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P 합당 국면 맞아 정체성 상실 위기…‘총선 물갈이’도 물거품 될 듯
  • 안철흥 기자 (epsisapress.comco.kr)
  • 승인 1999.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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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신당이 자민련과 합당하는 분위기에 급속히 휩싸이면서 개혁적인 국민 정당을 만들어 보겠다는 DJ의 ‘개미 정치’ 실험은 일단 끝난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대안은 신 DJP 연합, 즉 ‘고공 정치’로 복귀하는 것이다. 총선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현실 정치 논리가 새로운 정치를 해보겠다는 이상 정치 논리를 누른 것이다. 신당에 참여하고 있는 한 개혁 인사는 “전혀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보겠다고 석 달 동안 노력해 왔다. 그런데 이제 신당은 DJP당의 신장 개업이라는 비아냥만 듣고 있다. 뭔가 잘못되었다”라며 안타까워했다. 다른 영입 인사도 ‘합당으로 새로운 정당 실험은 이제 끝’이라고 말했다. 이런 내부의 분위기에 대해 한 고위 당직자는 일이 꼬여간다며 난처해 했다.

신당창당추진위가 결성된 지 석 달이 지나는 시점에서도 민주신당이 이렇다 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자, 잉태는 했지만 영양 공급이 부실해 자칫 낙태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신당 안에 한동안 흘러다녔다.

여야가 몇 달째 한판 승부를 벌이는 와중에도, 민주신당은 정국 흐름에서 한 발짝 비켜서 있었다. 즉 정치의 주체가 아니었다. 정강 정책을 만드는 일도, 법정 지구당을 창당하는 일도 선거법 협상이 끝난 뒤로 미루어져 있다. “1월20일에 창당한다. 그 밖에는 정해진 게 아무 것도 없다”라며 한 당직자는 자조 섞인 한숨을 쉬었다.

긴급 처방으로 ‘낙태’는 모면

이런 신당의 낙태 위기를 치유하기 위한 처방전이 최근 잇달아 내려졌다. 첫 번째 조처가 동교동계를 일선에 배치한 것이라면, 두 번째 처방전은 자민련과 합당 추진이다. 민주신당은 합당 국면을 맞으면서 비로소 뉴스의 초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신당 관계자들은 합당하면 여권 지지율이 상승할 것이라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에 기대를 걸고 있다. 동교동계가 전면에 나서면서 뭔가 일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생겼다는 내부 진단도 나오고 있다. 신당 내부의 분위기를 일신했다는 점만 보면 두 가지 처방이 일단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약효를 섣불리 예측하기는 어렵다. 두 가지 처방 모두 약효는 짧고 부작용은 긴 쥐약이 될 수도 있다.

민주신당의 방향 전환은 이미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애초부터 불안정한 형태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신당은 소수 정권의 한계를 뼈저리게 절감한 DJ가 정국 돌파 전략의 하나로 구상한 것이다. 올해 7월까지만 해도 DJ의 정국 구상은 1+1+α였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헤쳐 모이고, 외부 신진 인사들이 합세하는 새로운 거대 전국 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이 DJ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복안은 내부 사정으로 자민련의 초기 합류가 좌절되면서 포기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수정된 것이 1+α+1 전략이다. 국민회의와 외부 신진 세력이 먼저 뭉치고, 나중에 무력해진 자민련을 흡수한다는 속셈이었다.

이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독자적인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밝혔다. 재야 인사들이 주축이 된 국민정치연구회(대표 이재정 현 민주신당 총무위원장)도 신당에 합류하겠다고 즉시 화답했다. 이어 9월 초 국민회의와 신진 인사들이 모여 신당 발기인 대회를 열었고, 두 차례 영입 작업을 완료한 이후인 11월25일 3천2백여 준비위원이 참여해 창당 준비위가 결성되었다.

“기존 정치와 차원이 다른 새로운 정치 시대를 열겠다.” 창당 준비위가 결성된 직후 이재정 총무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1인 통치에서 벗어난 새로운 정당, 중산층과 서민 중심의 개혁적 정책 정당, 지역 구도를 타파하는 전국 정당’. 이재정 총무위원장이 밝힌 새로운 정치의 내용은 이랬다. 국민회의 출신 당직자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런 봄날은 오래가지 않았다.

정국이 파행을 거듭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도·감청 의혹, 언론 문건 사태, 옷로비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국민의 정부는 최대 위기 상황을 맞았고, 정치 현안들은 DJ의 조정 능력 밖으로 튀어나가 버렸다. 그와 함께 신당을 정치권 내부로 차근차근 진입시키고, 국정을 담당할 새로운 정당으로 착근시키려던 DJ의 복안도 좌절되어 버렸다.

신당 안에서마저 문제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신진 인사들과 국민회의 출신 인사들 간에 이견이 드러나고 알력이 생겼다. 국민회의 출신 당직자들은 ‘정치 아마추어들하고 같이 일하기 피곤하다’고 말했고, 신진 인사들은 ‘국민회의가 맘대로 하려고 한다’고 받아쳤다.

신당은 처음에는 국민회의 총재특보단장 출신인 정균환 조직위원장과 재야 출신인 이재정 총무위원장 투톱 체제로 움직였으며, 총재비서실장인 정동채 의원이 총무 부위원장을 맡아 이들을 보조했다. 그러나 정균환-정동채 의원만으로는 힘이 부치는 일들이 계속 발생했다. 신당 내부의 조정 능력도 문제였지만, 국민회의 중진들이 내놓고 신당을 헐뜯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동교동계가 일선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일이 전개되었다. 그러자 DJ는 준비위 결성식 직후 신당 조직 체계에 들어 있지 않은 별동대로 기획단을 새로 설치하고 단장에 최재승 의원을 임명했다. 또한 윤철상 의원을 조직위 부위원장에 임명하는 등 동교동 직계를 긴급 투입해 직할 체제를 구축할 수밖에 없었다.

직할 체제를 갖춘 이후 신당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 당내의 진단이다. 기획단이 각 분과위원회 활동을 조율하고 이끌면서 이전과 같은 삐걱거림은 많이 해소되고 있다. 그러나 신당마저 동교동이 장악하고 DJ가 직접 통치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기도 하다.

“물론 신당의 내부 운영에 미숙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당의 문제는 전체적인 정국 상황과 연동되어 있다. 정국이 풀리지 않는데 신당이 어떻게 잘 굴러가기를 바라겠는가. 그런데도 DJ는 내부 체제를 수술하는 것으로 신당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본질을 보지 못하고 지엽만 문제 삼아 정치 실험을 포기한 것이다.” 한 당직자의 불만이다.

지금 여권의 가장 큰 고민은 신당 창당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도 창당 분위기가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요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된다. 우선 거론되는 것이 물갈이에 위협을 느낀 현역 국민회의 의원들의 의도적인 냉소주의이다. 신당의 한 당직자는 “여권 분위기가 신당 창당 국면으로 바뀌는 것을 늦추려고 현역 의원들이 정기국회 파행을 의도적으로 방치하고 있다”라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월척은 건지지 못하고 준척 수준에서 머무른 신당의 영입 작업 실패가 신당이 뜨지 못한 원인이다”라고 분석하는 당직자도 있다.
파행 정국 휩쓸려 창당 분위기 ‘썰렁’

그렇지만 DJ조차 추스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진 파행 정국이 신당을 좌초 위기로 몰고 갔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가장 많다. 가을 들어 여러 사건이 겹치면서 파행 정국이 계속되었고, 여권은 신당 창당 후 즉시 총선 체제로 들어간다는 예정된 순서를 놓쳐버렸다. 신당에 실질적인 힘을 실어줄 수 있는 국민회의의 당 3역이 정기국회와 선거법 협상 등 대야 관계 일 때문에 신당에 전혀 신경 쓸 수 없었던 점도 신당 분위기가 뜨지 못한 요인이 되었다.

그래서 밀리고 밀리다가 울며 겨자 먹기로 튀어나온 것이 자민련과 합당을 추진하는 것이었다. 동교동계 일선 배치가 대내용 처방이라면, 합당 추진은 대외용 처방인 셈이다.

물론 자민련과 몸을 합친다는 발상은 신당이 처음 태동할 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자민련이 절대 변수는 아니었고, 지금 같은 식의 합당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애초 구상은 국민회의·자민련·신진 세력이 헤쳐 모여서 새로운 당을 만드는 것이었고, 그것이 무산된 뒤에는 신당을 만든 다음 자연스럽게 자민련을 흡수한다는 생각이었다”라고 국민회의의 한 당직자는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흡수나 통합이 아닌 당 대 당 합당이 논의되고 있다. 물론 국민회의와 자민련을 해체하고 개별 입당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형식은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DJ와 JP 두 사람이 담판해 당 대 당 합당이 추진되고 있다. 위기에 처한 DJ가 자민련과 합당하는 수밖에는 돌파구가 없다는 것이고, 그만큼 DJ의 정국 장악력이 떨어졌다는 말이다. 반면 JP는 그 과정에서 반사 이익을 얻고 있다. “자민련과 합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자민련과 합치더라도 이런 식으로 합당한다면 애초 계획했던 신당은 없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신당의 정체성 상실을 우려한 개혁 그룹 출신 한 영입 인사의 말이다.

신진 영입 인사들 공천 위기감 확산

자민련과의 합당이 변수로 등장하면서 신당의 신진 인사들은 또 다른 위기감에 싸여 있다. 물갈이 폭이 줄어들 개연성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 상실 문제가 다분히 명분론적인 것이라면, 물갈이가 물 건너가고 있다는 데서 느끼는 위기 의식은 생존과 관련된 현실적인 것이다. 신당에 참여한 신진 인사 대부분은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공천 내락을 받고 참여한 사람들이다. 애초 DJ가 계산한 대로 신당이 창당되었다면 이들이 공천받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터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DJ는 정국 통제력이 떨어졌고, 정치 개혁보다 무조건적인 총선 승리가 관건이 되어 버렸다. 현역 의원들의 저항은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자민련도 물밑 협상에서 40% 지분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민회의 동교동계 출신 한 의원은 “역대 정부에서 집권당은 30~40% 물갈이를 해왔다. 더구나 지금은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물갈이가 더욱 필요하다”라는 원칙론을 거듭 강조하면서도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얼마나 물갈이가 가능하겠는가”라며 대폭적인 물갈이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사정을 내비쳤다. 국민회의의 한 고위 당직자도 선거구제 협상이 늦어질수록 물갈이 폭은 줄어든다고 보아야 한다면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호소했다. 현재 신당 주변에는 개혁 세력은 호남에 배치하고, 수도권은 철저하게 경쟁력 중심으로 공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그래서 ‘해물잡탕식 공천이 될 테니 신진 인사들은 몇몇 명망가를 제외하고는 공천받기가 힘들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신진 영입 인사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인영·우상호·임종석·오영식 씨 등 민주 신당에 참여한 386 세대가 30∼40대 초반 정치 신인들이 중심이 되는 독자적인 네트워크를 만들겠다고 나선 배경에도 이런 위기감이 깔려 있다.

민주신당은 동교동계 일선 배치와 합당이라는 두 가지 처방을 통해 일단 한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지난 석 달 동안 민주신당이 한 일이란 한국에서는 새로운 정치 실험이나 정책 정당 실험이 좌절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또 한번 보여줬다는 것뿐이다”라는 재야 출신 한 인사의 지적은 매섭다. 민주신당의 실험은 한국 정치가 아직도 1인 통치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만을 입증했다. 이제 실험은 끝났고 현실이 몸을 드러냈다. 그 현실의 모습은 ‘DJP 신장 개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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