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아베의 도발 허술한 외교
  • 소종섭 편집국장 (jongseop1@sisajournal.com)
  • 승인 2019.07.15 09:00
  • 호수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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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더위를 잊게 한 것은 《이런 전쟁》(T.R 페렌바크 지음, 플래닛미디어)이란 책입니다. 8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인데도 술술 읽혔습니다. 유려하면서도 박진감 있는 문장, 풍부한 자료 섭렵을 바탕으로 한 현장 중심의 서술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다가왔습니다. 늦은 밤 잡으면 좀처럼 놓지 못해 새벽 한두 시까지 잠을 미루기도 했습니다. 몇 년 전 읽었던 《한국전쟁-한국전쟁에 대해 중국이 말하지 않았던 것들》(왕수쩡 지음, 글항아리) 이후 오랜만에 한국전쟁과 관련한 재미있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때도 우리가 한국전쟁에 대해 너무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책에 이런 내용이 있더군요. ‘한국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일본이었다. 한국전쟁으로 미화 수십억 달러가 일본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한국에서 파괴되거나 수명이 다한 미군 차량 수천 대가 일본의 제작소에서 재생되었다. 일본에서는 극동사령부 소속 한국군과 미군이 먹을 식량 수만 톤이 생산되었다. 일본은 큰돈을 벌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식민 지배 이후 패망했던 일본은 한국전쟁의 희생을 바탕 삼아 경제 부흥에 성공했습니다.

7월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서울겨레하나 소속 활동가들이 일본의 경제보복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7월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서울겨레하나 소속 활동가들이 일본의 경제보복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랬던 일본이 다시 한번 우리의 희생을 바탕으로 경제 패권을 쥐려 합니다.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은 여러 가지 복합적 요소가 작용한 결과입니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우리 정부에 대한 불편한 감정, 한국 경제의 성장에 대한 견제, 참의원 선거, 일본 내 혐한론 등입니다. 질적으로 다른 공격 카드를 꺼내 들었기에 해결된다 해도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듯합니다. ‘가깝지만 먼’ 관계임을 다시 한번 각인시켰으니까요. 현재로서는 외교적 해결책 외에는 다른 길이 없어 보입니다. 단기간에 해결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우리로서는 새로운 도전이자 위기입니다. 국가의 미래와 관련해 중대한 국면입니다. 단단히 마음을 먹고 상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을 아껴야 합니다.

이번 사태가 보여준 교훈 중 하나는 외교의 중요성입니다. 일본을 비판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 해결이나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한 정부의 외교와 관련해서는 참 아쉬움이 큽니다. 《이런 전쟁》에는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역사의 교훈을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는 것은 그 교훈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진정으로 뼈아픈 교훈을 얻고 변화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한 것은 외교였습니다. 신라의 김춘추는 고구려·왜·당나라를 오가는 전방위 외교를 펼쳐 한반도의 권력지도를 바꿔놓았습니다. 외교력의 승리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핵심 요소입니다. 쇠퇴하던 원나라와 떠오르던 명나라를 둘러싼 외교 갈등은 고려의 멸망으로 이어졌습니다. 쇄국정책을 고집하며 국제 정세의 흐름을 읽지 못했던 조선은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휘둘리다 결국 패망했습니다. 일본을 비롯한 주변 강국들은 지금도 호시탐탐 우리를 노립니다. 외교는 흔히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합니다. ‘경제 제일주의’라고 하지만 이 또한 외교의 안정화 속에서 가능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일본의 ‘경제 공격’으로 도드라진 ‘강경화 외교’의 현주소는 아쉽기만 합니다. 외교 전략과 팀 전반을 다시 짤 때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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