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차와 막차에서 만난 사람들
  • 고재열 기자 (scoop@sisapress.com)
  • 승인 2000.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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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인천 지하철 1호선 국철 구간 탑승기/새벽과 밤승객 '세대 차' 뚜렷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에즈라 파운드 <지하철 정거장에서>)
지하철 첫차와 막차처럼 우리 삶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도 드물다. 그러나 첫차와 막차가 가리키는 시각은 물리적 시간과 다르다. 새벽을 깨우는 첫차에는 삶에 지친 모습이 실려 있고 하루를 마치는 막차에는 흐느적거리는 젊음이 담겨 있다. 인천발 첫차와 인천행 막차를 타고 오가며 그 풍경을 살펴보았다.

지하철 첫차에서부터 삶의 경쟁은 시작된다. 지하철 첫차를 이용하는 승객은 생각보다 많다. 자리 경쟁도 치열해서 빈자리가 나면 근처에 서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뛰어든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양보를 기대할 수도 없다. 첫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아서 그런 자비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앉은 사람은 모두 부족한 잠을 벌충하기 위해 눈을 감아버려서 동정의 여지를 기대할 수 없다.

첫차가 출발하는 인천역에서 젊은 여자 네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이 특이해 까닭을 물어보았다. 월미도에서 밤을 새워 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들에게 이 첫차는 오히려 막차의 의미에 가까워 보였다. 한가한 첫차에서 마음껏 퍼질러 잘 요량이었는지 그들은 둘씩 머리를 맞대고 의자에 드러누웠다. 그러나 그들의 안락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 정거장에서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한 할아버지는 신문에 연재되는 영어회화 학습자료를 보면서 연신 중얼대고 있었다. 단어를 외우는 모양이었다. 한 번도 첫차를 놓쳐 본 적이 없다는 그는, 부평역 인근의 미군부대에 근무하고 있었다. 팔뚝에 해병대 문신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도 보였다. 종로5가에서 노점상을 하는데, 일찍 가서 자리를 맡아야 하기 때문에 늘 첫차를 탄다고 말했다.
기자가 얘기를 나눈 첫차의 승객들은 모두들 손목에 시계를 차고 있었다. 그리고 첫차를 탄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시계를 차고 있었다(낮 시간에 지하철을 타는 사람 중에는 시계를 차고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인생의 시계가 예민하게 작동하고 있는 그들의 초침 소리는 더 숨가쁘게 들렸다.

고요한 첫차에 비해 막차는 시끄럽기 그지없다. 마치 시골 장터 같다. 귀염둥이 딸과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아빠, 괜히 옆 사람과 시비를 벌이는 취객, 친구들과 잡담을 하다 크게 웃는 대학생. 막차는 무척이나 소란하다. 막차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정도씩은 컸다. 막차를 탄 사람의 절반 정도는 얼굴이 붉은데, 채 가시지 않은 취기가 그들을 호기롭게 만든 것처럼 보였다.

막차가 첫차와 다른 점은 타는 사람이 대부분 젊다는 사실이다. 치마를 너무 꽉 끼게 입어서 옆단 실밥이 터질 지경인 여고생, 미니 스커트를 입고서 세상 모르게 늘어져 자고 있는 여자, 출입문 옆에서 기둥을 붙잡고 있다가 문이 열릴 때마다 고개를 내밀고 구토하는 대학생, 서로 껴안고 이별을 아쉬워하는 젊은 연인 등 막차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젊었다.

종점에 다다르면 번잡했던 막차는 황량해진다. 술 취한 취객 몇몇이 쓰러져 자고 있고 빈 의자에 신문지만이 널려 있을 뿐이다. 종점에 도착하자 아주머니 20여명이 객차 청소를 시작했다. 청소를 하는 데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신문지를 거두는 사람이 앞장을 서고 그 다음을 물 뿌리는 사람이 뒤따랐다. 그 뒤를 빗자루질하는 사람이 따라가고, 대걸레질을 하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바닥을 닦아내면 청소는 끝이다. 뒤따라온 남자들은 취객들을 깨우고 있었다. 술에 취해 졸다가 종점까지 온 사람이 서너 명 눈에 띄었다.

역 앞 벤치에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청소년이 앉아 있었다. 어린 노숙자였다. 벌써 몇 달째 집을 나와 거리를 방황하고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자는 데 이골이 난 그였지만 그 날 따라 운이 없었다. 직원들이 역사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잠근 것이다. 그는 할 수 없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벤치에 피곤한 몸을 누일 수밖에 없었다. 역 앞 상점도 모두 문을 닫고 사방이 캄캄해진 오전 1시, 어린 노숙자의 머리 위에서 ‘인천역’ 간판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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