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건희, 정주영 제치고 고지 재탈환…진 념은 차석
  • 소성민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00.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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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제치고 영향력 있는 경제인·기업인 상석 차지… 진 념 장관 2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정상에 복귀했다. 이회장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 또는 기업인’을 묻는 조사에서 줄곧 1위 자리를 차지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소떼를 몰며 방북길에 올라 국민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심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에게 밀려 2위에 그쳤다.

영원할 것 같았던 재계 라이벌 현대가 올해 수차례 유동성 위기에 처하며 인상을 구기는 동안, 삼성은 우량 계열사들 앞에 ‘사상 최대 실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니며 강한 대비 효과를 거두었다. 최강의 기업을 이끄는 총수가 영향력 1위 자리에 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터이다.

지난해 같은 설문 조사에서 응답률 28.9%를 기록하며 3위에 올랐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올해 겨우 1%밖에 못 얻으며 몰락한 점만 보아도, 기업 총수의 영향력은 그가 이끄는 기업의 내용으로 평가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할 수 있다.

올해 경제인 영향력에 관한 조사는 예년과 달리 기업인과 경제 관료를 나누지 않았는데, 결과는 기업인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1위 이건희 회장과 2위 진 념 재경부장관 사이의 응답률 차이는 비록 2.3%에 지나지 않지만, 진장관이 경제 위기를 맞아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차이는 더 크다고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단체 별로 응답률을 살펴보면, 행정 관료·정치인·언론인·교수(학자) 네 집단은 진 념 장관을 가장 많이 지목했다. 나머지 집단에서는 모두 이건희 회장이 응답률 1위를 기록했다.
이채로운 현상은 진 념 장관이 다른 모든 단체에서는 비교적 고른 응답률을 얻은 데 비해, 유독 시민단체에서만은 7%라는 저조한 응답률을 기록하며 4위에 그쳤다는 사실이다. 어느 단체나 조직보다 적극적으로 정부의 개혁 의지를 감시하는 시민단체의 눈에 현 경제팀 수장이 어떻게 비치고 있는가를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경제팀장 격인 진 념 장관을 제외하면 경제 관료의 영향력이 보잘것없이 평가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경제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을 묻는 조사에서 응답률 30.6%로 2위를 차지했던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이 이번에는 1.7%로 고작 8위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다만 이헌재 전 재경부장관이 8월 개각으로 물러났는데도 응답률 4.6%로 4위에 오른 점은 특기할 만하다. 금융감독위원장에서 올해 재경부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뒤 갈팡질팡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난해까지 개혁을 주도했다는 세간의 평가가 아직 시들지 않은 결과로 풀이된다.

올해 처음 신설된 문항인 ‘가장 영향력 있는 벤처 CEO’에서는 이찬진 드림위즈 사장이 1위를 기록해 눈길을 끌었다. 재벌 총수가 그가 경영하는 기업과 동격으로 평가되는 데 비해, 벤처 기업 쪽에서는 기업보다 최고경영자 개인의 지명도가 더 중시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찬진씨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가 흔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한글과컴퓨터 사를 창업해 ‘한국의 빌 게이츠’라고 불리던 시절을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다.

이찬진 사장 다음으로는 이민화 사장(메디슨)·이재웅 사장(다음커뮤니케이션)·안철수 사장(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이 차례로 2·3·4위를 기록했다. 벤처 CEO 종합 순위에서는 6위에 그친 오상수 새롬기술 사장이 유독 정치인 집단에서만 가장 높은 응답률(8%)을 기록한 점도 특이하다.

영향력 있는 벤처 CEO를 묻는 조사에서 ‘없다’(6.7%)나 ‘모르겠다’(60.6%)는 대답이 합해서 67.3%를 기록했다. 아직 한국에서는 벤처 CEO에 대한 관심과 평가가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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