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조수미와 서태지, 정상에서
  • 성우제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00.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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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대중 연예 분야에서 나란히 1위… 스포츠에서는 박찬호 ‘무적’
최근 몇 년간 한국 문화예술계에는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초대형 이슈가 없었다. 문화 예술은 경기 침체의 영향을 가장 빠르고 깊게 받기도 하지만, 경기 회복의 영향을 가장 늦게 받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영화 장르를 제외하고는 한동안 잠잠했던 문화 예술계, 특히 대중 문화 분야에서 올 여름 대형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가수 서태지 컴백.’

그 위력은 이번 여론조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 예술인’ ‘가장 영향력 있는 대중 연예인’으로 나누어 설문한 조사에서, 대중 연예인으로서는 서씨와 겨룰 만한 인물이 없었다. 비록 음반 판매량에서는 다른 가수에게 뒤졌지만, 서씨가 컴백한 효과가 음악계 안팎에서 다양한 의미를 지니며 나타났기 때문이다.
문화 예술 분야에서 소프라노 조수미·지휘자 정명훈·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씨는 <시사저널> 여론 조사에서 해마다 상위 그룹을 형성해온 ‘단골 손님’이다. 올해 조사에서는 조수미(9.2%) 정명훈(8.9%) 백남준(7.5%) 씨 순으로 그 영향력이 나타났다.

조씨가 1위를 차지한 까닭은, 그녀가 올 들어 어느 해보다 열심히 ‘한국 대중 속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조씨는 올해 큰 화제를 모은 MBC 드라마 <허준>의 주제곡 <송인>을 불렀는가 하면, ‘팝 크로스오버’ 음반인 <온리 러브>를 발표하기도 했다. 음악 활동을 한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팝 크로스오버 음반은 조씨를 국내 대중과 더욱 친근한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게다가 조씨는 지난 3월 LG아트센터 개관 공연을 시작으로, 국내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공연에는 모두 참여했다. 8월에는 분단 이후 처음 서울에 온 북한의 조선국립교향악단과 협연했으며, 9월에는 시드니올림픽 전야제에서 테너 안드레아 보첼리와 함께 공연했다. 지난 10월18일에는 잠실 메인스타디움에서 록그룹 스콜피언스, 팝가수 아트 가펑클, 서태지와 함께 <평화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박선수는 올해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최고의 성적(18승10패·방어율 3.27)을 거두었다. 한국 경제가 침몰해가던 1997년부터 불 같은 강속구로 따낸 그의 승리 하나하나는, IMF 사태라는 된서리까지 맞은 국민들에게 스포츠를 즐기는 재미 이상의 기쁨과 위안을 안겨주었다.

지난해 부진(13승11패·방어율 5.23)을 딛고 일어선 그는, 올해 최고 성적뿐 아니라 여러 기록을 세워 더 큰 관심을 모았다. 동양인으로는 최다승을 올린 데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홈런 2개를 쳤으며, 마지막 등판을 첫 완봉승으로 장식하기까지 했다.

박찬호 선수와 더불어 올해 성적이 부진했던 박세리·김미현 선수도 나란히 10위권에 올랐다. 스포츠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은 프로 야구의 김응룡 감독이다. 예년의 영향력 조사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김감독이, 올 들어 스타로 떠오른 까닭은 그에게 붙은 상징성 때문이다.

김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해태 타이거스는 몇 년째 하위권을 맴돌았으나, 그의 진가는 대중적인 인기와 더불어 더욱 높아졌다. 그는 ‘파리 목숨’이라는 프로 야구 감독 직을 특정 팀에서 18년 동안 맡으며 한국 시리즈 9회 우승을 일구어냈고, 올해 세운 2천 경기 출장·1천1백승은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대기록으로 평가된다.

김감독은 시드니올림픽에서 예선의 부진을 딛고 일본을 연파하며 사상 처음으로 동메달을 획득함으로써 ‘명장의 진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최근에는 해태를 떠나 삼성 감독을 맡게 되어 포스트시즌의 뉴스 메이커가 되기도 했다.
서씨는 무엇보다 한국 대중 음악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중에게 ‘소음’으로 들리던 하드코어를 ‘음악’으로 들리게 했다는 점이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인디 밴드’들이 연주하던 그 장르는, 서씨를 매개로 오버그라운드의 빛을 보게 되었다. 댄스 음악을 주류로 만든 주인공이, 그 주류를 뒤흔드는 음악을 들고 나온 것이다.

서씨가 컴백한 데 대해 ‘언론이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었다’는 비판 여론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가 문화 예술 분야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로 대접받는 까닭은, 언론에 서씨만큼 ‘쓸거리’를 많이 제공하는 예술가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사회성을 지닌 유일한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사회성이란, 그의 음악과 음악 행위가 특정 세대와 계층의 삶에 영향을 주는 데다, 그 스스로 의도하지 않아도 일종의 상징으로 작용한다는 의미이다.

서씨 컴백은 방송 환경(이를테면 머리를 염색한 가수의 텔레비전 출연)과 대중 음악 제도에도 영향을 미쳐, 최근 국정감사에서 심재권 의원(민주당)이 <한국 대중 음악 중흥을 위한 아홉 가지 제안-서태지 컴백 열풍을 지켜보며>라는 정책 제안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문화 예술인의 영향력 순위는 소설가 황석영·이문열, 영화감독 강제규, 지휘자 금난새 씨 순으로 나타났다. 눈에 띄는 것은, 올해 국립극장 극장장을 맡아 ‘고급 예술의 대중화’ 기치를 내건 김명곤씨와 김한길 문화관광부장관이 각각 7, 9위에 올랐다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문화관광부장관이 영향력 있는 ‘문화예술인’ 10위권에 오른 적이 없었으나, 김장관의 경우 소설가 경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 분야에서는 미국 프로 야구 LA 다저스 팀의 투수 박찬호 선수가 단연 돋보인다. 1997년 정식 메이저리거가 된 이후 박찬호 선수는 <시사저널> 여론조사에서 단 한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다만 지지율이 얼마냐가 흥밋거리였는데, 올해(57.4%)에는 지난해(54.4%)보다 더 영향력 있는 인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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