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 감사 티켓 예약한 '티켓링크 의혹'
  • 김종민·고제규 기자 (jm@e-sisa.co.kr)
  • 승인 2000.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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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의원들 ‘입장권 전산망 사업’ 특혜 의혹 추궁 별러
언제 어디서나 전국의 영화관·공연장·경기장의 정보를 확인하고 전화나 인터넷으로 예매할 수 있다.’ 문화관광부의 입장권 통합 전산망 사업이 그리고 있는 미래다. 그러나 이 사업은 1996년 9월 당시 문화체육부가 입장권 통합 전산망 구축 계획을 세우고 추진한 이래 만 4년이 넘도록 아직도 정착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특혜 의혹이 제기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국회 문화관광위원회(문광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이 사업의 문제점을 파고들 태세이다. 게다가 10월17일 ‘영화인 회의’에서는 공청회까지 열 계획이어서 입장권 전산망을 둘러싼 문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입장권 통합 전산망이란 공연장·체육시설 등의 현장 매표소에 전산 시스템을 설치하고 이를 전국의 통합 전산망에 연결해 관리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영화관이나 공연장의 업무 효율이 높아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전화나 인터넷으로 예매할 수 있어 소비자에게도 편리하다. 각 공연장의 관객 수를 정확하게 집계해 정책 자료로 활용하거나 탈세를 막는다는 장점도 있다. 문화 소비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고 2002년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므로 하루빨리 정착시켜야 할 시스템이다.

문제는 이렇게 중요하고 필요한 사업이 아직도 표류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문광위원들과 관련 업체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사업 주무 부서인 문화관광부가 특정 업체의 시스템만을 무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 바로 ‘티켓링크 시스템’이다. 문화관광부는 1998년 12월 ‘현장 매표소 통합 전산망 운영 시스템’으로 ‘지구촌 문화정보 서비스’(지구촌·대표 우성화)의 티켓링크 시스템을 선정해 발표했다. 결정 내용은 2002년 3월까지 시범 운영 기간을 정해 국·공립 공연장은 의무적으로 시행하되 그밖의 극장·공연장·체육시설에 대해서는 시행을 권고한다는 것.

그러나 1999년 5월 티켓링크 시스템은 시범 운영 시스템에서 슬그머니 ‘문화관광부 지정 입장권 표준 전산망’으로 격이 높아졌다. 이어 지난해 9월에는 국세청까지 나서 티켓링크 시스템을 문화관광부장관이 지정하는 ‘문화관광 표준 전산망’으로 규정하고 1999년 11월30일까지 모든 공연장이 가입하라고 의무화했다. 가입하지 않을 경우에는 행정 조처가 뒤따른다는 경고도 덧붙었다(1999년 9월 1일 국세청 고시) 3년간 시범 운영 기간을 거친다는 애초 방침과 달리 국세청의 막강한 힘으로 티켓링크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한 셈이다.
국회 문광위나 관련 업계에서는 문화관광부가 ‘현장매표소 통합전산망 시범 시스템’을 선정한 이후부터 줄곧 독점의 폐해를 제기해 왔다. 업체 간의 경쟁 체제로 가야 서비스도 향상되고 훗날 독점 업체의 횡포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인회의 조준형 정책위원(31)은 “이해할 수 없다. 문화관광부가 왜 특정 업체를 감싸는지 모르겠다”라며 의혹투성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도 티켓링크만을 단일 시스템으로 지정한 것은 경쟁을 제한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화관광부와 국세청은 단일 시스템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문화관광부는 단일 시스템이라야 전국적인 매표 집계가 가능하며, 소비자들에게도 편리한 예매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또한 단일 시스템이 곧 특정 업체에 대한 특혜는 아니라고 해명했다. 티켓링크 시스템은 1998년 12월 기술 평가를 여러 차례 거쳐 공정하게 선정되었고, 특정 업체에 대한 특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당시 경쟁에 참여했던 한국정보통신과의 컨소시엄을 통해 사업 주체를 구성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또 현장 매표소 통합 전산망은 티켓링크에 독점적 지위를 주되 시장의 70%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예매 사업은 여러 업체가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문제 될 리가 없다는 것이다. 국세청 역시 그동안 영화관이나 공연장이 탈세의 온상으로 거의 방치되어 왔기 때문에 모든 사업장이 단일한 통합 전산망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세청 장 춘 개인납세국장은 “세정 개혁 차원에서 단일 시스템은 꼭 필요하다. 문제가 되면 발매 시스템만이라도 표준화(단일화)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티켓링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 지구촌은 공익성을 내세워 단일 시스템이 불가피함을 역설하고 있다. 지구촌 기획본부장 최종호 이사는 “이 사업은 전국에 있는 모든 공연장을 연결하는 인프라 사업이다. 자율 경쟁에 맡기면 통일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수익성이 없는 중소 도시 영세 시설의 전산망 설치는 요원하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또 “인프라 구축에는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든다. 지금까지 지구촌에서는 100억원을 투자했고 앞으로 2백억원을 더 투자해야 한다. 오랜 기간 적자 운영이 불가피한 인프라 구축 사업이기 때문에 초기 사업자에게 독점권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덧붙였다.

독점 문제와 아울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기술력. 관련 업계나 영화관 등 현장의 목소리는 현재 티켓링크 시스템이 기술적으로 앞선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 탓에 관객 동원력이 있는 대형 극장들은 티켓링크 시스템 대신 자체 전산망을 깔거나 다른 시스템 업체와 계약했다. 올해 문을 연 한 복합 상영관(멀티플렉스) 운영자는 “티켓링크 시스템으로는 우리 시설을 감당할 수 없다. 인터넷 비즈니스 부문까지 염두에 두고 자체 전산 시스템을 개발했다”라며, 특정 시스템을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국세청 고시 이후 ‘본의 아니게’ 티켓링크 시스템을 받아들인 극장 담당자 역시 “기존 시스템에 비해 크게 나아진 점이 없다. 각 시스템마다 장단점이 있지 않겠느냐”라며 정부가 단일 시스템을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티켓링크의 예매 시스템을 설치한 업체의 현장 담당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다운된다. 티켓링크 담당자에게 호소해 보았지만 이용자가 많아서 그렇다는 답변뿐이다”라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러한 기술상의 문제도 한 업체에 독점적 지위를 부여해서는 해결되기 어렵다는 것이 경쟁 업체들의 주장이다.
티켓링크측도 그동안 기술 면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지만, 이미 문제를 해결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지구촌 기획본부장 최종호 이사는 “그동안 기술적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했고, 10월 말까지는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끝낼 예정이다”라며, 그동안 나타난 부분적인 문제는 거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그는 “초기 시스템이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기 때문에 한국 상황에 적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 완전 국산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했다”라고 덧붙였다.

티켓링크에 의한 독점 논란은 특혜 의혹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문화관광부는 말할 것도 없고 국세청까지 나서서 단일 시스템을 밀어붙이는 것은 합리적인 정책 결정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특혜 의혹은 이미 1998년 12월 사업자 선정 때부터 불거졌다. 당시 경쟁 업체들은 기술도 중요하지만 사업 경험 능력 역시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사업권을 따낸 지구촌의 경우 캐나다 액트 사에서 가져온 시스템 기술 이외에는 자금력에서나 유관 사업 경험에서나 크게 취약했다. 그런데도 자본금 5억원짜리 소규모 회사인 지구촌이 앞으로 시장 규모가 5천억원이 되리라고 예상되는 입장권 통합 전산망 사업의 시범 사업자로 지정된 것이다. 그후 1년도 채 안되어 시범사업자라는 꼬리를 문화관광부와 국세청이 떼 주고 입장권과 관련해 수익성이 높은 극장까지 의무 가입 대상으로 바뀌면서 특혜 의혹은 더욱 커졌다. 지구촌 사장 우씨가 정치권과 연결되어 있지 않느냐는 말까지 계속 돌았다.

지구촌의 경영 상태가 썩 좋지 않은 것도 특혜 시비의 소지가 되고 있다. 지난해 결산 실적을 보면 자본금 12억원에 부채는 77억원이 넘었고, 당기 순이익은 -26억원이다. 회사측은 인프라 사업이어서 초기 적자는 당연하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문제 해결 능력이 얼마나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지구촌의 한 간부는 “그동안 한국정보통신이 자금을 대왔지만 앞으로는 외부 투자를 유치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꿀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또 문화관광부와 국세청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사업 실적도 부진한 편이다. 문화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31일까지 티켓링크 시스템을 받아들인 업체는 극장과 경기장을 포함한 4천여 개 업소 가운데 겨우 81개소뿐이다.

그러나 특혜 의혹은 ‘의심은 가지만 증거는 없는’ 상태다. 문제는 특혜 여부를 떠나 입장권 전산망 사업의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시행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하루빨리 합리적 방향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점이다. 문광위 소속인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다른 전산망 업체들이 행정소송이나 공정거래법상의 문제를 제기할 경우 정부가 패소할 것이 뻔하다”라면서 결자해지의 자세로 문화관광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영화계에서도 무리한 단일 시스템을 강요해 전산화 자체가 늦어져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관련 업체와 영화계가 제시하는 대안은 티켓링크라는 단일 표준 시스템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스템을 허용하되 표준 규약을 만들어 호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각 사업장마다 다른 시스템을 설치하더라도 표준 규약을 마련해 호환할 수 있도록 하면 통일적인 관리나 세수 확보 등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나아가 특혜 의혹도 해소하고 경쟁에 의한 서비스 질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티켓링크의 경쟁업체인 저스트 커뮤니케이션 박종붕 이사는 서로 다른 시스템 간의 호환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전산망 프로그래머 역시 “호환을 위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개발에 큰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시간도 1년이 채 걸리지 않는다”라며, 중요한 것은 사업 주체 간의 의지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지구촌 최종호 이사는 “다른 업체들과 호환이 안 되는 것은 아니나 개발주도권, 비용부담 주체, 정보 공개를 놓고 갈등이 발생해 실제 추진이 불가능하다”라며 난색을 표했다.

결국 관건은 주무 부서인 문화관광부의 입장이다. 이 사업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김순규 문화관광부 차관이 주도해 왔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장관은 이 문제와 관련한 신기남 의원의 질의에 대해 실무 국장의 설명을 듣고 답변했다가 나중에 김차관의 설명을 듣고 자신의 발언을 정정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 사업에 관한 한 김차관의 장악력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여당의 한 의원은 이번 국정감사 문광위 질의에서 장관 대신 김차관이 직접 답변하도록 할 계획이다. 국회 문광위 관계자들과 관련 업계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강한 소신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김차관이 이번 국정 감사에서 어떻게 답변할지 주목하고 있다. 여권 일부에서는 특혜 의혹과 정책 상의 문제점 등을 들어 국감 전에 김차관이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래저래 이번 문광위 국정 감사는 티켓링크 문제를 놓고 뒤숭숭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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