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마을 만들기의 성공과 실패
  • 김정헌(화가, 4·16재단 이사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17 18:00
  • 호수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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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에서 해임되고 나서 그다음 해(2009년) 오랜 꿈인 ‘예술로 마을 만들기’를 시도한 적이 있었다. 이름하여 ‘예술과 마을 네트워크’ 줄여서 ‘예마네’다.

서울의 젊은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들던 문래동에 작은 사무실을 만들고 여기저기 수소문해 같이 일할 젊은 친구들을 서너 명 모았다. 20대 후반 젊은 여성 예술가들이었다. 먼저 이들과 의논해 예술가들이 사는 지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제천 박달재 밑의 판화가 이철수, 또 제천 덕산면의 만화가 부부 이은홍·신혜원(이들은 얼마 전 부부의 성평등을 주제로 《평등은 개뿔》이라는 페미니즘 자서전을 낸 바 있다), 봉화 비나리마을의 송성일(귀농 15년 차 농부), 유준화(화가) 부부, 지리산 밑 시골에서 동네 청년들과 지리산학교를 운영하는 박남준 시인, 강원도 평창의 폐교에서 이선철이 주도하는 ‘감자꽃 스튜디오’ 등.

이들은 하나같이 동네 주민들과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잘 지내고 있었다. 이들을 둘러보면서 한편으로 ‘예마네’ 거점도 알아보았다. 그러던 차에 제천 수산면 대전리라는 곳에 폐교가 있다는 걸 알고 제천 교육지청에서 빌려 우리는 곧 그 폐교에 ‘마을이야기학교’를 만들었다.

ⓒ 예마네 마을이야기학교 페이스북
ⓒ 예마네 마을이야기학교 페이스북

마을이야기학교의 개소식을 대전리 노인회장, 이장 등의 협조를 받아 동네잔치로 치르고 나서 우리는 먼저 팀을 짜 대부분이 노인인 주민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면담을 했다. 거의 인터뷰 수준이었다. 답답해하며 세월을 죽이던 노인들은 반가워했다. 이를 근거로 우리들은 마을 잡지와 달력을 만들고 폐교에다 각종 교실을 열어 학교를 문화사랑방으로 바꾸어 놓았다. 제천 음악영화제와 연계해 마을 영화제도 꾸미고, 학교 빈 텃밭에 농사도 지었다. 때로는 마을 동네갈이(1년에 한 번 열리는 마을 총회)에 참가해 주민들과 같이 어울리기도 했고 마을 주민들을 도와 농사일도 거들었다.

나는 화가로서 오랫동안 ‘마을 공동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1980년대에 점점 폐가가 늘어나는 농촌으로 답사를 다니고 그 풍경을 눈에 담아 많은 그림을 그렸다. ‘마을을 지키는 김씨’나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 등이 그때 나온 작품들이다. 한동안은 진안 백운면의 마을 만들기에 자문위원을 자청해 마을 만들기의 사례를 들여다보기도 했으며 기회 있을 때마다 고인이 된 건축가 정기용,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교수, 지금은 서울시장인 박원순(그 당시 아름다운재단 사무처장) 등과 함께 지역의 마을 살리기 현장을 답사 다니곤 했다.

그러나 막상 제천 대전리 폐교에서 용감(?)하게 시작한 마을 만들기는 현장에 부딪히자 어려움이 한둘씩 나타났다. 문제는 재정이었다. 자비와 ‘예술교육 지원사업’ 같은 정부 지원사업으로 버텨오던 대전리 사업이 4년 만에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충북 도지사나 제천시장을 만나 위탁사업 제안을 했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만 4년 만에 도저히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해산을 선언했다. 마을 만들기에 실패한 것일까.

예술로 지역 만들기를 너무 낭만적으로 접근한 것이 문제였다. 당연히 마을에 내려가 거기서 주민들과 함께 살아야 했는데 그렇게 못했으니 실패는 예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실패 사례를 지켜보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인생이 다 그렇듯이 인생의 성공과 실패란 없다. 그래서 나는 실패와 성공은 동전의 앞뒤와 같다고 지금도 자위하고 있다. 실패가 곧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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