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집에 가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 김은남 (ken@sisapress.com)
  • 승인 2000.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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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실업·불황 시대 '먹는 장사'로 성공한 사람들/대형화·전문화가 열쇠
오식업계에도 ‘20 대 80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주요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대형 음식점은 평일에도 자리가 없다. 경기가 침체해 성장세가 둔해졌다고는 하나 이들 소를 보며 불황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반면 중소 규모 식당은 다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주)한국외식정보에 따르면, 불황 조짐이 뚜렷해진 지난 추석 이후 일반 음식점의 매출은 10∼20% 가량 줄었다. 지방은 상황이 더욱 심각해 50%까지 매출이 떨어진 업소가 속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앞으로 음식점은 대형화하든지, 소규모로 차별화하든지 둘 중 하나여야 살아 남는다.”(양혜숙 한국여성창업대학원장) “대형 할인점이 등장하면서 동네 구멍가게는 살아 남았지만 중간 규모 슈퍼마켓은 도태한 것과 같은 이치다. 어중간한 규모의 식당은 장기 불황 국면에서 경쟁에서 처질 수밖에 없다.”(맛깔컨설팅 이상화 대표)

이들이 제시하는 외식업의 살 길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대형화·전문화·시스템화. 과연 그럴까. 제2차 구조 조정이 본격화하면서 퇴출 직장인 사이에 외식 창업 열풍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이즈음, 경기 불황에도 끄떡없이 매출 급신장을 기록하는 외식업계의 ‘무서운 아이들’을 만나 보았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직후 가혹한 담금질을 이겨내며 성장했다는 공통점을 가진 이들은 오늘의 시련 또한 재도약할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의 분식 문화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용우동은, 사업 기획 단계부터 대형화·전문화 전략을 끌어들여 성공한 대표적인 외식업체이다. 이 회사 대표 이영찬씨(40)는 1996년까지 의류 업체 간부로 일했다. 그러다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회사를 그만둔 뒤 그에게 고민이 시작되었다. ‘무엇을 할까.’결론은 먹는 장사였다.
때는 바야흐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맞아 퇴출된 직장인들이 너도나도 먹는 장사에 눈을 돌리던 시기였다. 한국요식업중앙회에 따르면 1997∼1998년 전국의 외식업소는 6천개 가까이 늘었다. 이 중 자리를 잡는 데 성공한 업체는 2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외식업 전문가들의 추산이다. 그러나 용우동은 사업을 시작한 지 2년 만에 가맹점 수를 100여 개로 늘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비결은 철저한 마케팅 전략이었다. 분식점 하면, 사람들은 대개 음식 냄새와 쓰레기가 뒤범벅된 지저분한 장소를 떠올린다. 이영찬 사장은 이런 고정 관념을 깨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처음부터 10∼20대 여성을 공략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이 좋아하는 맛·인테리어·서비스·로고 따위를 철저하게 기획하고 실행했다.”

이사장은 국내 최고의 전각 예술가 정병례씨에게 로고 도안을 의뢰하고, 지중해풍으로 실내를 꾸몄다. 단 천장은 한국적인 분위기가 나도록 서까래를 설치했다. “가능하면 카페 분위기가 나도록 했다. 우동 한 그릇을 다 먹고 나서 커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력 관리에서의 손실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일부 프랜차이즈 업체는 본사에 직원을 너무 많이 두고 있다. 심지어 가맹점 하나당 담당 직원 1명을 둔 회사도 있다. 그렇다면 가맹점이 100 개에 이르는 용우동은? 본사 직원이 딱 9명이다. 직원이 많으면 인건비가 많이 들고, 이를 벌충하기 위해 음식 재료를 싼 것을 쓰다 보면 결국 음식점은 망한다는 것이 이사장의 지론이었다. 이에 따라 용우동은 직원 9명이 메뉴 개발·매장 관리·대리점 교육에만 집중하고 나머지 구매·유통·인테리어 따위는 협력 업체 10여 곳에 맡기는 방법을 쓰고 있다.
마창수산 김호용 회장(56) 또한 대형화로 승부수를 던졌다. 활어 유통업자 출신인 김회장이 직접 횟집을 차리게 된 데는 우연한 계기가 있었다. 어느날 김회장은 귀한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고급 일식집을 찾았다. 그런데 막상 식탁에 오른 활어의 양이 너무 빈약했다. 활어 원가를 뻔히 아는 그로서는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어를 날마다 접하는 내가 이럴진대 일반 고객은 푸짐함이 얼마나 그리울까.’

그래서 1994년 경남 창원에 처음 직영 횟집을 차리게 되었다는 김회장은, 전국의 직영점과 가맹점 수가 80개에 육박한 오늘날에도 ‘횟집의 기본은 푸짐한 회’라는 신념에 변함이 없다. 마창수산의 상차림에는 밑반찬이 거의 없다. 고추 오이 메추리알 그리고 김회장이 직접 개발했다는, 고소한 콩가루를 섞은 야채 샐러드가 고작이다. 대신 그 흔한 무채·파슬리 장식도 없이 둥근 접시에 첩첩이 담겨 나오는 활어회는 풍성하고 싱싱하기 그지없다.
이는 구매와 유통을 장악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창수산은 경남 마산과 제주도에 양어장을 직접 운영하면서, 지난 3월에는 경기도 시흥에 20t 저장 시설을 갖춘 대규모 물류 센터를 완공했다. 이미 30여 곳에 이르는 수도권 일대 가맹점에 활어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이다. 이들 가맹점이 밤 10∼11시께 다음날 필요한 물량을 주문하면 마산 본사가 이를 취합해 자체 수송차 10여 대와 외부차 50여 대로 활어를 밤새 실어 나른다(운영 경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외부 차량을 임차하고 있다).

질적 차별화에는 한계가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양적 차별화를 시도하는 식당이 늘고 있다는 것이 맛깔컨설팅 이상화 대표의 분석이다. 곧 음식점 규모가 크면 고객 유인력이 높아지고, 넓은 지역의 상권까지도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량 구매가 가능해 식재료를 사들일 때 원가를 절감할 수 있고, 인건비·관리비 운용에서도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대형 식당의 강점이다. 이 때문에 소규모 점포로 신뢰를 쌓은 식당 가운데 프랜차이즈 형태로 대형화 전략을 도입하려는 곳이 늘고 있다. 일본식 돈까스 전문점인 본까스가 좋은 예이다.

1997년 <한국일보> 사옥 인근의 중학점에서 출발한 본까스는 ‘바삭한 일본식 튀김옷과 육즙이 적당히 흐르는, 도톰한 고기 맛이 환상적으로 어울린 돈까스’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미국 아이비리그 출신이면서, 레스토랑 운영에 도전해 보겠다고 결심한 뒤 설거지부터 시작해 주방 일을 배웠다는 남궁현 사장(31)은, 11월 말 현재 서울 시내에만 직영점 5곳, 가맹점 3곳을 운영하고 있다.

남사장은 식재 원가율과 인건비가 매출의 60% 이상이 되면 망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본까스는 이 비율을 넘길 때가 있다. 최고급 브랜드 돈육만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식재 원가율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가맹점 확대는 필요하다. 그렇지만 ‘땅 따먹기’ 식으로 가맹점을 늘리다 점포 관리에서 실패해 본까스 이미지에 먹칠을 하느니 보수적으로 차근차근 프랜차이즈를 확대하겠다는 것이 남사장의 구상이다.

그 대신 본까스는 배달이나 포장 판매(테이크 아웃) 비중을 늘리고, 저녁 시간대에는 이른바 이자카야(요리 주점)식 메뉴를 선보이는 식으로 사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최근 도시락 전문점과 외국계 커피 전문점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배달 및 포장 판매는 경기가 어려워지고 생활 양식이 구미화할수록 더 큰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외식업계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87쪽 딸린 기사 참조).

대형화로 승부하기 어려운 소자본 창업형 식당이라면 역시 차별화가 살 길이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스파게티 전문점 뽐모도로는 오직 맛과 서비스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이탈리안 파스타·스파게티 전문점은 외식업 전문가들이 손에 꼽는 대표적인 성장기 업종.
맛의 비결은 45세 동갑내기 공동 사장인 김갑진·박상준 씨에게 있다. 호텔신라에서 15년 넘게 함께 일한 두 사람은 이탈리아 요리에 관한 한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들은 손끝으로 한번 찍어 먹는 것만으로도 스파게티 요리 2백여 가지에 들어가는 소스 맛을 정확히 감별해 낸다. 스파게티 맛은 치즈와 올리브 기름에서 결정이 난다고 믿는 두 사람은 재료값을 아끼지 않는다. 소스는 반드시 당일 만들어 사용한다. 만든 지 오래된 소스는 그만큼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4년 전 식당을 조금 넓혔다고는 하지만 뽐모도로는 여전히 좌석이 30여 개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 식당은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종업원을 2부제로 운영한다. 인건비가 곱절이다. “일이 많으면 피곤해진다. 피곤하면 얼굴이 굳고, 알게 모르게 손님에게 짜증을 내게 된다”라는 것이 박상준 사장의 말이다.

새문안교회 인근에 있는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 빠오는 남다른 착상으로 차별화를 시도한 경우이다. 같은 자리에서 김밥 전문점을 6년 가까이 운영한 조성운씨(40)는 김밥 전문점이 조만간 사양길에 들어설 것이라고 판단하고 3년 전부터 새 사업을 구상했다. 일본 유학 시절 즐겨 먹던 베트남 쌀국수가 문득 떠오른 조씨는, 본격적인 현지 답사에 들어갔다. 베트남·태국·라오스. 배낭 하나 메고 원주민 부락에 염치불문 쳐들어가 그들의 토속 음식을 얻어 먹고 다니다 보니 감이 잡혔다.

지난 10월 식당을 개업한 조씨는 먼저 쌀국수값을 4천원대로 낮추는 가격 현실화 전략을 채택했다. 이 정도 가격대면 제살 깎아먹기 식의 가격 파괴 전략과는 구분되면서, 적정 마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조씨의 주장이다. 맛은 베트남 쌀국수 특유의 칼칼한 사골 국물 맛을 살리되 한국 사람이 거부감을 느끼는 향은 대폭 줄이는 쪽으로 조절했다. 메뉴도 대표 품목은 베트남 쌀국수로 내걸었지만, 단일 품목만 다루면 고객이 쉽게 질린다고 판단해 일본·태국·인도네시아 국수를 다양하게 갖추었다. 이때문에 식당 이름도 동아시아 국수 전반을 뜻하는 ‘빠오’(파스타 오리엔탈)이다.
‘이곳에 오면 항상 새롭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보름에 한번씩 업데이트하는 메뉴, ‘10분 이상 기다리면 요금의 10%, 30분 이상 기다리면 50%를 할인해 준다’는 대기 시간 환불제와 기타 서비스가 어울리면서 개업 첫날 17만원이던 빠오의 매상은 한 달 보름 만에 하루 평균 50만원을 웃도는 수준으로 수직 상승했다.

“잘 되는 식당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성장에 탄력이 붙었고, 안 되는 식당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IMF 이후 외식업계를 이렇게 요약하는 박형희 (주)한국외식정보 대표이사는, 불황이 장기화할수록 이같은 양극화 현상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여기서 살아 남으려면 식당 경영자부터 품질 중심에서 가치 중심 경영으로 사고를 전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고객은 맛·서비스·청결 그 이상의 것, 곧 해당 업소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가치를 높게 사며, 고부가가치 상품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더 많은 돈을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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