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자본주의+아날로그 사회주의=?
  • 김유향 (이화여대 강사·정치학) ()
  • 승인 2000.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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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사회 개방으로 연결될지 의문… 정보 불평등·투기 자본 침투 등 부작용도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단연 ‘북한’과 ‘정보 통신’이다. 그러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가지 뜨거운 이슈가 만난다면? 디지털 자본주의가 아날로그 사회주의를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 낯선 충격을 체험해 가고 있는 우리가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은 무엇일까?

이 만남을 가능하게 한 가장 중요한 추동력은 모든 것을 디지털 기호를 통해 새롭게 창출해 내고, 상품화해 내는 정보 통신 혁명이다. 전세계적인 정보 통신 혁명의 파고는 이제 북한의 앞바다에 이르러, 고립되어 있던 북한 사회를 그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또한 한바탕 거품이 꺼지고 난 후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고 있던 남한 디지털 자본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남한 사회에 불어닥쳤던 닷컴 열풍이 이제 새로운 시장 북한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 지도층은 빈사 상태에 빠진 북한의 경제를 새롭게 도약시킬 수 있는 기반으로 정보 통신 기반 경제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디지털 자본주의와 아날로그 사회주의의 만남은 남북한 모두에게 낯선 두려움과 기회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세 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북한의 디지털 경제 진입, 기회와 위기 동반

첫째, 북한이 디지털 경제로 이행하는 것이 북한 경제의 회생에 결정적 계기가 될까 하는 점이다. 정보 통신 혁명이 인도하고 있는 미래는 많은 가능성과 기회를 제공하는 새로운 세계임에 틀림없지만,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 즉 정보 불평등 문제는 과거의 남북 문제와는 비교할 수 없이 국가 간에 엄청난 격차를 낳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과거 빈사 상태였지만 독립적으로 존재하던 북한 체제는 디지털 경제로 편입해 이제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 위계 구조의 가장 하위 부분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편입한 대가가 북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지는 북한의 ‘디지털 지도층’과 민족의 화해와 고른 발전을 고려해야 할 남한 지도층 모두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둘째, 북한은 단지 한바탕 거품이 꺼진 남한의 디지털 자본에 새로운 특수(特需)를 제공할 시장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을 새로운 정보 통신 시장으로 생각하고 맹목적으로 덤벼들고 있는 남한 디지털 자본의 투기성이다. 이를 무엇보다 잘 보여주는 것이 남북 정상회담을 전후한 시점에 북한 관련 도메인 명의를 선점하려 시도한 투기적 행위들이다. dprk.com을 비롯한 대부분의 북한 관련 도메인들이 미국과 한국의 기업 및 개인 들에 의해 등록되었다. 이는 우리 사회가 북한을 보는 눈이 어느 사이엔가 동질성을 회복해야 하는 상대라기보다는 이익을 추구할 대상으로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셋째, 북한이 디지털 경제로 이행하는 것이 곧 북한 사회 개방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서이다. 물론 정보 통신 혁명의 핵심적 속성 중의 하나가 개방과 분권화라고 할 때 정보 통신 혁명이 북한 사회 개방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정보통신산업 및 인터넷을 발전시키는 데 대내용과 대외용을 구분하여, 대내적으로는 인터넷 확산 및 발전을 고무하면서 외부와의 연결은 차단하는 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중국의 사례는 앞으로 북한의 발전 방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전례가 될 수 있다. 사상가들의 경고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정보화는 새로운 통제 기술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연장선상에서 북한의 정보통신산업 발전 정책과 일반 국민 수준에서의 정보 통신 확산은 현시점에서는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아날로그 사회주의인 북한의 선택은 지구적 규모로 좁혀져 오는 디지털 경제권의 포위 속에서 내려진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남북한 모두에 요구되는 것은 디지털 경제로 진입해 얻게 되는 기회만이 아니라 그것이 초래할 위기를 동시에 인식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토대 삼아 남과 북의 ‘정보 불평등’을 줄이려는 노력이 선행되고, 그 위에서 남북한 간에 정보 통신의 결합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 결합은 상승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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