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이 지핀 음모론 불씨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9.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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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지검장·고검장 출신 ‘퇴출’ 등 오락가락 결정으로 화 자초
심재륜 파동을 거치면서 많은 언론이 ‘음모론’을 보도했다. 음모론은 오는 8월 임기가 끝나는 김태정 검찰총장의 뒤를 이어 검찰총장이 될 수 있는 현직 고검장 중 상당수가 대전 지검·고검의 책임자를 지냈거나 맡고 있다는 데서 나왔다.

현직 고검장급 인사는 8명이다. 이 중에서 대전지검이나 대전고검을 한 번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이원성 대검 차장·최경원 법무부 차관·송정호 법무연수원장 세 사람이다. 또 원정일 광주고검장은 이종기 변호사가 개업하기 훨씬 전인 72년에 대전지검에서 평검사를 지냈으므로, 이변호사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이변호사 개업은 92년). 결국 나머지 4명 가운데 김상수 서울고검장·심재륜 대구고검장·최 환 부산고검장은 92년 이후 대전 지검장·고검장을 지냈고, 김진세 고검장은 현재 대전고검장이므로 지휘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번도 대전지검이나 대전고검에 근무한 적이 없는 김태정 검찰총장이 이변호사에게 떡값이나 전별금을 받은 현직 검사들의 사표를 받겠다고 선언한 것은 1월26일이었다. 이에 앞서 1월23일쯤 대검에서는 이변호사 개업 이후 대전 지검이나 고검에서 책임자를 지낸 사람들에 대해 지휘 책임을 묻는다는 소문이 떠돌아, 몇몇 언론이 이를 보도했다.

지휘 책임이 있는 고검장들로부터 사표를 받을 경우, 차기 검찰총장 후보는 이원성 대검 차장·송정호 법무연수원장·원정일 광주고검장·최경원 법무부 차관 4명으로 압축된다. 대검 차장과 더불어 강력한 총장 후보인 서울고검장과 부산·대구·대전 고검장이 ‘퇴출’된다면, 이원성 대검 차장이 총수가 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심재륜 대구고검장이 ‘국민 앞에 사죄하며’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대검 기자실을 떠난 지 불과 5분 후, 이원성 대검 차장이 흥분한 표정으로 기자실을 찾아와 ‘비열한’ ‘건방진’ ‘고검장까지 지낸 친구가…’ 따위 표현을 써가며 심고검장을 비난했다. 이원성 대검 차장이 흥분한 것은 심고검장의 성명이 음모론을 공론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6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김영삼 정부 때인 93년 5월 서울지검 강력부 홍준표 검사(현 한나라당 의원)는 슬롯 머신 사건 수사를 주도했다. 이로 인해 이건개 대전고검장이 구속되고, 신 건 법무부 차관과 전재기 법무연수원장이 사표를 냈다. 조금 다른 이유로 최명부 대전고검장도 사표를 내 고검장 8명 중 4명이 ‘정리’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 해 8월 검찰총장에 취임한 사람은 김도언 대검 차장(현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김도언씨는 당시 가장 유력한 총장 후보인 대검 차장 직에 있었다지만, 아직도 검찰에서는 슬롯 머신 사건 덕분에 김차장이 검찰총장 직에 무혈 입성했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일관성 없는 대검 탓에 이문재 차장 검사 ‘망신’

음모론과 관련해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이변호사와 사시·사법연수원 동기인 이문재 대전지검 차장 검사(52)의 사표 제출 사건이다. 1월6일 이변호사 사건이 터진 직후 이차장은 기자들에게 “이변호사와는 동기여서 술집에 몇 차례 간 적이 있다. 그러나 그와는 나이 차이가 나고(이차장이 다섯 살 많다) 성격이 맞지 않아 가깝게 지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고백’ 때문에 이차장이 이변호사로부터 향응을 받은 것은 기정 사실이 되었다. 그런데도 검찰 수뇌부는 이차장에게 수사 지휘를 맡김으로써 ‘단순히 향응을 제공받은 사람은 수사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그후 이차장은 그날그날의 수사 상황을 브리핑했다. 그러나 1월25일 대검은 이차장이 이변호사로부터 향응을 받았으므로 수사진에서 배제한다고 발표하고 사표를 제출하라고 강요했다. ‘이차장을 바보로 만든’ 이러한 방향 전환은, 대검에서 지휘 책임론이 거론된 것과 시기를 같이한다. 음모론의 불씨를 지핀 것은 대통령 지시에 따라 ‘오락가락한’ 대검 자신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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