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사일, 어디까지 왔나
  • 崔寧宰 기자 ()
  • 승인 1999.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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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사일 개발 역사/70년 중반 시작해 ‘장족의 발전’
북한이 본격적으로 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중반 DF 61 계획을 세우면서부터이다. 75년 4월17일 김일성은 중국을 방문해 단거리 탄도 미사일을 북한에 지원해 달라고 중국에 요청했다.

중국은 북한과 단거리 탄도탄 기술을 공동 개발하기로 합의했다. DF 61이라고 이름지은 이 프로젝트 총책임자는 중국의 첸 실란 장군이었다. DF 61은 사정 거리 600㎞, 탄두 중량 1000㎏, 액체 연료를 사용하는 1단 로켓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중국 사정으로 보류되고 첸 실란 장군이 정치적으로 축출되는 바람에 78년에 취소되었다. DF 61 계획이 좌절되자 북한은 소련에 손을 벌렸으나 소련 역시 정치적인 이유로 기술을 주지 않았다.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돌파구를 열어 준 나라는 이집트였다. 북한은 80년 이집트와 ‘탄도 미사일 공동 개발 협정’을 맺고 81년 이집트에서 소련제 스커드B 미사일과 이동 발사대 차량(MAZ 543)을 은밀히 들여왔다. 북한은 이집트에서 들여온 미사일을 뜯어 역추적 공법으로 설계도를 만들었다. 북한은 이 설계도로 마침내 84년 4월과 9월 함경북도 화대군 미사일 시험장에서 시험 발사해 동해 해상에 떨어뜨렸다. 복제된 미사일은 스커드B 미사일과 성능이 거의 비슷했다.

이후 북한은 스커드B의 원래 설계를 약간 고쳐서 85년에 새로운 미사일 시제품을 생산했다. 시험한 결과 스커드B보다 사정 거리가 20∼40㎞ 늘어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새로운 미사일을 서방은 스커드B 개량형 미사일이라고 부른다. 북한, 87~88년에 미사일 100기 이란에 수출

협정 결과 북한은 이란 자금으로 86년부터 스커드B 개량형 미사일을 매달 4∼5기, 또는 8∼12기까지 생산했고 87년부터는 이란에 수출했다. 87년부터 88년 2월까지 북한이 이란에 수출한 미사일은 100기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북한제 미사일을 이라크 도시를 폭격하는 데 썼다.

북한은 85년 스커드B 개량형 미사일을 생산하면서부터 최초의 미사일 부대를 함경북도 화대군 지역에 창설했다. 88년에는 제 4군단 예하에 새 미사일 대대를 만들었고 사리원 지역에도 미사일 연대를 배치했다. 이로써 한국은 수도권은 물론 대전∼군산 선까지 스커드B 개량형 사정권에 들어가게 되었다.

북한은 88년부터는 한국 전지역을 사정권에 넣는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북한의 미사일 개발 전략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스커드B 사정 거리를 연장하는 안이었고, 다른 안은 전혀 새로운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안은 스커드C 개량형 미사일로 나타났고, 둘째 안이 노동 1호였다. 90년 가을 이란과 북한이 스커드C 개량형 미사일 구매 계약을 한 것을 보면 이 해 가을 이전에 스커드C 시제품 발사 시험이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만들어낸 스커드C 개량형은 사정 거리가 600㎞에 이르고 탄두 중량은 700㎏ 정도였다. 사정 거리가 600㎞가 된다는 것은 제주도를 포함한 한국 전역이 사정권에 들어간다는 의미이다.

북한이 그 다음에 개발한 미사일은 노동 1호이다. 사정 거리가 1000㎞를 넘는 이 미사일은 기존 스커드 방식으로는 만들 수 없는 것이었다. 스커드는 1단 로켓이다. 과학자들은 탄두와 탄체가 분리되지 않는 1단 로켓 방식으로는 1000㎞에 이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북한은 소련이 붕괴한 뒤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소련 미사일 기술자들을 비밀리에 북한으로 스카우트했다. 또 김일성은 91년 중국을 방문해 미사일 기술을 지원해 달라고 정식으로 요청했다. 중국은 이례적으로 미사일 관련 기술을 제공했다. 중국의 공식적인 기술 지원과 러시아에서 밀입국한 기술자 덕택에 북한은 93년 5월 말 함경북도 화대군 미사일 시험장에서 새로운 미사일을 시험 발사해서 성공을 거두었다. 노동 1호이다. 노동 1호는 1단 로켓이지만 스커드와 달리 로켓 엔진 여러 개를 한꺼번에 점화해 강력한 추진력을 얻는 집속 로켓 방식이었다.

노동 1호 때문에 가장 놀란 것은 일본이었다. 1300㎞나 되는 노동 1호의 사정 거리는 오키나와를 제외한 일본 전역을 사정권에 넣는 것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노동 1호가 성공하기 이전인 90년부터 사정 거리가 훨씬 먼 미사일을 쏘기 위해 다단계 로켓 방식의 미사일을 연구 개발하고 있었다.

대포동 1호는 미국에 맞서는 전략 무기

북한은 일본 본토에 있는 미군 기지뿐만 아니라, 오키나와(평양에서 1400㎞)·필리핀·괌까지 때릴 수 있는 미사일이 필요했다.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지원을 차단하고, 핵과 동시에 개발할 때 미국과 대등하게 협상하고 국제적 지위도 얻을 수 있는 전략 무기가 절실했던 것이다. 이 결과물이 98년 8월31일 북한이 일본 열도를 넘겨 쏘아 올린 대포동 1호이다. 당시 북한은 이를 광명성 1호라는 인공 위성 로켓이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이는 대포동 1호 미사일 탄두에 인공 위성을 얹어 쏘아 세계의 비난을 피하려는 계산이었다.

현재 북한이 발사 준비 중인 대포동 2호는 사정 거리가 4300∼6000㎞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미국의 알래스카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다. 최근에는 대포동 2호의 사정 거리가 9600㎞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 정도면 미국 본토 전역을 충분히 사정권에 둘 수 있는 ‘대륙간 탄도탄’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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