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판결 어떻게 나올까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4.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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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관 9명 ‘원칙적 보수 성향’…재판 결과 예측 불허
장면 하나. 2004년 4월○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 심판 공개 변론이 열리는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123호실 대심판정. 사진 촬영이나 방송 중계는 물론 녹음·녹화가 금지된 가운데 1백20여 방청석에는 빈 자리 하나 없다. 내외신 기자들과 정·관계와 법조계 인사들이 숨을 죽인 채 앉아 있다.

‘憲’자가 새겨진 대심판정 정면 한가운데는 재판장인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이, 그 좌우에는 김영일 김경일 권 성 송인준 김효종 주선회 전효숙 이상경(임명 일자 순) 재판관이 방청석을 굽어보고 앉아 있다. 방청석 앞 검사석에는 국회를 대표한 ‘탄핵 검사’인 김기춘 소추위원과 국회 법사위원들이, 오른쪽 피소추인 자리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변호인단 간사 문재인 전 민정수석이 팽팽한 긴장감 속에 맞서 있다.

장면 둘. 치열한 변론이 오가는 가운데 방청석이 몇 차례 술렁이고, 윤영철 재판장은 휴정을 선언한다. 재판관 9명은 옆방에 있는 122호실 대심판정 합의실로 자리를 옮겨 재판관들끼리 격론을 벌인다. 김기춘 탄핵소추위원은 국회 법사위원인 김용균·함승희 의원 등과 모여 앉아 재판 전략을 다시 숙의한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대통령(노무현) 탄핵 사건’ (사건번호 2004 헌나 1)을 맡은 헌법재판소에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3월18일 탄핵 심판과 관련해 9명이 전원 참석하는 첫 평의(評議)를 열고 본격 심리에 들어간다. 헌정 초유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따라 헌법재판소는 1988년 개소 이래 최대의 뉴스메이커로 떠올랐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된 직후 국민 여론은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이 부당하다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시사저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기각해야 한다’는 견해가 74.6%로 ‘받아들여야 한다’(21.1%)는 의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탄핵안 처리 시기에 대해서도 ‘총선 전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과반수(54.9%)였고, ‘총선 후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는 18.0%에 불과했다.

국민 여론은 ‘기각’에 기울어 있지만 헌법재판관 9명의 성향과 출신을 고려할 때 탄핵 사건의 결정이 어떻게 날 것인지 속단하기는 어렵다. 헌법재판소는 국무위원(장관)급 대우와 보수를 받는 헌법재판관 9명이 합의제로 결정한다.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6명이 찬성하면 노대통령은 파면된다. 헌법재판관들은 윈칙적으로 보수 성향으로 알려져 있다. 헌법을 수호한다는 고유한 특성 때문이다.

임명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뜻’이 반영된 헌법재판관은 한 사람도 없다. 대법원장과 같은 예우를 받는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해 주선회 주심재판관, 송인준 재판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명했다. 김영일·김경일·전효숙 재판관은 최종영 대법원장이 지명했다. 국회 몫인 권 성·이상경 재판관은 각각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김효종 재판관은 한나라당·민주당 공동으로 추천되어 국회에서 선출되었다. 지난해 11월과 올해 2월 각각 임명된 전효숙·이상경 재판관도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권만 행사했을 뿐 노대통령의 의지와는 거리가 멀다.

헌재 재판관의 ‘경력’과 최근의 정치적 상황을 연결해 보면 복잡한 그림이 그려진다. 헌법재판관 가운데 6명이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는데, 3명이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대통령 탄핵 사건 재판장인 윤영철 헌법재판소장은 광주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명했고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과 고향(전북 순창)이 같다.

대통령 탄핵 사건 주심(主審)을 맡은 주선회 재판관은 경남 함안 태생으로 마산상고와 고려대 법대를 졸업했다. 검사 출신인 주재판관은 1987년 부산지검 공안부장 재직 때 고 이석규씨 사망 사건과 관련해 당시 노무현 변호사에 대해 제3자 개입 금지 위반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전력이 있다. 수사 검사와 피고로 만났다가 17년 만에 주심 재판관과 피소추인 자격으로 다시 만났다. 헌법재판관들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 성향과 호오(好惡)까지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노무현 대통령과 헌법재판소 사이에 인연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노대통령은 유일한 여성 헌법재판관인 전효숙 재판관과 사법고시 동기(17회)이다. 헌법연구관을 겸임하면서 헌법재판소 사무처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서상홍 헌법재판소 사무차장(차관급)과도 고시 동기다. 헌법재판소 공보실은 3월15일 노대통령 탄핵 사건과 관련해 3월13일 구성한 ‘탄핵 사건 연구 전담반’(반장 김승대 연구부장)에 서상홍 사무차장이 포함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해줄 수 없다”라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3월12일 “헌법재판소에서는 국회와 다른 결론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대통령 탄핵 사건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선거법 위반 논쟁이다. 이와 관련해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성향을 미리 짚어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지난해 11월, 노대통령의 재신임 국민투표 실시 발언에 대한 ‘헌법 소원’과 관련해 헌법재판소가 내린 결정이 그것이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권 성 재판관)는 지난해 11월27일 “대통령 재신임 여부를 묻는 것은 국민투표 사항이 될 수 없다”라며 이만섭 전 국회의장과 시민단체 등이 낸 3건의 헌법 소원 심판사건(사건번호 2003 헌마 694 700 742)에서 재판관 5 대 4 의견으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노무현 대통령의 시정연설 국회 발언이 헌법 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 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노대통령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당시 윤영철·하경철·김효종·주선회·전효숙 재판관 등 5명이 ‘각하’ 의견을 냈다. 이들은 “대통령의 발언은 재신임 방법과 시기에 대한 구상을 밝힌 것에 불과하고, 정치권에서 어떤 합의된 방법을 제시해 주면 그에 따라 절차를 밟아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단순한 정치적 제안을 피력한 것에 불과하다”라고 각하 이유를 밝혔다. 반면 김영일·권 성·김경일·송인준 재판관은 위헌 의견을 냈다. 이들은 “대통령의 공표 행위는 국민투표안의 공고가 아직 없다고 하더라도 헌법 소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 행사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 때와 달라진 점은 헌법재판관의 인적 구성이다. ‘각하’ 의견을 냈던 하경철 재판관이 지난 1월29일 퇴임한 뒤 민주당 추천을 받은 이상경 재판관이 지난 2월18일 취임했다. 지난 2월 이상경 후보자 추천을 놓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국회에서 힘겨루기를 벌였다. 당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이후보자를 반대하면서 열린우리당은 이상경 재판관 국회 임명 동의안 가결에 부정적이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헌법재판관들의 이같은 보수적 성향과 인적 구성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순형 민주당 대표는 “헌법재판소가 신중하게 판단할 것이다”라며 대통령 파면에 무게를 두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보는 국민은 겨우 9.3%(<시사저널> 여론조사)에 불과한 실정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운명을 쥔 9명의 헌법재판관이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전국민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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