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드는 선거 지름길 TV에 있다
  • 李叔伊 기자 ()
  • 승인 1997.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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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유세·토론이 돈 안드는 선거 지름길…정치자금도 실명제 해야
여야 대선 주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제발 돈 선거는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이번 대선 역시 돈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요즘 대선 주자들의 씀씀이는 마치 돈잔치의 서막 같다.

그렇다면 돈 선거를 막을 방법은 무엇일까. 방법은 간단하다. 후보자가 돈 안 쓰겠다고 마음 먹고 실천하는 것이다. 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돈 안 드는 선거 방법을 묻자 한숨부터 내쉬었다. 선거 안해본 사람이야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지만, 일단 선거판에 나서본 사람이 보기에는 해법이 묘연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돈과 표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오랜 신념을 단숨에 뒤집기란 여간 힘들지 않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최대한 엄격하게 규제 장치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돈의 흐름을 막는 길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지출을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수입을 막는 것이다. 법으로 따지자면 전자는 선거법과, 후자는 정치자금법과 관계되는 사항이다.

지출을 줄이려면 선거운동 방식을 뜯어 고쳐야 한다. 조직가동비·유세비·홍보비 등 굵직굵직한 자금 소요처를 없애거나 줄이는 것이다. ‘돈 먹는 하마’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정당 연설회 같은 동원 유세다.

선거 전문가들은 동원 유세의 대안으로 텔레비전 유세와 텔레비전 토론회를 제시한다. 여당은 조직, 야당은 바람몰이에 기대던 선거 운동 방식에서 벗어나 정보화 시대에 걸맞는 미디어 유세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여야는 모두 환영한다.

국민회의 이해찬 정책위의장은 겨울 유세에는 한 사람 동원에 10만원 이상 든다면서 “정당 연설회를 폐지하고 후보자간 합동 텔레비전 유세와 토론회를 권역 별로 실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떡값’ 처벌 등 벌칙 조항도 보강 필요

신한국당 역시 텔레비전 유세에 적극적이다. 지난 5월1일 열린 ‘고비용 정치구조 개선특위’(위원장 이세기)에서는 후보자간 텔레비전 토론회를 최소 3회 이상 의무화하는 방안이 논의되었다.

또한 각당은 후보의 홍보물과 현수막을 최대한 줄이고, 그 비용을 모두 국가가 부담하는 이른바 ‘선거 공영제’를 적극 검토 중이다. 여야 모두 지출을 줄이자는 데는 한마음인 셈이다.

하지만 정치자금법 개정에 이르면 정당간 이해 관계가 엇갈린다.

대표적인 예가 지정 기탁금 논쟁. 지난해 여당은 지정 기탁금을 3백40억원 받은 반면, 야당은 한푼도 받지 못했다. 기업의 야당 기피 현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래서 요즘 야당은 여당에 집중되는 지정 기탁금을 야당에도 나눠주거나 아니면 아예 이 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야 정경 유착을 막고 정치 자금 독점을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당이 호락호락할 리 만무하다. 박희태 원내총무는 지정 기탁금 배분은 어렵다면서 “차라리 야당에도 지정 기탁금이 가도록 돈 내는 사람의 익명성을 보장해 주자”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이런 논쟁은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 김영래 교수(아주대·정치학과)는 밥그릇 싸움에 앞서 더 근본적인 정치 자금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안한 세부 실천 방안은, 모든 정당과 정치인이 정치 자금 전용 계좌를 개설해 수입·지출 내역을 공개하고, 일정액 이상의 정치 자금은 반드시 수표로 기부하며, 현재 익명이 가능한 정액 영수증제(쿠폰제)는 폐지하는 것 등이다. 특히 정액 영수증제와 관련해 국민회의 추미애 의원은 “정말 투명한 정치 자금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야당도 거의 유일한 자금 조달 창구인 쿠폰제를 과감히 포기해야 한다”라고 주장해 눈길을 끈다.

한편 선관위 관계자들은 벌칙 조항을 보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선되고 나면 끝이라는 비뚤어진 사고 방식부터 바꿔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온 국민을 분노케 한 ‘떡값’에 대한 처벌 규정을 마련하는 것도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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