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 PD "<대장금>은 하급 공무원 사회 다룬 것"
  • 노순동 기자 (soon@sisapress.com)
  • 승인 2003.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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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하급 공무원 사회 그렸다” 연출자 이병훈 프로듀서/“현대적 시각으로 과거의 전문직 세계 다뤄”
<대장금> 연출자 이병훈 프로듀서(60)는 요즘 밤을 꼬박 지새우는 일이 잦다. 밤새 스튜디오 촬영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2000년 드라마 <허준>으로 63.7%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한 그는, 이번에 자기 손으로 그 기록을 허물겠다고 작정한 것처럼 보였다.

시청률이 치솟으면서 드라마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다.

당황스럽다. 시청자들은 원래 대입해서 읽고 싶어하는 속성이 있다. 그런 얘기를 듣고 재미있어서 비슷하게 갈까 했지만(웃음), 드라마는 드라마의 길이 있으니까.

한상궁과 정상궁이 의외로 폭발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데.

처음에는 이만큼의 비중이 아니었다. 그 대목은 전적으로 작가의 공이다. 여성 작가여서 여성만의 매력적인 캐릭터를 잘 구축하는 것 같다. 초반에 이영애씨가 80% 이상을 담당하면서 몹시 힘에 부쳐 했다. 그 몫을 연생(박은혜)이나 한상궁이 나눠 가지면서 여지가 생겼다.

작가의 이름이 낯설다. 호흡은 잘 맞나?

윗선에서 불안하다고 한 달 동안 결재를 안냈다. 단막극 몇 편, 고작 서울방송에서 16부작을 쓴 것이 가장 큰 경험이니까. 이전에 최완규씨를 대신해 김영현씨에게 <상도> 2회분 분량을 쓰도록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녀의 재능을 알아봤다. 물론 이번 작업이 쉽지는 않다. 한 대본을 대여섯 번씩 다시 쓰게 했으니까. 여섯 편 정도를 그렇게 한 것 같다. 지금도 매주 만나 조율한다.

어떤 점이 그렇게 다른가?

뭐, 통상적인 조율도 있고. 특히 코미디와 사랑 얘기에 대한 감각이 크게 달랐다. 나는 웃음이건 사랑이건 논리·상황·이유가 분명해야 하는 스타일이고, 작가는 캐릭터나 느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긴다. 종사관과 장금이 연정을 느끼는 대목에서 여섯 번을 다시 썼다. 운명적인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장금이 종사관의 목숨을 구해준다는 설정을 요구했는데 줄기차게 저항하더라(웃음). 또 종사관에게 특별히 잘난 면이 있어야 장금이가 연정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세대 차이도 있고 성차도 있는 셈이다. 작가의 고집을 보며 나도 깨닫는 것이 많다.

텔레비전 사극으로 석사 논문을 썼는데.

1997년 사극 드라마를 분석하고 전망해 보았다. 앞으로는 궁중 사극과 서민 사극이 절반 정도는 될 거라고 했는데, 워낙 일반적인 얘기이다 보니 얼추 맞아떨어진 것 같다(웃음). 그동안 사극은 차관급 이상의 권력 투쟁만 다뤘다. <대장금>은 1급 이하 9급 공무원 사회를 다룬 것이다. 현대는 의술·번역·요리 등 전문적인 직능이 더 각광받는 시대다. 항상 양반 사회 얘기만 하다 보니 현대적인 틀로 과거 전문직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허준>이 그렇게 성공을 거두었고. 장금이는 여성이다. 그녀가 헤쳐가야 할 고초는 더 크지 않았겠나.

궁중 요리를 찬찬히 보여준 것이 신선했다.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서면 요리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그런데 요리 드라마를 표방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방송사의 우려가 만만치 않아서 다른 안전 장치를 많이 해야 했다. 어릴 적(생각시)부터 보여주어 신선함을 주자, 밝고 명랑한 충격을 주자는 발상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작인 <상도>가 재조명되고 있다.

돈 버는 얘기를 하면 인기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웃음) 시청률이 높지 않아 속이 상했었다(당시 김재형 PD의 <여인천하> 때문에 고전했던 그는, 요즘 김 PD의 <왕의 여자>를 제대로 따돌려 한풀이를 한 셈이 되었다). 당시에도 팬은 많았다. ‘<상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상사모) 회원이 1천7백여 명인데 지금도 활동한다. 방송사 홈페이지에서 다시 보는 사람이 늘었다. 공을 많이 들였는데, 이제라도 재평가되니 기쁘다.

밤샘 촬영이 예정되어 있는 와중에도 <대장금> 출연 배우들은 바로 옆 스튜디오에서 문화방송 창사 특집 프로그램을 녹화하느라 품을 팔고 있었다. <대장금>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가욋일이 많아진 것이다. 이병훈 PD는 “국민의 사랑을 받는 만큼 기꺼이 요구되는 역할을 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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