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처리'' 고민 빠진 미국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3.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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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사법 처리 걸림돌 많아
“오늘은 이라크 역사에서 위대한 날이다. 수십 년 동안 사담 후세인은 여러분의 이웃을 위협하고 공격했다. 이제 그런 날은 영원히 끝났다. 지금은 미래를, 희망의 미래를, 그리고 화해의 미래를 생각할 때다.” 지난 12월14일, 이라크 통치를 책임지고 있는 미국의 폴 브레머 행정장관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담 후세인을 생포한 ‘기쁜 소식’을 이같이 전했다.

이라크통치위원회 의장과 이라크 주둔 미군 지휘를 책임지고 있는 리카도 산체스 장군이 배석한 이 기자회견은 ‘우리는 그를 잡았다(We got him)’로 시작해 ‘미국에 축복을!(God bless America)’로 끝났다. 브레머는 이 자리에서 후세인의 ‘공포 정치’가 영원히 막을 내렸다고 선언했지만, 후세인 처리를 둘러싼 미국의 고민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당장 기자회견장에서 미국의 고민이 확인되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캐럴 윌리엄스 기자가 물었다. “이번 주 초 (이라크) 전범재판소가 개설되면서 모든 용의자를 이라크인의 손에 맡기겠다고 발표했는데, 앞으로도 그런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조건으로 그렇게 할 것인가?” 사담 후세인에 대한 신병 처리 방안을 묻는 질문이었다.

산체스 장군은 얼버무렸다. “지금 이 순간까지 결정된 것은 없다. 우리는 현재 후세인에 대한 처리 여부를 검토하고 있으며, 가까운 시일 안에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산체스 장군이 공언한 ‘가까운 시일 내의 신병 처리’는 장기화할 수 있다. 후세인이 사살되지 않고 생포된 탓에 미국의 고민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후세인 신병 처리에 대해 현재까지 가장 확실하게 내려진 방침은 그를 ‘전범’으로 특별 재판에 회부한다는 것이다.

유력한 방안은 ‘이라크인 손에 맡기기’

문제는 누가, 무슨 근거로, 어떤 죄목과 절차로 그를 처단할 것인가이다. 현재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방안은 후세인을 ‘이라크인의 손’에 맡긴다는 것이다. 이라크통치위원회는 후세인이 붙잡히기 약 1주일 전, 전직 고위 바트당원들을 처벌하기 위한 특별재판부를 설치했다.

만약 이라크인들이 스스로의 손으로 후세인을 처단한다면, 미국으로서는 쌍수를 들고 반길 일이다. 정치적인 부담, 즉 전쟁도 일방적으로 벌이고, 전범도 마음대로 처리한다는 국제적 비난을 덜 묘안인 것이다. 미국의 법정에서 후세인을 재판하는 광경은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감정을 악화시켜, 미국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테러를 부를 공산이 높다.

하지만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라크인에 의한 사담 후세인 재판’에 찬성하지 않고 있다. 지난 12월 초순 이라크에 특별재판부가 설치되었을 때, 휴먼라이트워치는 이미 이 재판부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범죄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제3자가 없으며, 피고가 스스로를 방어할 적법한 기제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같은 국제 인권단체의 주장에 따르면, 내년 7월 본격 심리가 시작될 후세인 일파에 대한 재판은 ‘불공정 재판’이 될 수 있다.

특별 법정 설치 여부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는 방안도 있다. 현재로서는 이 방안이 사담 후세인에 대한 재판의 공정성을 높이고, 명분도 있는 가장 확실한 방안으로 꼽힌다. 이미 선례도 있다. 1999년 5월, 유엔이 유고 내전 과정에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이 코소보에서 저지른 반인륜 행위를 심판하기 위해 특별전범재판소에 회부한 것이 가장 가까운 예이다. 후세인을 법정에 세울 수 있는 반인륜 범죄와 대량 학살 사례와 이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충분하다. 그는 1984년 이란과 전쟁을 벌이면서 국제법으로 금지된 화학 무기를 사용해 수많은 이란인을 몰살했다. 그는 또 1988년 쿠르드인들을 무자비하게 살상했으며, 1991년에는 시아파 반란을 잔인하게 진압했다. 후세인은 이외에도, 독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비밀 보안 조직 알-무카라바트 등을 동원해 정적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고문·학살을 자행하기도 했다.

후세인, 재판 과정에서 물귀신 작전 펼 수도

그를 국제 재판정에 세울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근거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제정된 ‘대량 학살 예방과 처벌에 관한 협약’일 것이다. 이 규약은 ‘전시는 물론 평화시에 자행된 대량 학살 행위 및 이에 대한 모의 교사 행위’까지 재판 대상 및 처벌 범주에 넣고 있다.

후세인을 국제전범재판소에 회부하라는 주장은 이미 1990년 그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부터 국제 사회에서 대대적으로 일었다. 당시 부시 미국 대통령도 후세인을 전범재판소에 회부하자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이 한사코 가입을 반대하고 있는 국제형사재판소 설치 움직임도, 당시 ‘후세인 처벌’이 직접 계기가 되어 논의에 불이 붙었던 것이다.

만약 미국이 후세인 처벌을 유엔으로 가져갈 경우, 이는 미국측에 또 다른 덫이 될 수 있다. 밀로셰비치 재판은 국제형사재판소가 가동되기 전 일이었으므로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이 재판소가 엄연히 가동 중인데도 미국측이 이를 유엔으로 가져간다면 미국은 국제 사회가 공인한 국제형사재판소를 무력화한다는 또 다른 비난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은 후세인이 이란인을 상대로 생물 화학 무기를 쓰던 바로 그 시절, 이라크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며 후세인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만약 공정한 재판이 열린다면, 후세인측은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당시 ‘미국과 있었던 일’을 폭로하며 물귀신 작적을 펼 소지도 있다. 폴 브레머 행정장관은 12월4일 기자회견에서 ‘후세인은 정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위와 같은 정황에 비추어볼 때, 그가 홀로 ‘정의’ 앞에 서기에는 얽히고설킨 사연이 너무 많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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