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기반 구축’ 취약하단 지적도
이낙연 국무총리의 휴대전화에는 저장된 연락처가 1만5000여 개에 이른다. 2000년 16대 총선으로 정계 입문 이후, 당과 특정 계파를 떠나 두루 인연을 맺어온 덕에 이 총리는 정치권 인맥이 두텁기로 유명하다. 비(非)문재인계임에도 현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발탁된 것 또한 그의 온건한 성향이 인정받은 덕이었다. 그동안 총리공관에 초대받았던 인사들의 면면만 봐도 정당이나 계파, 성향 등을 하나로 규정할 수 없이 다양하다는 게 측근들의 얘기다.
이 총리가 한때 손학규계로 분류된 것 또한 이런 성향과 무관치 않다.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에서 민주당을 거쳐 현재 중도 성향인 바른미래당의 대표로 있는 손학규 대표가 지난 2010년 민주당 대표를 지낼 당시 그는 당 사무총장으로 임명돼 함께 손발을 맞췄다. 이후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땐 손학규 캠프의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전남지사 시절,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물러나 있던 손 대표 부부를 지사 공관에 초청해 만찬을 하는 등 이 총리는 비교적 최근까지 손 대표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동아일보에서 2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하던 이 총리의 정치 시작점이 ‘동교동계’이니만큼, 동교동계 원로들과도 꾸준히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민주당 출입기자로 재직하던 시절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자택과 차량을 편하게 드나드는 등 DJ와 가장 친한 기자로 손꼽혔다. 실제 이 총리 스스로 “내 삶은 DJ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고 얘기했을 만큼 깊은 인연을 자랑했다.
10월7일 이 총리는 정대철·권노갑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원로 인사들을 총리공관에 초대해 만찬을 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이 총리는 ‘조국 사태’ 등 정치 현안에 대한 조언을 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원로들은 이 총리가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 1위인 점을 언급하며 이 총리를 위해 앞으로도 힘을 모으자는 얘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진다. 특히 정대철 전 의원은 2014년 이 총리의 전남지사 출마 당시 그의 후원회장을 맡는 등 다방면에서 돕는 사이다.
농해수위 위원장 2년간 정회 단 한 번도 없어
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에서 내리 4선을 지낸 이 총리는 자연스럽게 호남계 의원들과의 인맥도 단단히 유지하고 있다. 대표적 인물로는 그의 지역구를 물려받은 이개호 민주당 의원이 꼽힌다. 그는 스스로 이 총리를 ‘정치적 멘토’로 칭하고 ‘이낙연계’임을 인정하는 등 막역한 관계를 맺고 있다. 2016년 총선 당시 전남 지역에 녹색(국민의당) 열풍이 불었을 때도 이 의원이 민주당을 끝까지 탈당하지 않고 지역구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총리의 조언 덕이었다.
이개호 의원은 10월22일 시사저널에 이 총리를 “대인배”라고 평가하며 일화 한 가지를 소개했다. “2014년 이 총리가 전남지사 출마를 결심한 직후부터 그는 그 지역구 보궐선거에 출마하려던 저를 지역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칭찬하고 다녔습니다. 그땐 다들 그러는 줄 알았어요. 2017년 그가 총리로 발탁되자 제가 후임 전남지사 선거 출마를 준비하게 되면서, 공교롭게 다시 제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거론됐습니다. 그 무렵 지역에 갔는데 못 보던 얼굴들이 있길래 누군지 물었더니, 제가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면 지역구 보궐선거에 도전해 제 자리로 오게 될 사람들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미처 나가기도 전에 벌써 그들이 지역구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서운했습니다. 그런데 예전 이 총리는 본인이 먼저 자신의 후임이라며 절 소개했던 것 아닙니까. 아, 저와는 그릇이 다른 사람이구나 느꼈습니다. 이 총리는 아랫사람에게 까다롭고 자주 꾸짖기도 하지만, 금세 본인이 먼저 풀고 어색한 분위기를 잘 정리하십니다.”
이 의원 외에도 같은 기간 전북지사로 호흡을 맞춰온 동갑내기 송하진 지사와도 절친하다. 또 후임 전남지사이자 광주제일고 3년 후배인 김영록 지사 역시 이 총리와 여러 공통분모를 가진 대표적인 호남계 측근으로 꼽힌다.
옅은 계파색과 합리적인 성향으로 이 총리는 의원 생활 동안 정당을 넘나드는 친분을 두루 유지했다. 2년여간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단 한 번도 ‘정회’가 이뤄진 적 없다는 사실은 이 총리 자신도 공공연히 주변에 자랑하는 일화 중 하나다. 특히 이주영 자유한국당 의원(국회 부의장)과는 대학 시절부터 함께한 특별한 사이다. 둘은 서울대 법학대학 70학번 동기로, 국회의원이 된 후 계속 끈끈한 우정을 유지했다. 18대 국회 때 미래한국헌법연구회라는 헌법 연구모임을 함께 출범시켜 활동하기도 했다. 그 밖에 여상규 한국당 의원, 서청원 무소속 의원 등 정치 성향이 다른 중진들과도 총리공관에 초대하고 연락을 주고받는 등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당내 조력자 될 총리실 출신 총선 출마자 많아
총리가 된 후에 그는 총리실을 중심으로 미래 조력자들을 구축해 나갔다. 특히 지난해 말 출범한 정부의 2기 내각 인사 당시엔 청와대가 이 총리의 강력한 인사 추천이 있었다는 사실을 직접 언급했을 만큼 그의 영향력이 한껏 발휘됐다. 정부 출범 때부터 이 총리를 보좌해 온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이 총리의 광주제일고 후배인 노형욱 국무조정실장 등이 대표적이다.
초대 총리 비서실장을 지낸 후 현재 부산 사상구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배재정 전 민주당 의원은 친문 인사인 동시에 이낙연의 사람으로도 분류된다. 향후 친문과 이 총리 간 가교 역할로 주목된다. 현재 민주당 대구 수성을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상식 전 총리실 민정실장과 지용호 전 정무실장 역시 총리실 입성 전까진 이 총리와 특별한 인연이 없었지만, 이젠 이 총리의 대표적인 측근 인사들이다. 이들도 다음 총선에서 각각 대구 수성을과 서울 동대문을 출마를 예고하고 있다.
지용호 전 실장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딱딱하고 엄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한 번도 억지 논리로 강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야당 지도부들과도 종종 막걸리 만찬을 하며 옛날 얘기도 나누고, 마음의 벽 없이 다들 총리님을 대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총선 준비에 나서겠다고 했을 무렵, 국회 본회의장에서 대정부질문 기다리며 장관들이 전부 앉아 있는 자리로 날 데리고 가서 ‘정무실장이 출사표를 던졌다’고 소개도 한 번 더 시켜주고 출마 준비 중인 지역구 시장에 직접 방문도 해 주는 등 주변 사람들도 잘 챙긴다”고 덧붙였다. 당내 기반이 아직 탄탄하지 못한 이 총리 입장에선 총리실 출신 인사들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해 원내 진입에 성공할 경우, 차기 대선까지 당내에서 그에게 단단히 힘을 실어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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