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보험료율 인상이 불붙인 샐러리맨의 분노
  • 장영희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1999.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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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보험료율 인상에 직장인들 분노 폭발… “봉급쟁이만 피 해 주는 세제·세정 뜯어고쳐라”
6·3 재선거 결과는 봉급 생활자의 심판인가. ‘봉급자 보험료 과잉 부담 저지 및 사회 보험 개혁을 위한 범국민대책회의’는 6·3 재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것은 정부·여당에 대한 봉급 생활자의 심판이라고 주장했다. 한국노총과 20여 사회단체, 5백개 직장협의회로 구성된 이 모임은 사회 보험 개혁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6월21일부터 사회 보험료 납부 거부 운동에 들어가겠으며, 2000년 총선에서 여당에 철퇴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재선거가 있던 날인 6월3일 서울 여의도에서는 또 하나의 봉급 생활자 저항이 있었다. 사무금융노련·금융노련·언론노련·참여연대 4개 노동·시민 단체가 자영자 소득 파악을 위해서는 세제 개혁만이 해결책이라며, 조세 형평 실현을 촉구하는 50만인 서명 운동에 돌입했다. 이들은 국민연금을 확대 실시하는 과정에서 봉급쟁이들의 부담만 늘어났다면서, 입법 청원·공청회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정부와 정치권을 압박할 계획이다.
거짓말한 사람과 안한 사람 사이의 형평성 갈등

이런 노동·시민 단체들의 움직임은 이른바 ‘유리 지갑’들의 반란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최근 사회 보험을 둘러싸고 표출되고 있는 직장인들의 분노는 결코 심상치 않다. 우선 국민연금의 경우. 직장 가입자들은 올 4월부터 보험료율이 3%에서 4.5%로 높아졌고 그에 따라 보험료가 평균 4만5천원에서 6만6천원으로 인상되었다. 새로 국민연금에 가입하게 된 5인 미만 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이 느끼는 불만은 더 크다. 이들은 지역 가입자로 분류됨에 따라 사업주와 절반씩 보험료를 내는 기존 직장 가입자와 달리 보험료를 전액 부담하고 있다.

의료보험도 마찬가지. 올 들어 1백40개 직장 조합 가운데 22개 조합이 이미 보험료를 평균 27% 올렸으며 나머지 조합들도 잇달아 보험료를 인상할 예정이다. 더욱이 직장 조합과 지역 조합이 통합되는 2000년에는 상여금과 수당 등에도 보험료가 부과될 가능성이 높아 직장인들의 의료보험료가 최고 3배 가까이 오를 것이라는 예측마저 나오고 있다. 실업자가 늘어나면서 기금 운용이 어려워진 고용보험 역시 지난 1월 요율 인상에 따라 평균 부담액이 4천3백원에서 7천2백원으로 늘어났다. 이에 따라 직장인들의 월급 봉투에서 원천 징수되는 사회보험료는 대략 지난해보다 3만원 오른 평균 11만원 선(월 소득의 9%)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IMF 체제 이후 월급 봉투가 얇아진 대부분의 봉급 생활자 처지에서 보자면 사회 보험료 대거 인상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그러나 봉급 생활자들이 분노하고 있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다름 아닌 형평성 문제다. 자신보다 많이 버는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세금을 적게 내는 것도 울화통이 치미는데, 사회 보험료까지 적게 내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 30대 직장인은 “변호사나 의사 같은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평소 나보다 세금을 덜 내는 데 불만스러웠다. 그런데 국민연금마저 적게 낸다니 분통이 터진다”라며 직장인이 봉이냐고 분개했다. 또 한 40대 재벌 그룹 부장은 “대부분의 고소득 자영자가 나보다 소득이 적다는 것을 도저히 못믿겠다. 차라리 이들의 아파트 평수와 자동차 배기량을 부과 기준으로 삼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라고 비아냥댔다. 한국노총 정길오 선임연구위원은, 봉급 생활자를 우롱하는 정부의 처사에 왜 가만히 있느냐며 투쟁을 독려하는 노동자들의 전화 공세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말했다. 최근 잇단 사회 보험료 인상이 형평성을 잃은 세금에 대한 잠재적 불만에 불을 당기는 불쏘시개 구실을 한 셈이다.

봉급 생활자들이 형평성 시비를 제기하는 것을 단순히 피해 의식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실제로 이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현재 도시 자영자 4백만명이 신고한 소득 수준은 평균 84만원으로, 봉급 생활자(1백48만원)의 60%에 불과하다. 상당수가 소득을 줄여 신고한 혐의가 짙다. 그런데 자영자의 과소 신고가 국민연금관리공단이 홍보하듯 이들이 나중에 연금을 적게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왜 봉급 생활자에게 불똥이 튀는 것일까.

다름 아닌 국민연금의 소득 재분배 기능 때문이다. 자영자들이 자신의 소득을 실제보다 줄여 신고해 보험료를 적게 내게 되면 국민연금 재정의 균등 부분, 이른바 ‘A값(전체 가입자의 평균 소득 월액)이 줄어들게 된다. 이에 따라 실제로 올해 퇴직하는 봉급 생활자는 지난해에 비해 연금 급여가 최고 13%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사회 보험료의 형평성 시비를 둘러싼 구도는 얼핏 보면 ‘유리 지갑(봉급 생활자)’과 ‘가죽 지갑(자영자)’의 대결로 보인다. 그러나 거짓말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 사이의 갈등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일본의 조세학자 사이에 유행했다는 ‘9·6·4’, 즉 봉급 생활자는 90%, 사업자는 60%, 자유 직업자(전문직)는 40%만 소득이 드러난다는 분석에서 알 수 있듯이 봉급 생활자는 대부분 유리알처럼 소득이 투명하게 드러난다.

‘정직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인 봉급 생활자들의 분노가 갈수록 거세지자 정부는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 4월 총리 직속 기구인 사회보장심의위원회 아래 자영자소득파악위원회를 발족한 것이 좋은 예. 그러나 아직 자영자의 소득을 어떻게 파악하겠다는 것인지 관련 부처마다 해결 방안도 의지도 다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노동·시민 단체들도 비판의 소리를 함께 내지만, 해법에 대해서는 두 갈래로 의견이 나뉜다. 한국노총과 경실련은 궁극적으로는 세제 및 세정 개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걸리는 일이므로 우선 직장인 연금과 자영자 연금을 분리하는 등 봉급 생활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단기 대책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반면 민주노총 계열 노동 단체와 참여연대는 연금 재정을 분리하면 당장 봉급 생활자의 불만은 누그러뜨릴 수 있겠지만, 정부나 정치권에 세제 및 세정 개혁을 강요하는 압력 강도를 크게 떨어뜨릴 뿐더러 사회보장 제도 자체를 뿌리째 뒤흔들 위험이 크다고 본다. 참여연대의 한 관계자는 “이번이 절호의 기회다. 자영자들의 과소 신고 등에 따른 형평성 논란은 세제 및 세정 개혁을 통해 철저하고도 정확하게 소득 파악에 나서는 정공법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노동·시민 단체의 흐름은 이렇듯 어디에 방점을 찍는가에 따라 미세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세제 및 세정 개혁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이들은 왜 세제 및 세정의 근본 개혁을 주장하는 것일까. 현재 국민연금이든 의료보험이든 신고 대상자가 ‘나 놀아요’ 혹은 ‘소득이 얼마에요’하고 주장하면 이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 파악할 길이 없다. 그 결과 국민연금 신고 자료에 실업자(무소득자 혹은 휴폐업자)가 무려 3백52만명(실업률 16.6%)이나 기록되는 황당한 일이 빚어지고 있다.

국세청은 종합소득세 신고 자료를 통해 자영자의 소득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전체 자영자 가운데 38%(97년 기준)만 소득을 파악하고 있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전체 부가세 납세 인원을 정밀하게 조사한 적이 없어 솔직히 38%도 ‘감’이라고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설령 38%라는 수치를 그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자영자의 무려 62%가 과세 미달이라는 이유로 소득세를 한푼도 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자영자 38% 가운데에서도 상당수가 수입을 적게 신고해 소득세를 탈세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97년 한국조세연구원의 추정에 의하면 자영자들은 실제 소득의 절반 수준으로 소득을 줄여 신고하고 있다.

이들이 탈세를 하거나 아예 소득세를 내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 우선 자영자가 어떤 세금을 내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자영자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세(부가세)를 낸다. 부가세는 정확히 말해 자영자가 아닌 소비자가 부담하는 간접세이다. 생산자인 자영자가 대신 거두어 내는 것이다. 또 하나는 종합 소득세가 있다. 자영자는 국세청에 올해 영업 활동의 결과인 수입(매출액)및 소득 규모를 다음해 5월 신고한다.돈 잘 버는 의사까지 과세특례 혜택

우선 신고 납부제를 시행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국세청이 고시하는 표준소득률(장부를 쓰지 않는 사업자의 소득을 추계하는 기준)을 적용해 세금을 매기고 있어 과소 신고가 가능해진다.‘바보’가 아니라면 표준소득률보다 더 많이 벌었다고 신고할 납세자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영자가 소득세를 탈루할 수 있는 주된통로는 조세 전문가들이 한국 세제의 아킬레스건이라고 지목하는 부가세이다. 전체 부가세 납세자 중에서 연간 매출액이 4천8백만원 미만인 과세 특례 및 1억5천만원 미만인 간이 과세 대상 인원이 무려 64%(1백70만명)나 된다( 2천4백만원 미만은 부가세 면제). 선진국들은 대개 이 비율이 10∼15%에 불과하다. 한국의 경우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은 것이다.

77년 부가세가 처음 시행될 때 같이 도입된 과세특례제는 본래 세금을 내기 힘든 영세 사업자들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취지에서 출발한 좋은 제도였다. 그런데 이 제도를 악용한 것은 바로 정치권이었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정부를 압박해 대상자를 늘린 것이다. 96년 총선 직전에는 결코 영세하다고 볼 수 없는 4천8백만원 이상~1억5천만원 미만 사업자에게 부가세 감액 혜택을 주는 ‘간이 과세자’라는 기발한 착상까지 해내 부가세의 납세 질서를 더욱 헝클어뜨렸다.

흔히 고소득 자영자로 알려진 변호사·의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 가운데에서도 과세특례자 및 간이 과세자가 적지 않다. 자영자 가운데 가장 소득을 많이 신고하고 있는 직종인 변호사의 33.6%가 여기에 포함된다. 의사의 경우는 한술 더 떠 55.9%나 되는데, 돈 잘 벌기로 소문난 성형외과 전문의는 무려 80.8%가 과세특례자 혹은 간이사업자로 인정받고 있다.

이들은 장부를 기장할 의무가 없으므로 탈세 유혹에 빠지기 쉽다. 국세청이 성실 신고 여부를 들여다볼 원천 수단이 없다는 사실을 악용하는 것이다. 77년 탈세를 막기 위해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도입한 부가세가 탈세의 온상이 된 것 자체가 한심한 일이지만, 더 큰 문제는 그 폐해가 부가세에 그치지 않는 데 있다. 자영자들은 부가세를 줄여 매출액 자체를 줄이고 이 매출액을 바탕으로 소득세를 신고할 때 요것밖에 벌지 못했다고 내놓는 것이다. 부가세에서 시작된 탈세 행렬이 소득세에도 고스란히 이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노동·시민 단체와 대부분의 학자들이 자영자 소득을 파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세제 및 세정 개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한국조세연구원 현진권 연구위원은 “한국 세제의 가장 큰 결함인 부가세를 손질하고 진정한 의미의 신고 납부제를 뿌리 내리게 하면 사회 보험도 살고 세금도 바로 설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세제와 세정 개혁에 열쇠를 쥐고 있는 재정경제부와 국세청 역시 이런 인식에는 기본적으로 공감한다. 국세청은 이미 지난 3월 과세특례제 개혁을 골자로 하는 세정개혁안을 재경부에 제출했다.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던 재경부도 여론의 압박을 의식한 탓인지 최근 입장을 바꾸었다. 재경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행 과세특례와 간이 과세제도를 통합해 새로 기준을 정하거나 아예 없애는 세법 개정안을 올 가을 정기국회에 제출해 통과시킨 후 내년 7월부터 시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라고 밝혔다. “문제 만든 정치권이 결자해지하라”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수차례 폐지할 필요성은 느껴 왔지만 갑작스럽게 폐지하면 조세 저항을 부를 수 있다는 걱정에서 망설여왔다. 하지만 최근 정부나 국세청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대한 해보겠다는 분위기로 확 돌아섰다”라고 말했다. 노동·시민 단체나 언론이 이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한 것이 힘이 되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여론의 힘을 믿고 끝까지 소신껏 밀어붙인다면 과세특례제도는 획기적으로 개혁될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 복병이 남아 있다. 정치권이다. 내년 총선에 사활을 걸고 있는 정치권이 인심을 잃을 일을 하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은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결국 세제를 이 지경으로 헝클어뜨려 세금에 이어 사회 보험에까지 형평성 시비를 낳게 만든 최대 원인 제공자가 누구냐. 정치인들이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풀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세금과 사회 보험의 형평성 시비를 둘러싼 이른바 유리 지갑들의 불만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봉급 생활자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는 노동·시민 단체들은 9월까지 다양한 압박 수단을 동원해 예의 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때까지 정부가 획기적인 개혁안을 내놓지 않거나 정치권이 개악을 기도한다면, ‘월급쟁이들의 대반란’‘조세 저항 운동’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87년 6월 넥타이 부대들은 정치 민주화 요구를 내걸고 군사 정권을 무너뜨렸다. 99년 6월 넥타이 부대들은 경제 민주화를 내걸고 반란을 준비 중이다. 이들이 87년처럼 정권을 굴복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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