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초가 처한 《정글의 법칙》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13 12:00
  • 호수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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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개념과 무책임 넘어 거짓말·조작 논란까지 불거져

SBS 《정글의 법칙》이 태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비난을 받았다. 대왕조개 논란 때문이다. 지난 6월29일 방영된 태국 남부 꺼묵섬 편에서 출연자 이열음이 대왕조개를 채취하고, 다른 출연자들이 함께 먹는 모습이 등장했다. 그런데 태국 언론이 대왕조개가 멸종 위기로 보호받는 종이라며 문제를 제기했고, 그 후 태국 국립공원 측에서 이열음을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대왕조개 불법 채취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만 바트(약 76만원) 이하의 벌금형 또는 두 처벌을 함께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태국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자 한국에서도 논란이 불거졌는데, 처음엔 문제가 잘 수습되는 것 같았다. 제작진이 “현지 공기관의 허가하에 그들의 가이드라인을 준수해 촬영했다”고 해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국 국립공원 측으로부터 고발까지 당하는 상황이 되자 두 번째 입장을 내놓으며 “현지 규정을 사전에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고 촬영한 점에 깊이 사과드린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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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정글의 법칙》에서 멸종 위기종인 대왕조개를 채취해 논란을 일으킨 이열음 ⓒ SBS

《정글의 법칙》을 덮친 4대 위기

그때 태국 매체가 《정글의 법칙》 제작진이 태국 관광스포츠부에 제출했다는 공문을 공개했다. ‘태국 내에서 사냥하는 모습을 촬영하거나 방송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약속을 하고도 버젓이 대왕조개 채취 모습을 방송했다면 태국 당국을 우롱한 셈이 된다. 태국 현지 여론이 대단히 악화됐고 대왕조개를 채취한 이열음을 반드시 처벌받게 하겠다는 입장이 나왔다.

한국에서도 제작진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들끓었다. 이열음은 잘못이 없다며 보호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제작진은 세 번째 입장을 내놓으며 ‘사과와 조치, 이열음에 대한 보호’를 약속했다. 하지만 대중의 분노가 가라앉지 않는다. 장수 예능 《정글의 법칙》에 위기가 닥쳤다.

첫째, 무(無)개념이 문제다. 《정글의 법칙》은 해외 오지에서 숙박을 하며 현지 동식물을 먹는 프로그램이다. 그렇다면 해당 촬영지의 상황, 특히 해선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철저히 숙지하고 촬영에 임해야 한다. 우리가 해외 오지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사고 위험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멸종 위기종을 아무 생각 없이 채취할 정도였다면 제작진의 무개념이 너무나 심각하다.

또 다른 무개념은 대왕조개가 보호받는 종이란 걸 알고도 그냥 촬영했을 가능성이다. 일부 스쿠버다이버들은 대왕조개 채취가 불법이란 건 그 세계에서 상식이기 때문에 관련 전문가들을 대동하고 유사 촬영을 많이 하는 제작진이 몰랐을 리 없다고 주장한다. 만약 알고도 별생각 없이 무시한 것이라면 무개념의 죄질이 더 나빠진다.

두 번째 문제는 거짓말이다. 첫 번째 입장에서 현지의 허가를 받고 가이드라인을 준수했다고 밝혔다. 두 번째 입장에선 현지 규정을 숙지하지 못했다며 단순 무지에 의한 실수인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제작진이 현지에서 제출한 촬영계획서엔 사냥하는 모습을 찍지 않는다고 돼 있었다. 처음 두 번의 발표 내용과는 달리 작정하고 속였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셋째, 무책임이 문제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는 제작진의 설정 속에서, 제작진의 지시에 의해 움직인다. 촬영 화면을 방송할지 말지도 전적으로 제작진이 결정한다. 《정글의 법칙》에선 채취한 음식물을 먹을지 말지도 제작진이 검수한다고 알려졌다. 이렇게 프로그램 측의 책임이 큰데도 태국에서 이열음을 고발한다고 한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다가 국민 공분이 고조된 후에야 뒤늦게 관련 입장을 밝혔다.

넷째, 조작 의혹도 문제다. 일부 스쿠버다이버들은 일반인이 대왕조개를 맨몸으로 잠수해 채취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강력하게 고정됐고 발이나 팔이 낄 염려도 있기 때문에 전문가에게도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전에 스태프가 도구를 활용해 대왕조개를 채취해 놓고 이열음에겐 그냥 들고나오는 연기만 시킨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과거 《패밀리가 떴다》가 참돔 낚시 조작 논란 등으로 큰 타격을 입은 전례가 있다. 《정글의 법칙》은 이미 몇 차례 조작 논란을 겪은 적이 있어 이번 일까지 조작으로 밝혀지면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진 것이다.

그동안 오지 탐사 예능이 그럴듯한 그림 만들기에만 몰두하면서 반드시 챙겨야 할 것들을 무시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1999년 KBS2 《도전! 지구탐험대》에선 배우 김성찬이 라오스 촬영 중 뇌성 말라리아에 감염돼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예방약을 복용시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여행자 보험도 들지 않아 김성찬의 유가족이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2005년엔 같은 프로그램의 콜롬비아 촬영 중 정정아가 아나콘다에 물려 부상당했다. 이때도 여행자 보험에 들지 않았다.

SBS 《정글의 법칙》의 한 장면 ⓒ SBS

오지 탐사 예능의 문제

이런 안전 불감증과 함께 촬영 지역에 대한 배려와 존중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현지에서 보호하는 것을 무단으로 촬영한다든가, 하지 말라는 행위를 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드론 비행이 금지된 지역에서 한국 촬영팀이 드론을 띄웠다가 현지 문화재와 드론이 충돌한 사건이 있었다. 과거엔 이런 것들이 하나의 무용담으로 전파됐다. 현지에서 금한 것인데 우리 촬영팀이 기지를 발휘해 몰래 찍어 왔다며 득의양양한 후일담이 전해지곤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상이 방송돼도 문제가 없었다. 해외에선 국내 예능을 보지 않았고, 국내 시민의식도 그런 문제를 비판할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젠 한류 시대다. 우리 예능을 해외에서 다 챙겨 본다. 우리 시민의식도 성장해 촬영팀의 민폐행위를 단호히 비판한다. 이렇게 세상이 달라졌으면 방송사도 변했어야 했다.

방송사의 무책임도 그전부터 나왔던 얘기다. 녹화방송 내용으로 인해 생긴 논란은 대부분 제작진 탓이다. 출연자는 재밌게 하려다 창졸간에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걸 거르는 게 제작진 몫이다. 보통 편집 과정에서 수십 회 이상 촬영분을 돌려본다. 그러고도 삭제하지 않고 자막처리까지 해 가며 방송했다면 제작진 책임인 것이다. 그런데 방송 내용으로 출연자가 질타받을 때 방송사가 나서서 우리 책임이라며 출연자를 보호해 준 적이 거의 없다. 쯔위 대만 국기 사태 때도, 그 국기를 쯔위에게 들린 것이 제작진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도 쯔위가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방송사에서 나서지 않았다.

이번 《정글의 법칙》 대왕조개 사태는 촬영 과정과 사후 대처 과정에서 그동안의 문제들이 집약적으로 나타난 참사였다. 해당 제작진을 비롯해 방송가 모두가 반성해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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