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냉증 방치하다 ‘레이노증후군’ 키운다
  • 노진섭 의학전문기자 (no@sisajournal.com)
  • 승인 2019.07.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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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바람에도 손발 시리고 창백해지면 진료 필요

여름철에도 손이나 발이 유난히 차가운 사람이 있다. 스스로 수족냉증이라고 진단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쉽다. 그러나 그 원인이 치료가 필요한 질병일 수도 있다. 치료받지 않고 방치하다 자칫 병을 키워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죽어가는 괴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수족냉증은 추운 환경에서는 물론이고 그렇게 춥지 않은 기온에도 손발이 차가운 증상을 말한다. 내 손이나 발을 다른 사람이 만질 때 차갑다고 느끼면 수족냉증이다. 때로는 무릎이 시리며 아랫배와 허리 등 다양한 신체 부위에서 냉기를 느끼기도 한다. 이런 증세가 심해 여름에도 장갑을 끼거나 양말을 신고 잠자리에 드는 사람이 있다.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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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족냉증 대부분은 일시적인 혈액순환 장애 때문에생긴다. 그러나 특정 질환이 원인인 경우도 있다. 수족냉증을 유발하는 가장 흔한 질환은 레이노증후군(또는 레이노드증후군)이다. 레이노증후군은 1862년 이 병을 처음 발견한 프랑스 의사 모리스 레이노드의 이름에서 따왔다. 병명은 다소 낯설지만, 레이노증후군 유병률은 인구의 약 10%에 이를 정도로 드물지 않다. 최근 걸그룹 쥬얼리 출신 조민아가 자신의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레이노증후군 투병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 질환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도 높아졌다.

레이노증후군의 발병 원인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가족력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지만 아직 특정 유전인자를 찾지 못했다. 다만, 추위·스트레스·진동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이런 환경에 노출됐을 때 말초혈관에 피가 잘 돌지 않아 누구나 손발이 차가워진다. 그런데 혈관 수축을 담당하는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반응해 혈관을 비정상적으로 조여 혈액이 통하지 않는 것이 레이노증후군이다. 손가락 끝, 발가락 끝, 코끝, 귓불 등의 말초혈관이 심하게 오그라드는 것이다. 혈액순환이 안 되므로 저린 느낌과 같은 감각 이상이나 통증이 생긴다. 피부 조직에 산소가 부족한 현상이 생기므로 피부가 헐거나 죽어가는 괴사로 이어진다.

2018년 레이노증후군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남자 38%와 여자 62%로, 여성이 남성보다 1.5배 이상 많다. 특히 20~40대 여성에서 잘 생긴다. 남자보다 여자에게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초경·임신·출산 등으로 인한 호르몬의 변화 △설거지·빨래·청소 등으로 찬물에 많이 노출되는 환경 △짧은 치마나 크롭티(배꼽티) 등 하체를 차갑게 만드는 의상 △자궁이나 난소 등 남성보다 내장기관이 많아 내부 장기에 혈액이 몰리는 것 등 다양한 요인이 있다. 또 남자보다 여자의 혈관이 더 가늘어 수족냉증이 잘 생긴다.

특히 설거지나 청소 등 물을 자주 접하는 주부에게 손발이 찬 현상이 흔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자세한 원인을 찾기보다는 여기저기서 들은 민간요법이나 자가 처방으로 버티면서 병을 키우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건강의 변화는 아무리 작아도 처음부터 원인을 찾아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빈 서울아산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레이노증후군이 있다면 피가 잘 돌지 않기 때문에 손이나 발에 상처가 생겼을 때 잘 아물지 않는다. 심하면 피부 괴사도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언제 병원을 찾는 게 좋을까. 손이나 발 등 특정 신체 부위가 냉장고·얼음·찬물·에어컨 등 추위에 노출될 때 비정상적으로 시리다면 레이노증후군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겨울에 외출할 때마다 손발이 시리거나 여름철 에어컨 바람에도 냉기를 느끼면 레이노증후군일 가능성이 크다. 또 체온과 손발의 온도 차이가 2도 이상일 때, 수족냉증이 2년 이상 이어질 때도 마찬가지다.

2년 이상 된 수족냉증이라면 질병 의심해야

또 다른 레이노증후군의 특징은 피부색의 3단계 변화다. 1단계는 말초혈관에 피가 잘 돌지 않아 손가락 끝이나 발가락 끝의 피부색이 하얗게 또는 창백하게 변한 상태다. 2단계엔 하얗던 피부색이 푸른색으로 변한다. 혈액순환이 안 되는 증상이 계속되면서 산소 공급이 안 돼 나타나는 증상이다. 3단계는 다시 혈관이 넓어지고 혈액 공급이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피부색이 다시 붉은색을 띠는 시기다. 일부는 붉어지는 도중에 얼룩덜룩한 색을 띠기도 한다. 그러나 3단계를 차례대로 거치지 않고 2단계에서 점차 악화해 해당 부위가 괴사할 수 있으므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유빈 교수는 “레이노증후군은 손이나 발이 시리기도 하지만, 피부색이 하얗거나 창백하게 변하는 특징이 있다. 추위에 노출된 피부의 색이 변하면 거의 레이노증후군일 가능성이 크므로 한 번쯤은 병원을 찾아 진료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레이노증후군이 의심될 때 찾아갈 의사는 류머티스내과나 혈관외과 전문의다. 의사는 환자의 손이나 발의 냉기를 확인한 후 추위나 찬물에 피부가 노출됐을 때 피부색 변화와 감각 이상을 확인한다. 그 외에 혈관 검사와 체온 측정도 한다. 우리 몸에서 모세혈관 모양을 관찰하기 쉬운 부위는 손톱이어서 손톱 밑 모세혈관을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도 있다. 특정 약물도 원인이 될 수 있으므로 먹고 있는 약을 확인하기도 한다.

일시적인 수족냉증이라면 특별한 치료를 받지 않아도 증상이 호전된다. 또 수족냉증의 원인이 레이노증후군이라고 진단받았다고 해서 모두 심각한 것은 아니다. 레이노증후군은 일차성과 이차성으로 나누는데, 일차성은 피부 괴사 등 큰 문제로 이어지는 일이 드물다. 전체 레이노증후군의 약 70%는 일차성이다. 주로 30대 이전 젊은 여성에게 흔하다.

이차성은 자가면역질환(면역세포가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병)에 의한 것이어서 이에 대한 치료가 필요하다. 치료를 받지 않으면 피부 괴사 등 심각한 상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이노증후군을 유발하는 자가면역질환으로는 전신성 경화증, 루푸스, 류머티스 관절염 등이 있다. 전신이 굳는 전신성 경화증 환자의 약 90%, 루푸스 환자의 약 30%가 각각 레이노증후군을 경험한다. 전신성 경화증은 폐렴을 유발할 수 있고, 루푸스는 신장과 심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반드시 병원 진료가 필요하다. 류머티스 관절염 환자의 10%에서도 레이노증후군이 동반된다. 이차성 레이노증후군은 40대 이후에서 발병한다.

 

냉장고 음식 꺼낼 때도 장갑 이용

단순한 수족냉증이나 일차성 레이노증후군은 증상이 경미하므로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의학적으로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찬 것을 피하라’다. 추위와 접촉하지 않으면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예컨대 겨울에는 장갑·양말·모자·스카프·부츠 등을 꼭 착용하고 활동한다. 증상이 심하다면 실내에서도 장갑과 양말을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다. 추운 날 외출할 때는 손난로를 휴대해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코끝과 귓불이 추위에 민감할 경우 귀마개와 얼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도 좋다. 추운 날엔 자동차를 타기 전에 미리 히터를 틀어 차 내부 온도를 높일 필요도 있다.

겨울철뿐만 아니라 여름철에도 냉장고에서 차가운 음식을 꺼낼 때 일반 장갑이나 오븐용 장갑을 사용해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에어컨 온도를 너무 낮지 않게 유지하며 바람이 피부에 직접 닿지 않게 유의해야 한다. 차가운 물이나 음료를 마시는 컵의 재질이 냉기를 전달하지 않는 것으로 준비하면 좋다. 조진현 강동경희대병원 혈관외과 교수는 “아이스크림이나 아이스커피와 같은 차가운 음식을 먹거나 마신다고 레이노증후군이 악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차가운 음식이나 물건과 접촉하는 것이 문제이므로 차갑지 않은 용기를 사용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되도록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레이노증후군 예방법이다. 또 고혈압약을 먹는 환자 가운데 손발이 유난히 차다면 의사와 상담하는 게 좋다. 일부 고혈압약(베타차단제)은 레이노증후군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흡연도 피부 온도를 떨어뜨려 말초혈관을 수축시키기 때문에수족냉증이 있는 사람에게 금연은 필수다. 반복적인 진동도 레이노증후군을 유발한다. 그러나 공사장에서 해머 드릴을 사용하는 사람처럼 일부 직업군에 해당한다. 타이핑, 피아노 연주 등과 같은 작은 진동은 레이노증후군을 일으키거나 악화시킬 정도는 아니다. 조진현 교수는 “레이노증후군 예방에 가장 좋은 방법은 운동이다. 운동할 때 혈관이 이완돼 혈액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약물치료도 각광

이런 방법으로도 레이노증후군을 개선할 수 없을 땐 약물치료를 받을 수 있다. 유빈 교수는 “웬만한 수족냉증은 손발을 따뜻하게 유지하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여름에도 설거지할 때 미지근한 물을 사용하는 게 좋다. 그러나 증상이 심해 일상생활이 힘들거나 예방적인 생활습관으로도 좀처럼 손 시림이나 피부색 변화와 같은 증상이 낫지 않는다면 병원 치료를 받길 권한다”고 말했다.

고혈압 치료제로 사용되는 일부 약물(칼슘통로차단제 등)을 사용하면 손끝이나 발끝의 말초혈관을 확장시켜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 최근 레이노증후군과 관련된 질환이 밝혀짐에 따라 이런 질환을 유발하는 원인 물질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이 치료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예컨대 세로토닌 차단제, 엔도셀린 차단제 등이 레이노증후군 환자에게 좋은 효과를 보인다. 이미 손가락과 발가락에 궤양이 생긴 정도라면 혈관을 확장하는 주사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더 심한 경우엔 혈관 수축을 담당하는 신경(교감신경)의 일부를 수술로 제거하기도 한다. 조진현 교수는 “치료받는다고 해서 손발의 시린 증상이 깨끗하게 사라지거나 차가운 손발이 따뜻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치료받으면 레이노증후군 환자의 50%는 증상이 호전되므로 삶의 질이 향상된다”고 설명했다.

레이노증후군을 의심할 만한 증상

• 차가운 곳에 가면 피부색이 하얗거나

창백하게 변하며, 차가운 물에 손이나 발을 담갔을 때 통증이 생긴다.

• 손이 자주 저리고, 체온과 손발의 온도 차가 2도 이상이다.

• 손발이 차가워진 기간이 2년 이상이다.

레이노증후군을 예방하는 생활습관

• 담배를 끊는다. 흡연으로 피부 온도가 떨어져 말초혈관이 좁아진다.

• 스트레스를 줄인다.

• 규칙적으로 운동한다. 혈액순환에 좋을 뿐만 아니라 운동의 다른 이익도 얻을 수 있다. 추운 날 실외 운동은 의사와 상담할 필요가 있다.

• 장갑과 양말 등으로 손과 발을 따뜻하게 유지한다.

•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따뜻하게 한다.

• 외부 온도가 낮다면 외출을 자제한다.

• 손가락을 흔들거나 풍차처럼 팔을 돌린다.

• 따뜻한 물(뜨거운 물이 아님)에 손과 발을 담그고 움직인다.

• 아이스크림이나 얼린 음식을 먹을 때 피부 접촉을 최대한 피한다.

• 코감기약을 피한다.

• 카페인이 들어 있는 음식을 피한다.

• 더운 실외에서 갑자기 찬 실내로 들어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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