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상사라고 직장에서 함부로 하다간 ‘큰코’
  • 김재태 기자 (jaitaikim@gmail.com)
  • 승인 2019.07.16 14:2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월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사적인 용무 지시 등 해당
ⓒ pixabay
ⓒ pixabay

7월16일부터 직장에서 관계상 우위를 악용해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근로기준법 개정)'이 시행된다. 이 법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직장 내 막말과 따돌림이 근절되는 계기로 작용할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다만 각 직장에서는 어떤 행위가 괴롭힘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적지 않게 혼란이 빚어질 가능성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날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명시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된다. 개정법은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법상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려면 △직장 내에서 지위나 관계의 우위를 이용할 것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설 것 △그 행위가 노동자한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일 것 등 세 가지 요건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지위의 우위'란 직접적인 지휘명령 관계에 놓여 있지 않더라도 회사 내 직위·직급 체계상 수직관계를 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관계의 우위'는 개인 대 집단과 같은 수적 측면, 나이·학벌·성별·출신지·인종 등 인적 속성, 근속연수·전문지식 등 업무 역량, 노조·직장협의회 등 노동자 조직의 구성원 여부, 감사·인사부서 등 업무의 직장 내 영향력, 정규직 여부 등에서 상대방이 저항 또는 거절하기 어려울 개연성이 높은 상태로 인정되는 경우를 뜻한다. 

괴롭힘에 해당하는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는 행위'는 ‘사회 통념에 비춰 볼 때 업무상 필요성이 인정되기 어려운 행위’라고 명시하고 있다. 구체적이고 반복적으로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는 등 인간관계에서 용인될 수 있는 부탁의 수준을 넘어 행해지는 사적 용무 지시 등이 이에 해당된다. 또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폭언·욕설을 수반한 업무지시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된다. 

다만 법에 명시된 직장 내 괴롭힘 개념과 요건 등이 모호한 만큼 어떤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되는지를 놓고 현장에서는 당분간 여러 형태의 혼란과 마찰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 대해 집요하게 성과를 점검하는 행위를 괴롭힘으로 볼 것인지를 놓고 사례에 따라 해석이 달리 나올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성과 점검이 사회적 통념에 따라 행해진 경우는 원칙적으로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사회적 통념'이 무엇이냐를 놓고도 추가적인 논쟁이 뒤따를 전망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월21일 내놓은 메뉴얼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지는 당사자의 관계, 행위가 행해진 장소 및 상황, 행위가 계속적인 것인지 여부 등의 구체적인 사정을 참작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또 객관적으로 봤을 때 평균적인 사람의 입장에서 신체적·정신적 고통 또는 근무환경 악화가 발생할 수 있는 행위가 있고 그로 인해 피해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 또는 근무환경의 악화라는 결과가 발생했다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 

아울러 직장 내 괴롭힘 행위가 발생한 장소는 반드시 사업장 내일 필요가 없으며 사내 메신저,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 등 온라인에서 발생한 경우에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된다. 

고용노동부가 기존에 공개한 매뉴얼에 따르면, 육아휴직을 끝낸 직원에게 이전과 다른 업무를 배정한 후 다른 직원들에게 따돌림을 지시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직장 내 괴롭힘 사례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 밖에 직장에서 흔히 갖게 되는 회식과 관련한 문제도 자주 언급된다.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회식을 강요하는 경우부터 시작해, 술자리를 만들어 보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경우, 회식 자리에 늦었다고 많은 술을 강제로 권유하는 경우, 따돌림 수준으로 식사 자리에서 배제하는 행위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현장에서 대체로 따돌림인지 아닌지 애매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업무상 적정 범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예컨대 부하 직원의 미흡한 업무 처리로 인해 상사가 보완 지시를 반복해서 내렸고, 이로 인해 부하가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업무상 적정 범위에 해당할 수 있어 여러 가지 구체적인 정황을 살펴봐야 한다. 

일반적인 인사상 불이익도 마찬가지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승진을 하려면 우수한 고과가 필요한데 이를 오랜 기간 받아 오지 못한 직원이 문제제기를 할 경우, 평가 저하가 의도된 괴롭힘이라고 볼 수 있는 다른 사실관계가 제시돼야 한다. 

이번 개정 법안에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대한 직접적인 처벌 규정은 포함되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와 관련해 최초로 입법화되는 점 등을 고려해 처벌보다는 사업장 내의 자율적 시스템으로 규율해 나가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직장 내 괴롭힘을 가한다고 해서 가해자에게 직접적인 처벌을 할 수 있는 조항은 개정 근로기준법에 포함돼 있지 않다. 단,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다는 신고를 접수하거나 사건을 인지했을 경우 지체 없이 사실 확인을 하는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 이어 괴롭힘의 행위가 사실인 것으로 드러나면 사용자는 피해자가 요청하는 근무지 변경, 유급휴가 등의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 

반대로 가해자에게는 징계나 근무 장소 변경 등의 불이익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것이 흔히 괴롭힘 방지법을 설명할 때 언급하는 '처벌'이다. 아울러 누구든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알게 된 경우 그 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고, 사용자는 신고를 접수하거나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에는 지체 없이 그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또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신고한 노동자와 피해노동자 등에게 해고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된다. 직장 내 괴롭힘 발생사실을 신고하거나 피해를 주장했음을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 처우를 하는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된다. 

또한 개정법에 따라 상시 노동자 10인 이상 근무하는 사업장은 취업규칙에 사내에서 금지되는 직장 내 괴롭힘 행위, 직장 내 괴롭힘 예방교육, 재발방지 조치 등의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에 대한 사내 징계규정을 신설 또는 강화하는 데는 노동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조 또는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하다.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이제 첫발을 뗐지만, 기업에서 실제적인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법 규정상 당장에 기업이 체계적 처벌을 내릴 수는 없고, 취업규칙을 변경하고 그것을 직원들이 숙지하는 데까지도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인 '직장갑질119'의 관계자는 "이번 법 시행의 근본 취지는 직장 내 괴롭힘을 자체적으로 근절할 수 있는 기업문화 혁신"이라면서 "법 시행을 계기로 정부가 강력한 처벌 의사를 보인다면 ‘직장 갑질’이 기업 내부 시스템을 거쳐 자연스럽게 정화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반 직장인들 가운데는 아직 어떤 행위가 구체적으로 법에 저촉되는지 아리송하다는 반응이 적잖이 나오고 있다. 개정된 법이 직장 내에서 안착하기까지는 직장 내 교육 등 많은 노력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