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RK.com’인터넷에 뜨다
  • 남문희 기자(bulgot@e-sisa.co.kr) ()
  • 승인 2000.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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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포뱅크, 북한 공식 영문판 사이트 개설… 정치·경제·법률 등 컨텐츠 풍부
지난 7월8일은 고 김일성 주석의 6주기이다. 이 날 베이징에 본부를 두고 있는 ‘범태평양 조선민족 경제개발 촉진협회’(범태) 명의로 인터넷 사이트 하나가 열렸다. 범태측이 운영해온 조선인포뱅크(www. dprkorea.com)의 영문판 사이트이다. 그런데 이 영문판 사이트는 기존 ‘조선어판’ 사이트를 그대로 영어로 번역한 것이 아니다. 기존 조선어판 사이트에 비해 디자인이 훨씬 세련되었고, 컨텐츠는 더욱 다양하고 풍부해졌다. 또한 조선어판 사이트는 서버 성능이 떨어져 속도가 느린 데 비해 영문판은 검색 기능이 매우 빠르다.

영문판 조선인포뱅크는 그러나 국내에서는 별로 주목되지 못했다.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범태측이나 주변 관계자들이 적극 홍보하지 않은 탓이다. 베이징 현지에서 일본의 <니혼 게이자이 신분>이 단독 보도하는 데 그쳤고, 국내 언론은 국제면 한 귀퉁이에 이를 조그맣게 인용 보도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 사이트의 출범을 그냥 그렇게 지나쳐도 되는 것일까. 범상하게 넘기기 어려운 일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이 사이트를 운영하는 주체인 범태가 어떤 조직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범태가 남한의 정부 당국이나 경협 사업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10일 베이징에서 조선인포뱅크라는 사이트를 공식 출범시키면서부터였다. 조선인포뱅크는 북한의 정치·경제·산업·무역·관광·법률과 관련한 컨텐츠를 풍부하게 제공해 단연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이 사이트를 제공하는 범태라는 조직의 성격을 두고 논란이 일어났다. 몇몇 대북 사업자들이 범태가 과연 북측이 운영하는 조직인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조직이 운영하는 조선인포뱅크는 북한의 공식 사이트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런 논란이 빚어진 것은 북한 스스로 그동안 이 사이트를 북한 공식 사이트라고 명백하게 밝힌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범태의 운영 주체는 노동당 중앙위

사실 어떤 면에서 보면 북한은 국제 인터넷 세계에서 일종의 ‘불랙 홀’이다. 전세계의 인터넷 주소를 총괄하는 IANA(Internet Address Numbers Authority·미국 소재)는 세계 2백42개 나라의 국가 도메인 이름을 정하고 이를 관장하는 기관을 나라 별로 지정해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북한의 국가 도메인은 kp인데, 북한은 아직 이 도메인을 관장할 기관을 지정하지 않고 있어 이 도메인을 사용하는 사이트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 도메인을 사용하는 사이트가 없다고 해서 북한 당국이 관여하는 사이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조선인포뱅크 같은 경우가 그런 사례이다. 조선인포뱅크에 담긴 정보의 질과 양을 볼 때 이것이 북한 당국과 무관한 외부 사업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볼 수 없다. 또한 이 사이트 출범을 전후한 시기에 친북한계 언론이 보도한 내용을 보면 이 사이트가 북한 당국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를 들어 <조선신보> 1999년 10월27일자 보도를 살펴보면 ‘베이징에 본부를 두고 있는 범태가 북한 최초의 공식 인터넷 사이트인 조선인포뱅크를 개설했다’고 지적하면서 ‘조선이 외국에 정보를 발신해 대외 관계의 개선을 지향하는 움직임으로 주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최근 <니혼 게이자이 신분> 역시 북한측에 범태가 운영하는 조선인포뱅크가 북한 공식 사이트인지를 조회했는데, 이에 대해 ‘그렇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범태의 운영 주체는 누구인가. 지난해 10월21일자 연합통신은 베이징발 보도에서 ‘조선인포뱅크 운영본부인 범태는 지난해 4월15일 중국 베이징에서 발족했으며 주체 88주년을 기념해 북한과 중국 러시아 미주 등지의 친북 교역업자 88명이 주축이 되어 구성되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 단체의 외양이 어떻든 실질적인 운영 주체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국제부라는 지적도 있다. 즉 당 중앙위 국제부 산하에 대외경제사업부가 있는데, 범태의 실질적 운영 주체는 이 대외경제사업부라는 것이다.

그동안 범태를 둘러싸고 시비가 붙었던 까닭은 베이징에 나와 있는 북한의 대외 경협 조직들 간에 갈등이 빚어졌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설득력이 있다. 예를 들어 조평통 산하 아태평화위 같은 경우도 인터넷 사업에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준비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아태평화위 관계자들이 이들과 접촉하는 국내 기업인들에게 ‘아직 공식 사이트는 없다’는 식의 얘기를 흘려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문판 조선인포뱅크가 출현함으로써 그동안 범태와 조선인포뱅크의 위상을 둘러싼 대내외적 논쟁은 종지부를 찍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사실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중관촌 방문을 계기로 범태의 위상이 강화되기 시작했고, 그 뒤 범태 이외의 조직에는 인터넷 사업 추진을 불허한다는 명령이 떨어졌다는 정보가 흘러나온 적도 있다.

이런 흐름에 덧붙여 영문판 조선인포뱅크가 북한 내부에 신선한 충격을 주면서 범태의 위상이 더욱 확고 부동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즉 기존 조선어판 사이트에 비해 세련되고 짜임새 있는 외양과 내실을 갖추어 국제 무대에 내놓아도 손색 없게 만들어진 사이트를 보고 북한의 ‘디지털 지도층’이 상당히 높게 평가했다는 것이다. 인터넷 통해 경협 모델 창출할 필요

국내에서는 아무래도 영문판이어서 이 사이트에 대한 반응이 미미했지만 정작 외국에서는 상당한 호응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평양에서 발간되는 <평양 타임즈>의 경우 외국에서 인쇄 매체로 받아 보려 할 경우 발간된 지 25일 정도가 지나야 가능한데 이 사이트에 들어가면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조선 중앙 통신’ 뉴스도 마찬가지다. 그것도 조선어가 아니라 영어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외국에서 호응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이 영문판 인터넷 사이트는 아직 영문판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미 국내의 북한 관련 기관들이나 관련 사이트들을 무색케 한다. 예를 들어 경제 분야에 들어가면 북한의 대외무역 기관이나 기업체 소개가 나오는데, 이를 보면 남한의 통일부나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등 기존 북한 관련 기관이 발간한 북한 기업 리스트의 상당 부분이 부정확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존 리스트는 직접 조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북한의 기관들과 접촉한 국내 기업들을 조사하거나 팩스 연락 과정에서 얻은 정보를 취합해 작성했지만, 영문판 인포뱅크의 북한 기업 리스트는 북한 당국이 직접 제공한 것이다.

북한의 공식 인터넷 사이트가 가진 위력은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북한 당국이 직접 제공한 정치·경제·사회·문화·관광 관련 자료를 통해 그동안의 잘못된 정보를 통한 오류가 바로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베이징의 범태 사무실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특별 지시로 북한 내에서 발간되는 거의 모든 공식 간행물이 속속 도달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인터넷이 남북 경협의 실질적인 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인터넷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뛰어든 이유도 바로 이 점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국내 중소기업들은 북한 파트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고 절차가 복잡해 경협에 선뜻 뛰어들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앞으로 남한의 사업 희망자가 인터넷을 통해 북한의 산업 관련 정보를 수집해 북쪽 파트너와 e-메일을 통해 직접 상담할 수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아직까지 북측과의 e-메일 상담 등은 통일부에 북한인 접촉 신고를 마친 뒤에라야 할 수 있다.

남과 북의 경협 파트너들이 인터넷이라는 간편한 도구를 통해 과거에 비해 훨씬 다양하고 풍부하게 접촉할 때 그 과정에서 남북 경협의 바람직한 모델을 하나씩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이제 인터넷 바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인터넷 세계에서 만나게 될 북한과 과연 어떠한 협력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할지 이제부터 심사 숙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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