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지역을 만든다”
  • 안성모 기자 (asm@sisajournal.com)
  • 승인 2019.07.18 14:00
  • 호수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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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홍대 로컬매거진' 《스트리트 H》 장성환 발행인

‘홍대앞’을 대표하는 로컬 매거진 《스트리트 H》가 창간 10주년을 맞았다. 창간호가 곧바로 폐간호가 되는 로컬 매거진의 ‘숙명’을 거스른 이례적인 성과다. 홍대 예술가와 취향 생산자들의 활동, 공간, 정보를 기록해 온 《스트리트 H》는 강산이 바뀌는 동안 쉼 없이 한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7월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상수동 사무실에서 만난 장성환 발행인은 “2009년 창간 때 돈 한 푼 못 벌어도 10년은 만들겠다고 공언했는데 이를 지키게 돼 기쁘다”며 웃음을 보였다. 장 발행인은 대학 시절부터 35년 동안 이곳을 지켜온 ‘홍대통’이다. 연합뉴스 그래픽뉴스팀 창설 멤버이자 동아일보사와 시사저널에서 디자인팀장을 역임한 그는 언론사 생활을 할 때도 홍대앞을 떠나지 않았다.

《스트리트 H》를 만든 이유도 홍대앞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였다. 지난 10년 동안 역사적 맥락 안에서 홍대앞의 현재를 담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 주력해 왔다. 장 발행인은 “이러한 콘텐츠들이 쌓이다 보면 향후 홍대앞 변화상을 읽어낼 역사적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 시사저널 이종현
ⓒ 시사저널 이종현

“다양성이 홍대앞 지키는 기둥”

최근 발행된 《스트리트 H》 창간 10주년 특집은 이 잡지가 지향하는 바를 잘 보여준다. 제목이 ‘골목을 만들면 사람이 모이고 문화가 꽃핀다’로 요즘 가장 핫한 지역인 연남동 세모길의 도시재생 사례를 다뤘다. 경의선숲길 연남동 구간의 끝자락인 연남동 세모길은 서울시가 도시재생지구로 선정한 낙후지역이지만, 골목건축가와 공간기획자들이 매력적인 골목문화를 만들어보자는 뜻을 모아 지역주민과 함께 상생을 시도하고 있다.

“《스트리트 H》에서 H는 휴먼(Human)이기도 합니다. 결국 사람이 중요하죠. 사람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지역을 만듭니다. 그런 만큼 사람이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이 모인다는 게 그동안 축적해 온 홍대앞의 가치인 거죠.”

‘골목’을 주목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홍대앞도 많은 부침을 겪었다. 임대료가 급등해 원주민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을 여러 차례 경험했다. 대로변 상권은 대부분 자본이 차지했다. 하지만 여전히 꼬불꼬불 이어진 골목을 중심으로 혁신의 움직임이 꿈틀댄다. 장 발행인은 홍대앞이 지닌 생명력의 근원으로 우선 ‘다양성’을 들었다.

“과거 홍대앞은 상대적으로 변두리라서 문화적 토양을 쌓을 수 있었어요. 종로에 몰려 있던 출판사가 홍대앞으로 대거 이동했죠. 출판뿐 아니라 음악, 미술,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젊은 예술가들이 진지를 구축했습니다. 지금도 이런 다양성이 홍대앞을 지키는 기둥이에요.”

또 하나는 ‘확장성’이다. 이는 도시재생 전문가들이 홍대앞을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홍대앞을 롤모델로 삼은 여러 재생 지역이 극심한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으며 활로를 찾지 못한 데는 확장성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장 발행인은 “밀려나야 한다면 밀려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홍대앞은 상수동, 합정동, 연남동, 창전동, 그리고 망원동 일부까지 아우릅니다. 단순히 지역만 확대되는 게 아니라 그 문화가 함께 확장돼야 해요. 그런 측면에서 홍대앞은 그동안 축적된 고유성을 지키며 확장하고 있는 거죠.”

《스트리트 H》 창간 10주년호 표지(맨 위)와 2018·2019년 말로피에 어워드를 수상한 인포그래픽 포스터 ⓒ 장성환 제공
《스트리트 H》 창간 10주년호 표지(맨 위)와 2018·2019년 말로피에 어워드를 수상한 인포그래픽 포스터 ⓒ 장성환 제공

“시대의 변화,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스트리트 H》는 창간호부터 홍대 지도를 자체 제작해 꾸준히 업데이트해 왔다. 121권의 책이 나왔으니 지도도 121장 존재하는 셈이다. 창간호 지도와 창간 10주년호 지도를 함께 놓고 보니 지난 10년간 홍대앞 변천사가 확연히 드러났다. 장 발행인은 “흔히 지도가 위치 정보만 알려준다고 여기는데 시간이 지나면 존재 정보를 알려주게 된다”고 지적했다.

“자고 일어나면 가게가 없어지고 또 새로운 가게가 생겨나죠. 그런데 인간의 기억은 유한해요. 매월 지도를 업데이트하다 보니 해당 공간이 언제 생겨서 언제 사라지고, 또 어디로 이동했는지 추적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셈이죠.”

정보를 시각화해 ‘한 장의 책’처럼 보여주는 인포그래픽(Infographics)에도 심혈을 기울여왔다. 2015년부터 매월 인포그래픽 포스터를 제작해 잡지와 함께 배포하고 있다. 음식, 도시, 출판 등 다양한 테마로 제작된 인포그래픽 포스터는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인포그래픽계의 퓰리처상이라 불리는 말로피에 어워드를 두 차례 수상했고, 일본의 타이포그래피협회와 아시안 미디어 어워드에서도 상을 받았다.

《스트리트 H》는 창간 10주년을 맞아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그동안 다양한 판형과 디자인으로 제작된 잡지 121권을 1년 단위로 묶어 총 10권의 특별 에디션을 출간한다. 이와 별개로 121권을 묶은 영인본도 선보일 예정이다. 또 디지털 인쇄를 통해 독자가 관심 있는 부분만 발췌해 인쇄본으로 구입할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할 계획이다.

“종이 매체의 위기라고 하는데 형태의 변화에도 수요는 있다고 봐요. 특히 잡지가 가야 할 지점은 소장용이라고 생각해요. 수집할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과월호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비싸질 수 있는 거죠. 우리 잡지도 자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려고 해요. 그 생존의 토대는 결국 우리 콘텐츠에서 찾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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