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렬의 '제갈량' 윤여준, 개혁 총대 메나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3.07.07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회창 책사' 윤여준, 최대표 당선에 크게 기여··· 개혁 작업 중책 맡을 듯
나라당 전당대회가 열리기 직전인 6월26일 오전 9시, 최병렬 대표는 윤여준 의원과 단둘이 만났다. 당선되면 읽을 수락사를 검토하기 위해서였다. 최대표는 이 날 윤의원이 쓴 수락사를 토씨 하나 고치지 않았다.

윤의원은 ‘최병렬 대표’를 탄생시킨 일등 공신이다. 그는 이번 경선 과정에서 최병렬 캠프의 전략 사령관이었다. 전반적인 이슈와 메시지를 관리했고, 강재섭·김덕룡 의원과 연대하기 위해 당사자나 측근을 만나는 등 막후에서 상당한 활약을 했다. 보수 세력의 자기 혁신을 강도 높게 주창한 ‘최병렬 프로그램’도 윤의원의 손때가 많이 묻은 작품이다.

경선 과정에서 최대표가 ‘오버’하려고 할 때마다 제동을 건 것도 윤의원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노무현 대통령이 방일 중 “한국에서도 공산당 활동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한 데 대해 최대표가 강력하게 비난하려고 했던 일이다. 당시 윤의원은 노대통령의 진의도 알아 보아야 하고, 일본 공산당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는데 최대표가 이를 받아들였다.

‘최병렬 체제’에서 윤의원은 크게 중용될 것이 분명하다. 본인도 “이제 내 정치를 해보고 싶다”라며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제는 ‘이회창 측근 윤여준’이라는 굴레를 벗을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200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당 기획위원장으로 있을 때 김윤환·이기택 씨 등을 낙천시킨, 이른바 '개혁 공천'을 주도한 사람이다. 때문에 당내 강경 보수파 인사들은 그가 핵심부에 진입하자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2000년 충격’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다.

윤의원은 1988년 최대표가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있을 때 정무비서관이 되면서 그와 인연을 맺었다. 최대표는 평소 사람을 잘 챙기지 않는 스타일인데 자신만은 꾸준히 챙겼다는 것이 윤의원의 말이다. 이처럼 겉으로 알려진 것보다 두 사람은 넓고도 깊은 신뢰 관계를 맺고 있다. 윤의원은 “서울올림픽 중계 문제와 관련해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었는데, 최대표가 ‘윤비서관이 담당자이니 결정을 내려라.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해 큰 부담을 느꼈던 일이 기억난다”라고 말했다.

‘마음을 비웠다’는 최대표처럼 윤의원도 ‘내년 이후’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는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배낭 하나 메고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한다. ‘싸움판 정치’는 체질에 안 맞는다는 것이다. 최대표와의 관계, 그리고 윤의원 자신의 각오에 비추어 볼 때 그는 전면에 나서 과감한 개혁 작업을 주도하며 자신의 정치 인생에 일대 승부수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