀마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로 갑작스레 70만 명에 가까운 로힝야족이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되었고, 이들은 이미 30만 명의 로힝야족이 난민촌을 이루고 있던 쿠투팔롱으로 몰려들었다.

 

“공감과 이해로 가는 작은 통로가 됐으면”

“쿠투팔롱 난민촌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17년 12월이었다. 그해 8월 폭력 사태의 기억이 생생한 사람들을 만났다. 로힝야 난민은 달랐다. 그들은 눈앞에서 가족이 총살당하는 모습을, 갓 태어난 아기가 불타는 덤불에 던져지는 모습을 봐온 사람들이다. 마을 주민 전체가 몰살되거나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보고 겪으면서 이들은 무엇을 자신의 조국이라고 불러야 할지조차 잊은 사람들이다.”

정씨는 난민 문제에 대해 온정적으로만 접근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 차원에서 정치적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하고, 이를 위해 각국에서의 여론이 중요하며, 그러하기에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한 참여라고 이야기한다. 지난 5월 그는 쿠투팔롱 난민촌을 다시 찾았다.

“산을 밀어 만든 벌판에 끝없이 이어져 있는 판잣집으로 된 인구 100만의 도시…. 그런 난민촌이라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유엔난민기구와 협력단체,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사람들의 얼굴이 한결 밝아져 있었다. 하지만 로힝야 난민들을 위한 영구적인 해결책은 요원해 보였다. 난민촌에서의 생활이 아무리 안정적이라고 해도 일시적인 해결책이다. 국제사회가 함께 힘을 합쳐서 미얀마 및 방글라데시 정부가 이들의 자발적이고 안전한 귀환의 조건에 합의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정씨는 책을 정리하면서 ‘인권, 평화, 사랑’을 힘주어 말한다. 어쩌면 너무 당연하고, 그래서 때론 너무 막연하게 느껴지는 단어들이지만, 난민 문제를 접하며 이 단어의 소중함에 대해 더욱 크게 느끼게 된다고 말이다.

“경험 없이는 공감이 어렵다. 난민에 대해 막연히 멀게만 느끼는 분들을 정말 이해한다. 우리 사회에 가짜뉴스가 너무 많은데, 직접적인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무작정 이해를 요구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이 책이 공감과 이해로 가는 작은 통로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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