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트라이앵글의 '아편 역사' 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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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6.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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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트라이앵글 45년 역사/냉전 대립에서 싹터 ‘마약 보고’로 열매 맺어
미얀마·라오스·태국 국경 지대를 일컫는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황금의 삼각지대)이 전세계에 마약을 공급하는 원산지로 이름이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70년께 부터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세계에 알려진 이곳의 마약왕은 두 사람이었다. 70년대에는 로싱한, 80년대 이후에는 쿤사가 그 주인공이었다.

골든 트라이앵글의 상징처럼 불리던 쿤사는 지난 1월5일 미얀마군에 항복했다. 이로써 25년간 전세계에 헤로인을 공급해온 골든 트라이앵글의 기지 역할이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쿤사는 항복했어도 이 지역의 마약 생산에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더 광범위한 루트를 통해 헤로인이 세계 각지로 반출되고 있다는 것이 각국 마약 수사기관의 분석이다.

이런 현상은 지금까지 이 지역 마약 군벌의 실상이 외부 세계에 뭔가 잘못 알려져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 배경에는 미얀마 북부 지역의 복잡한 정세가 작용하고 있다. 골든 트라이앵글은 마약 산지로 이름이 알려지기 훨씬 전부터 동서 냉전 체제의 첨예한 대립점이었다. 즉 49년 모택동의 공산군이 중국을 평정하자 패퇴하던 국민당 군대 중 일부가 운남성 변경에서부터 태국 국경에 이르기까지 고산 지역에 숨어들어 본토 수복을 위한 게릴라전을 펼치게 된 것이다. 이들을 대만의 장개석 정부와 미국 중앙정보국, 태국군이 지원하자, 위기 의식을 느낀 중국 공산당은 성장하던 미얀마 북부 소수민족 군벌들을 규합해 미얀마 공산당을 결성해 대응했다.

문제는 당시 국민당 첩보부대 비밀 요원들이 이곳에서 마약 거래를 시작했으나 이를 제지하지 못한 데 있다. 미국 및 서방 진영은 국민당 비밀 군대와 태국·라오스 군대가 동남아 공산주의 확장에 대항하는 동맹 세력이라는 점 때문에 마약 거래를 문제삼지 않았다. 이때 골든 트라이앵글의 숨은 실력자는 국민당 첩보원이던 웨이수헤캉 3형제와 이들의 지원을 받는 비공산 계열 소수민족 군벌 리휀환이었다. 이들은 반공 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태국 북부까지 진출해 태국 군부의 협력 아래 공개적으로 세계에 헤로인을 공급했다.

90년대 들어 마약 군벌 다원화

미국은 중국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다는 목표 때문에 눈뜬 장님 노릇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헤로인이 주로 미국으로 건너가자 미국은 ‘중국 공산주의자들이 서방 젊은이의 도덕을 타락시키기 위한 심리·화학 전쟁으로 마약을 이용한다’고 선전했다.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유입되는 마약에 중독되는 미국인이 늘고, 이에 대한 위기 의식이 높아지자 미국 정부는 뒤늦게 태국 정부로 하여금 북부 지역의 아편을 단속하도록 압력을 넣기 시작했다. 태국으로서는 유착이 잘된 동맹 세력보다는 쿤사를 타깃으로 삼는 것이 당연했다. 70년대 말 이후 쿤사가 골든 트라이앵글의 유일한 마약왕인 것처럼 알려진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70년대 말까지 태국·미얀마·라오스 접경 지역에만 한정되어 있던 마약 산지가 더 북쪽으로, 즉 운남성 접경에까지 확산된 것은 중국의 정책 변화에서 말미암는다. 76년까지 미얀마 북부 공산 세력을 지원하던 중국은 물량 지원을 늘려 아편 재배를 못하도록 해왔다. 그러나 78년 미국과 수교한 뒤로 미얀마 공산화 정책을 포기하면서 미얀마 공산당에 대한 지원을 끊었다. 이렇게 되자 공산당 지배 아래 있던 소수민족은 다시 아편 재배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들은 남부로 진출해 과거 국민당 첩보원 출신 마약 중개상들과 손잡았다. 80년대 들어 팡상 지역은 매년 수만㎏씩 아편을 저장하는 창고 구실을 했다. 미얀마 공산당은 보호비 및 세금 명목으로 통치 지역내 아편의 20%를 거둬들였다. 나머지 80%에 대해서는 거래세를 10% 부과했다.

이로써 태국·미얀마 접경에는 쿤사가, 그보다 더 북쪽인 와방 지역은 미얀마 공산당이 아편 군벌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81년, 85년, 89년 세 차례 미얀마 공산당 간부들에게 근거지를 포기하고 중국으로 귀환하라고 종용했다. 89년 2월20일 팡상에서 소집된 비밀 회의에서 미얀마 공산당 서기장 더킨바덩틴은 중국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절했다.

지방에서 마약 군벌로 성장하던 공산군 소장 간부들은 이 날 회의 결과에 불만을 품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맨 먼저 3월12일 팡상 북부에 있는 코캉 지역에서 펑자성이 반란을 일으켜 중앙당 지도부와 절연을 선언했다. 이어 팡상 남부에서는 역시 지방 공산군 사령관이던 린밍샨과 장지밍이 반란을 일으켜 라오스 접경 지대를 장악했다.

그러나 그때까지 팡상의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건재했다. 공산당 통치 지역 대부분의 영토와 중심 무력이 쿠데타군에 접수된 때는 4월16일 밤이었다. 공산군 사령관 포유창과 자오은라이는 이 날 밤 팡상에 진격해 무기고를 접수하고 총사령부를 평정했다.

쿠데타에 성공한 이들 공산군 소장 간부들은 수십 년간 싸워오던 미얀마 정부와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미얀마 언론에 ‘악마’ ‘마약왕’으로 묘사되던 이들은 하루아침에 존경스런 소수민족 지도자로 둔갑했다. 또 쿠데타를 일으켜 독자적인 군벌을 형성한 세력끼리는 형제 관계를 맺었는데, 포유창이 가장 강력한 세력이라서 맏형이 되고 린밍샨과 장지밍, 그리고 북부의 펑자성은 그의 양팔이 되었다. 이들이 거느린 군사는 포유창이 2만명, 장지밍과 린밍샨이 4천명, 펑자성이 3천명이었다.
이로써 90년대 들어 골든 트라이앵글의 마약 군벌 판도는 남부에 쿤사, 북부에 포유창·린밍샨·장지밍·펑자성 등으로 다원화되기에 이르렀다. 쿤사와 나머지 군벌 간의 차이점이라면, 쿤사는 독립을 선포하고 미얀마 정부군과 전쟁을 계속한 반면 나머지는 독립을 포기하는 대신 독자 군대와 안정적 마약 생산을 보장받았다는 점일 것이다.

미얀마 정부, 쿤사군에 아편 재배 공식 허용

미얀마 공산당 통치 지역 대부분을 접수한 포유창과 자오은라이는 사실상 가장 넓은 아편 생산지를 확보했다. 미연방 마약수사국은 이들이 마약 거래를 웨이수헤캉 형제들에게 맡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쿤사와 웨이수헤캉을 골든 트라이앵글의 2대 마약 사범으로 기소해 둔 상태이다.

또 포유창과 형제 관계인 와방 남부의 린밍샨, 북부의 펑자성은 관할 지역에 헤로인 정제 공장을 많이 세워 가장 노골적인 마약 군벌로 지목되어 있다. 이들은 과거 중국 공산당과 인연을 맺은 덕분에 현재도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쨌든 지난 1월 쿤사가 항복함으로써 골든 트라이앵글의 마약 판도는 나머지 3명으로 압축되어 있다. 미얀마 정부군과 쿤사군 간의 전쟁이 아편전쟁이 결코 아니었음은 이후의 사태가 잘 보여준다. 미얀마 정부는 현재 쿤사를 보호하면서 쿤사군 장병들에게 아편 재배를 공식 허용했다고 한다. 태국에서 발행되는 <방콕 포스트> 96년 8월22일자는 ‘쿤사가 투항한 뒤로 샨 주 호몽 지역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음에 따라 미얀마 정부 관리들은 대책회의를 열고 호몽 서부 지역 75만평 산간 지대에 양귀비를 재배하도록 정식으로 허용했다’라고 보도했다.

이로 미루어 골든 트라이앵글 지역에서 생산되는 마약을 전쟁으로 근절시키는 데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을 느끼게 한다. 취재진은 포유창을 만나본 결과 이 지역 마약이 외부 세계를 향한 악의적인 음모의 산물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오히려 수세기에 걸친 미얀마 비극이 낳은 필연적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지역 마약이 세계 각지로 확산 일로에 있고, 지난해 한국에 들어온 헤로인이 보여주듯이 우리도 결코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는 점에 있다. 다행히 현재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인 포유창은 마약왕이라는 오명을 벗고 점잖은 지도자로 다시 태어나는 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는 그 수단을 자기 통치 지역의 지하자원으로 꼽고, 이를 개발하기 위한 투자 요청 손길을 한국에 맨 먼저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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