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노동시장 ‘21세기 기상도’ 맑음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6.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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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능력·미적 감각·상상력 중시돼 ‘유리’…‘노동의 여성화’도 한몫
정부는 여성들이 일하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재산 손실이 연간 17조원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이홍구 전 총리는 95년 10월 여성 고용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 수치를 언급했는데, 그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를 ‘수입’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한 적이 있다. 자국의 여성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를 등치했다는 여성계의 반발을 샀지만, 여성 고용 현실을 잘 지적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시행된 지 8년이 지났지만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데에 남녀의 기회 평등은 요원하기만 하다. 유엔개발계획(UNDP)의 <95년도 인간개발 보고서>에는 한국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세계 1백27개국 가운데 59위, 관리직 참여율은 1백16개국 중 1백12위로 되어 있다. 여성개발원에 따르면 94년말 현재 취업 여성 중 전문직 근로자의 비율은 5%, 기업 임원, 국장급 공무원 등 이른바 고위직에 오른 여성은 3.5%였다.

이처럼 여성의 직업적 지위가 남성에 비해 많이 처지는 것은, 채용 차별 같은 기업의 성 분리 인력 정책 탓에 시장에 들어오는 것조차 방해를 받았으며, 어렵게 취업한 여성도 출산·육아라는 가족 형성기에서 반강제적으로 일을 그만두게 된 탓이 크다. 자녀가 크고 나서는 변변한 직장에 재취업이 극히 어려우므로 여성은‘잠시 쓰고 버리는 광범위한 주변 노동력군’으로 추락하기 일쑤이다. 기업들이 부담하기를 꺼리는 모성 보호 비용을 사회 차원에서 해결하지 못한 점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여성 노동력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75년 40.4%이던 경제 활동 참가율은 95년 48.3%로 늘어났다. 84~94년 여성 2백80만명이 노동시장에 새로 들어왔는데, 이같은 고용 증가는 경제성장이 절대적 요인(90.2%)이었다. 앞으로도 5∼7%의 성장률을 유지한다면 여성 고용은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전문가들이 보는 여성 노동시장의 미래는 대체로 밝다. 우선 노동의 양보다 기술·창의력 같은 질이 중요한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이다. 경제 구조 자체가 정보화·소프트화함에 따라 육체 노동보다는 지적 능력, 미적 감각, 상상력이 중시된다. 한국여성개발원 김태홍 책임연구원은 “이같은 경제 구조와 소비 유형으로 바뀌게 되면 단연 여성에게 유리하다”라고 지적한다.

고학력화·여성화·고령화는 21세기 노동시장의 공급 측면을 상징하는 핵심어이다. 한국은 결혼한 여성 1인당 평균 출산 자녀수가 1.7명 (95년)으로 이미 인력 부족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특히 남성 청년층의 인력이 갈수록 부족해질 것으로 보여 기업들은 싫든 좋든 노령자와 여성을 ‘포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성개발원의 성별 노동력 수급 전망에 따르면, 경제 활동 참가율은 남성의 경우 94년 76.4%에서 2000년 75.6%, 2010년 76.6%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여성은 94년 47.9%에서 2000년 50.7%, 2010년 55.1%로 늘어날 전망이다. 경제의 서비스화로 여성의 취업 기회가 늘어나고 기혼 여성의 재취업 욕구가 증대하는 등 전체적으로 주노동력층(25∼54세) 여성의 노동시장 참가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거기다 육아 관련 정책들이 실효를 거둔다면 여성들의 퇴출 압력은 현저히 낮아질 것이다. 그러나 경제 활동 인구 중에서 차지하는 여성 비율, 즉 노동력의 여성화 비율은 △90년 40.1% △2000년 41.1% △2010년 42.4%로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2010년의 15∼19세, 20∼24세, 여성 노동 비율은 각각 56.6% 68.1%에 달할 전망이다. 이것은 전체 노동력의 여성화 현상은 도드라지지 않지만 낮은 연령층부터 차츰 여성화가 진행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여성 취업 문제는 몇 사람의 능력 있는 여성을 어떻게 기존 시장에 들여보낼 것인가 하는 수준이나 남성들이 떠난 자리를 메우는 차원을 벗어나야 한다. 앞으로의 경제 변화를 잘 담아낸다는 차원에서 여성의 노동력화가 아니라 ‘노동의 여성화’를 꾀해야 한다. 직장과 가정 영역을 유기적으로 연결해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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