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제 뒤덮은 청구 · 우방 ''먹구름''
  • 대구 · 박병출 부산 주재기자 ()
  • 승인 2000.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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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여파로 대구 경제 기진맥진…"시민 10%가 수입원 끊겼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속담대로라면, 대구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이른바 ‘빅 투(big two) 사태’를 미리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청구와 (주)우방 등 ‘지역 빅 투’가 붕괴한 것은, 값진 경험으로 삼기에는 너무 큰 상처를 남겼다.
대구 지역 건설업체 붕괴 쇼크는 최근 동아·현대 사태와 빼박은 듯 닮았다. 두 업체가 지방에서 쌓은 명성을 바탕으로 수도권에 진출해 한때 재계 순위 30∼40위 권에 진입한 점은, 동아와 현대가 국내에서 성장해 해외 건설시장에서 성가를 높인 과정과 흡사하다.

“11월 이후 협력업체 줄줄이 도산”
외환 위기 직후인 1998년 (주)청구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데 이어 지난 6월 1차 부도를 낸 (주)우방이 8월 말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도 최근의 사태와 흡사하다. 지금 대구 지역이 겪고 있는 심각한 경제난이 ‘빅 투 사태’의 후폭풍을 일깨우는 예고편으로 읽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1998년 10월 워크 아웃(기업개선작업) 대상으로 확정되어 채권 금융기관의 경영 감독을 받아 오던 (주)우방이 부도와 함께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은 추석을 보름 앞둔 지난 8월28일. 대구 지역 주택 공급의 75%와 토목 공사의 30%를 담당해 온 만큼 지역 경제가 받는 타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피해 규모도 엄청나다. 1조3천억에 달하는 은행권 여신 규모는 제쳐두더라도, 회사측이 아파트 부지를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한 탓에 등기 이전을 하지 못한 입주금 완납자가 2천여 세대에 달한다. 공사 대금이나 자재비를 어음으로 받은 협력업체 1천3백개 사(대구 소재 8백여개 사)의 연쇄 도산도 우려된다.

정작 심각한 것은, 실업 증가와 상실감 등 당장 드러나지 않는 피해 규모가 더 크다는 사실이다. 대구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우방 부도후 일용 근로자 수가 3만 명에서 만 명으로 급감했다”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대구 만촌동 (주)우방 사옥에 채권자 사무실을 내고 있는 협력업체 대책위원회의 한 간부는 이같은 수치를 비웃었다. 당장 우방 직원 1천2백여 명, 1차 협력업체 8백여 개 사와 이보다 훨씬 많은 2차 협력업체 직원들과, 3만∼4만 명 규모의 일용 근로자를 합하면 6만 명 이상이 사실상의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주장하는 대로라면 4인 가족을 기준해 3백만 대구 시민의 10% 가까이가 수입원이 끊긴 셈이다.

박종찬 대책위 총무(주식회사 용원건설 대표)도 관련 기관들의 ‘숫자 놀음’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당초 연쇄 부도를 우려했던 대구시나 금융기관들이 우방 사태 후유증으로 부도를 낸 업체가 5개 사에 그쳐 안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이없는 노릇이다. 협력업체 중에서 은행 당좌 거래를 하는 경우는 자금력이 좋은 극소수이다. 90%가 넘는 영세 업체들은 ‘부도를 냈다’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한 채 쓰러지고 있다.”

박씨는 “대구시가 신용 대출을 보증한다고 해도 우방에 대한 거래 의존도가 높은 협력업체일수록, 즉 피해 규모가 큰 업체일수록 신용도가 낮게 평가돼 금융기관이 상대조차 해주지 않는다. 돈이 필요한 업체는 외면하고 담보력과 자금력이 넉넉한 업체에는 가져다 쓰라고 하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덧붙였다.

대구시의 말은 다르다. 이백희 기업금융담당 계장은 “(주)우방 협력업체라는 근거만 제시하면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우리 시와 협약을 맺은 시중 은행에 추천장을 발급하고, 대출금 이자 중 4%를 시가 보전해 주고 있다. 10월27일 현재 89개 업체가 3백12억원을 대출받았다. 대구 지역 업체가 소지한 우방 발행 진성 어음 3백79건 중 1백72건은 천만 원 이하 소액이고, 고액권은 이미 사채 시장 등을 통해 활용한 경우가 많아서 대다수 업체가 대출을 희망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대구시가 파악한 피해 규모와 업체 사정은 11월4일 현재 대구 지역 8백37개 업체로부터 8백억원에 달하는 채권 신고를 접수한 협력업체대책위원회의 결과와는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대책위에 우방에 대한 채권을 신고한 업체들 중 10%가 넘는 100여개 사는 사업주가 연락조차 되지 않는 상태다. 대책위 관계자들은, 이미 도산해 가정이 파탄에 처했거나 빚쟁이들을 피해 잠적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부도 직전인 8월 중순 우방에서 받은 3개월짜리 어음의 만기가 도래하는 11월10일께부터는 하청업체들이 줄줄이 도산 사태를 맞으리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비관적인 전망이다.

극도의 불안감과 불신감도 문제다. 시민들은 지역 건설업계, 업계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 아파트 분양 신청을 할까 하다가 최근 단독 주택에 전세를 들었다는 박정한씨(42·회사원·대구시 북구 산격동)는 “견실한 향토 기업으로 알려졌던 (주)청구에 이어 마지막 보루 격인 우방마저 쓰러져 믿고 분양 대금을 납입할 회사가 없었기 때문에 단독 주택을 택했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현재는 아파트를 짓는 회사가 모두 쓰러져, 분양 신청 자체가 불가능한 형편이다.
우방 부도 직후인 8월30일 이해봉 한나라당 대구시지부장은 “우방 도산이 지역 경제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정치적 차원에서 구제를 고려했던 청와대가 지나친 부채 규모 등으로 회생이 어렵다고 판단해 시장 논리에 맡기기로 한 것으로 안다”라는 김극년 대구은행장의 전화 내용을 공개한 바 있다. 협력업체 대표들은 “청구나 우방이 방만하고 부실한 경영 때문에 도산한 사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우방의 경우, 사태가 지금처럼 악화한 책임은 정부와 채권단에 있다. 채권 은행이 자금을 관리한 워크 아웃 기간에 부도를 낸 것은, 정치 논리와 시장 논리 사이를 오가며 ‘살려보다가 힘에 부치면 부도 처리하면 된다’는 지극히 무책임한 처사이다”라고 분개했다.

우방처럼 워크 아웃 기간인 10월31일 74억원 부도를 내고 법정관리를 신청한 (주)서한의 경우는, 대구 지역 건설업체들의 도산 원인과 책임, 대책을 일깨우는 사례로 꼽힌다. 건설업 도급 순위 87위인 서한은 1998년 11월 워크 아웃을 신청해 다음해 2월부터 채권 은행의 경영 관리를 받아 왔다. 그동안 채무 7백58억원 중 6백93억원을 변제하는 등 자구 계획 이행 실적이 170%에 달해, 올 상반기에는 건전한 재정 상태를 회복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지난 9월에는 임직원 1백93명이 유상 증자를 통해 9억원을 납입하고 주주들이 주식을 매각해 만든 38억원을 증여하는 등, 회사를 살리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이 지역민들을 감동시켰다.

1997년 이후 3년 내리 대한주택공사 우수 시공업체 선정, 지난해 경영 평가 ‘우수’ 등급 판정 등 완전 회생의 길에 들어선 것으로 보이던 서한이 침몰한 원인은 두 가지로 지적된다. 지난 6월 우방의 1차 부도에 위기감을 느낀 협력업체들의 현금 결제 요구로 유동성에 차질이 생긴 것이 첫째 요인. 대구 건설업계에 대한 불신으로 수주 실적은 크게 줄어든 반면 현금 지출이 매월 15억원 이상 늘어나 목을 죄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경영 상태에 불안을 느낀 채권 금융기관들이 신규 자금 지원을 중단하고 말았다. 두 번째 요인이자 결정타였다. 결국 청구·우방 등의 몰락은 불안과 불신을 불러 협력업체의 연쇄 도산뿐 아니라 대구 지역 전체의 건설업 붕괴를 초래했고, 이는 또 경제 파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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