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공작원 상호 교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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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0.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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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류자 생사확인 · 송환 협상 즉각 벌여야
인천에 사는 이규복씨(39)는 아버지의 얼굴을 모른다. 그가 세상에 태어나 100일째 되던 날 아버지 이준영씨(당시 28세)는 대북 첩보 임무를 띠고 북파된 후 지금까지 연락이 끊겼다. 그때가 1962년 10월 어느 날이었다. 그가 가족에게 남긴 흔적이라고는 북파 직후 정보사령부가 부쳐준 당시 돈 50만원과 침투훈련을 받던 중 서울 돈암동 신흥사 스님을 통해 북파 사실을 전해온 편지가 고작이었다.

이준영씨를 북파한 군당국은 이들 모자에게 아직껏 이준영씨의 생사를 확인해 주지 않고 있다. 이씨는 국가의 부름을 받고 떠난 아버지의 생사만이라도 확인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오늘도 부지런히 국군 정보사령부의 문턱을 넘고 있다.

이씨처럼 군당군에 뽑혀 북파 활동을 벌이다 실종하거나 사망한 이들의 가족은 수천여 세대에 달한다. 그러나 이씨와 달리 대부분의 북파 첩보원 가족은 북파 사실조차 모른다. 군이 모집한 후 이들의 행적을 철저히 차단했기 때문이다. 최근 확인된 북파 희생자 7천7백26명의 가족 대부분이 이처럼 가족의 생사를 모른 채 살고 있다.

정부가 북파 공작원의 실체를 부인해온 이유는 정전협정 위반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에는 남북한이 서로 협정을 위반한 사례가 공식 집계되어 있다. 1994년 군사정전위원회는 한국전쟁 휴전 후 41년 동안 정전협정을 북측이 42만여 건, 남측이 45만여 건 위반했다고 공개했다. 지난 9월 초 북송된 장기수 63명 중 46명이 1950∼1970년대에 남파된 간첩들이었다는 점에서, 최근 북한은 남파 공작원의 실체를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북파 공작원을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인식해 쉬쉬하고 있다.

북파 첩보원들은 대부분 임무 수행 과정에서 희생되었지만, 체포되어 북에 억류된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1971년 남파 공작원으로 내려왔다가 17년간 옥살이를 하고 1988년 출소한 김진계씨는 북에 있을 때 알게 된 북파 첩보원의 실상을 이렇게 말했다. “북파 간첩들이 체포되면 바로 전향 공작에 들어간다. 대부분 전향했는데, 이들은 인민 속에서 살게 한다. 그러나 죄질이 무거운 경우는 재판을 거쳐 한 곳에 수용한다.” 김씨의 증언에 따르면, 남북한이 ‘간첩’에 대해 똑같은 방식으로 처리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처리 방식, 동서독 등 다른 분단 국가들과 대조적

서로 침투시킨 공작원에 대해 이같이 처리하는 것은 지구촌의 다른 분단 국가들과는 무척 대조적이다. 통일 전 동서독도 서로 활발하게 공작원을 침투시켰다. 1975년부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90년까지 서독이 체포한 동독 간첩은 4백여명이었다. 이들은 재판에 회부되어 평균 3년형을 살고 동독으로 추방되었다. 원하는 사람은 서독에 잔류하기도 했다. 역시 비슷한 숫자의 서독 공작원이 동독에서 체포 구금되었지만, 서독은 비공식 루트를 통해 파견한 공작원을 사들였다. 서독이 스파이 송환 비용으로 동독에 준 돈은 1인당 3만 마르크 정도였다. 중국의 경우 타이완 공작원을 체포하면 10년형을 살린 후 ‘다시는 간첩 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고 추방한다. 타이완 당국은 기업인 신분으로 위장한 중국 공작원 6백여명의 실상을 파악하고 있지만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체포하지 않고 감시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에 있건 남에 있건 첩보원과 공작원은 민족 분단의 희생양들이다. 다만 남한에 억류된 이들 가운데 일부는 꿈에도 그리던 혈육을 찾아 북한으로 갔다. 그러나 북한에 억류된 첩보원들의 남쪽 가족은 생사도 모른 채 정부로부터 냉대받고 있다. 남북한 화해 시대를 맞아 첫 단추를 끼워야 할 작업은 서로 붙잡아 억류해온 첩보원과 공작원을 상호 교환하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상호 침투 과정에서 사살된 양측 첩보원들의 유해도 이제는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기 위한 협상을 벌여야 한다. 남북한 당국은 침투한 무장 공작원을 사살하면 각각 ‘적군 묘지’에 안치해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한의 경우 경기도 파주에 적군 묘지를 마련해 지난 40년간 사살된 남파 무장 공작원의 시신을 집단 매장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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