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사일 외교로 100억 달러 벌었다"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0.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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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밀월’ 전모 추적/조명록 방미 때 밀약 가능성
북한 조명록 특사의 방미 외교(10월9∼12일)의 내막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12일 발표된 북·미 공동성명은 클린턴 대통령의 역사적인 북한 방문 가능성을 담고 있는 등 주목할 점이 있으나, 그동안 내외 언론이 제기해온 여러 가지 가능성에서는 상당히 비켜나 있다. 즉 당시 공동성명은 △북·미 양국의 적대 관계 청산 △경제 협조와 교류 △미사일 협상 기간에 장거리 미사일 발사 중단 △테러 반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으나, 연락사무소나 수교 문제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이번 조명록 특사의 방미 길에 이런 내용까지 발표되리라고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고 할 수 있다. 북한과 미국이 외교 관계를 어느 정도 선까지 진전시킬 것인가는 외무장관 회담에서 협의해 발표할 성질의 것이지 군부 인사인 조명록 차수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방미 목적은 바로 이 외교 관계 정상화를 위해 걸림돌이 되는 문제들을 사전에 제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북·미 양국 관계에서 걸림돌이 되어온 사안은 미국측에서 보자면 북한의 미사일 문제이고, 북한 쪽에서 보자면 미국의 테러국 지정 해제 문제이다.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의 이번 방미 길에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해법이 거의 마련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선 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시사저널>이 지난호(제573호)에 제기한, ‘북한이 미사일을 포기하는 대가로 일본이 미국을 통해 10억 달러를 제공하기로 했다’는 내용부터 다시 짚어 보기로 하자. 이 내용을 전한 국내 정보 소식통은 그 경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최근 일본측이 북한에 식량 50만 t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수교 협상에 적극 나설 경우 추가로 지원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북한측이 식량이 아닌 현금으로 달라고 요구했고, 이를 일본이 받아들여 10억 달러라는 액수가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처럼 막대한 금액을 북한에 지원할 명분을 찾기가 어려워 미국 채널을 이용해 간접 지원하는 방식을 모색했고, 이번 조특사의 방미 때 이 문제를 미국과 매듭짓기로 했다는 것이 골자다.

<시사저널>은 당시 이 소식을 전하면서 이것이 북한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전체 지원 액수 중 일부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그동안 미사일 수출 중단 대가로 요구해온 금액은 매년 10억 달러씩 3년간 30억 달러였고, 지난해 9월 북·미 미사일 협상 직후 일본이 북한에 미사일을 포기하는 대가로 약 20억 달러를 지원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적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 미사일을 둘러싼 쟁점은 미사일의 수출과 개발·생산·배치 문제로 나눌 수 있다. 그동안 북한측은 미사일 수출은 미국이 금전적 보상을 하면 중단할 수 있으나 개발·생산·배치는 자주권에 해당하기 때문에 타협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미국측은 겉으로는 미사일 개발 중단까지 요구해 왔으나 사실상은 중동 지역에 대한 수출 중단과 미국에까지 이르는 장거리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협상해 왔다. 오히려 노동 미사일을 포함한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생산·배치 문제까지 물고늘어진 쪽은 일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북한에 미사일 수출 중단을 넘어서 개발·생산· 배치 중단까지 요구하려면 여태까지 얘기되어온 액수보다 돈이 훨씬 많이 들어가고, 그것도 주로 일본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지난해 말께부터 북한 미사일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북측에 지불할 액수로서 약 50억 달러 정도가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협의되어 왔다”라고 밝혔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북한측은 미사일 개발까지 포기하는 대가로 약 100억 달러를 요구했는데, 미국과의 절충에서 50억 달러로 조정되었고, 일본 역시 이 정도 액수를 지불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는 것이다. 조명록 차수의 이번 방미에서 미사일 포기 방침을 미국에 통보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줄곧 있어 왔는데, 이 경우 미국은 일본을 통해 총액 50억 달러 상당의 지원을 약속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조특사의 이번 방미 때 테러국 문제도 깊숙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문제 역시 북한을 테러국 지정 명단에서 제외한다는 상징적 조처의 수준을 넘어, 구체적인 경제 지원 규모까지 언급되었다고 한다. 즉 미국이 북한을 테러국 명단에서 해제하면 북한은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B)에 가입할 자격을 얻게 된다. 그런데 단순히 이 같은 자격을 얻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국측이 국제통화기금을 통해 약 50억 달러 정도를 지원해 주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조명록 특사 방미 전인 9월27일∼10월2일에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찰스 카트먼 미국 한반도 대사 간에 차관급 회담이 열렸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 이 같은 언질이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조명록 차수의 이번 방미 길에 북한은 미사일을 포기하는 대가로 약 100억 달러 상당의 지원을 국제기구와 일본으로부터 약속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처럼 막대한 자금이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북한에 지급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면 거래의 성격상 여러 가지 물타기 방식이 동원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마커스 놀란드 씨는 얼마 전에, 앞으로 일본이 북한에 지급할 수교 배상금 액수는 약 2백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주장을 뜬금없이 내놓은 적이 있다. 그동안 배상금 액수에 대해서는 50억∼100억 달러 사이에서 결정될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었는데, 그는 2배 이상의 액수를 예상한 것이다. 이처럼 최근 들어 워싱턴에서는 북·일 수교 배상금을 그 이전에 비해 훨씬 늘려 잡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데, 미사일 대금을 수교 배상금에 포함해 계산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인 것이다.

국제기구와 일본이 제공할 자금 중 일부는 현금으로 지급되겠지만 나머지 상당 액수는 경협 지원 방식으로 이루어질 가능성도 크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현대그룹이 미국의 부동산 컨설팅 회사인 ‘쿠시먼 앤드 웨이크필드’ 사로부터 개성공단 조성을 위해 수십억 달러 외자를 유치하는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개성공단 조성에 필요한 자금이 총액 기준으로 약 55억 달러이고, 쿠시먼 사의 대주주가 미국의 록펠러 재단과 일본의 미쓰비시 종합상사라는 점이다. 이 돈이 미사일 관련 자금이거나 아니면 국제기구가 북한에 지원하는 자금의 통로 구실을 이 회사가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이처럼 조명록 차수의 미국 방문에서부터 클린턴 대통령의 북한 방문 가능성까지 최근 북·미 관계는 전광석화처럼 진행되어 많은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러나 상당히 오랜 기간 양측 실무진 간에 물밑 협상이 전개되어 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시사저널>은 지난 7월 이후 북·미 수교 및 정상회담과 관련한 물밑 움직임들을 포착해 끈질기게 보도해 왔다(‘북한 미국 10월에 수교한다’-7월13일자 커버 스토리, ‘김정일 미국 방문 극비 추진중’-8월17일자, ‘김정일·클린턴 정상회담 막판 조율중’-9월1일자, ‘김영남 미국행 누가 막았나’-9월28일자). 최근 북·미 관계의 현주소를 명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그동안의 전개 과정을 다시 한번 짚어보기로 하자.
우선 지난해 9월 발표된 페리보고서는 북·미 관계를 포괄적으로 규정한 문서다. 페리 보고서의 2단계 조처인 북·미 평화협정과 수교를 위해서는 남북 관계 정상화가 필요했다. 6월 남북 관계 역시 북·미 관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던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본격적으로 교섭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남북 정상회담 직전인 지난 5월24일부터 30일까지 로마에서 열렸던 북·미 회담부터였던 것으로 보인다. 회담을 시작하기 전부터 미국 국무부가 ‘양자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지향한다’고 할 정도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때 이미 미국 정부가 11월 대선을 앞두고 북·미 관계에서 뭔가 회심의 카드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바로 이 5월 말에 클린턴 대통령의 북한 방문이라는 최근 움직임을 예고하는 중요한 흐름이 미국측에서 나타났다. 앨 고어 부통령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5월 말에 있었던 민주당 전당대회 준비위원회 회의에서 고어 부통령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 고위층과 직접 접촉할 필요가 있고, 필요하다면 10월 전에 북한을 방문할 용의가 있다’고 말한 것이다.

고어 부통령은 이 발언을 이전에 우리 정부 요로에 ‘미국이 북한과 수교하는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의를 해 왔다고 한다. 물론 우리 정부는 이 질의에 대해 ‘찬성’이라는 답변을 보냈다. 다시 말해 고어의 발언은 바로 대선 전에 미국이 북한과 수교할 수 있다는 정책 대전환을 염두에 둔 폭탄 선언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그동안 국내에서도 극소수에게만 알려졌고, 그 때부터 다양한 예측이 나왔다. 바로 그 시나리오 중 하나가 클린턴 대통령이 대신 방북할 가능성이다. 즉 고어 부통령이 10월 이전, 즉 9월께 방북하고 싶다고 했으나 선거운동 때문에 어렵게 될 경우 클린턴 대통령이 대신 갈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고어로부터 클린턴으로 이어지는 미국 수뇌부의 이 같은 움직임이 바로 10월 북·미 수교설의 한 축이었다.

최소한 7월 중순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측은 고어 부통령을 축으로 한 북·미 고위급 회담 구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7월19일 김정일·푸틴 간의 북·러 정상회담 이후 이 구상에 변화가 나타났다.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인공위성을 대신 발사해 주면 미사일을 포기할 수 있다’고 언급하고 푸틴에게 답방을 약속하는 것을 보면서 김위원장을 미국에 초청하는 쪽으로 방향을 수정한 것이다.
지난 7월28일 아세안안보포럼(ARF) 기간에 열린 북·미 외무장관 회담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북·미 관계의 획을 그은 자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 이후 북·미 관계의 로드맵, 즉 고위급 회담을 통한 포괄 협상외무장관 회담을 통한 수교 선언 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순서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고, 또 이 자리에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완곡한 표현으로 김위원장 방미를 권유했다고 한다.

7월28일 북·미 외무장관 회담을 전후해 북한측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특히 뉴욕의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고위 외교관들이 친북 성향 교민들과의 접촉에서 ‘장군님의 방미 가능성’을 흘리는 사례가 나타나기도 했고, 국무부 특별팀과 이 문제를 놓고 실무 협의를 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바로 비슷한 시점 서울에서도 이와 관련한 북측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즉 제1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하루 앞둔 지난 7월28일께 서울에서는 남북 정보 당국자 회담이 극비리에 열렸다. 이 자리에서 북한측은 우리 정보 당국자에게 “지금 북·미 간에는 항공 관제 협약이 없어 어려움이 많은데 남한측이 도와줄 수 있는가”라고 타진해 왔다고 한다. 당시 이 얘기는 북한의 최고위급이 미국에 갈 경우 남한 국적기를 사용할 수 있는지, 아니면 북한 국적기를 사용할 경우 기술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타진한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런데 당시 우리측은 북측의 이 같은 요청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우리 국적기로 북한 최고위급 인사가 방미할 경우 부정적인 여론이 일어날 것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7월 외무장관회담에서 미국은 9월에 열리는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김위원장의 방미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북한측 역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측의 협조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기가 촉박하고 기술 측면에서도 여의치 않게 되자 9월 밀레니엄 정상회담에는 예정했던 대로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참석하는 것으로 조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미국 항공사의 무리한 몸 수색 때문에 불발로 끝났다.

최근 워싱턴 소식통들에 따르면, 당시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대미 협상 내용 중에는 바로 김정일 위원장의 방미 문제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즉 클린턴 대통령이 김위원장을 초청할 경우 이에 응하겠다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그의 방미가 좌절되면서 약 한 달여 조정 기간이 소요되자 미국 대선을 전후해 김위원장이 방미 길에 오르기에는 시간이 촉박해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조명록 특사의 방미 메시지에는 김위원장 방미 대신 클린턴 대통령에 대한 방북 초청장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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