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학교·사회 모두가 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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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1998.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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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학교·사회 ‘더불어 사는 삶’ 가르치지 않아 따돌림 극성
왕따는 불치병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왕따를 당하는 아이들이 대인 관계에 미숙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사고나 감정을 읽는 데 둔하다. 지난해 김용태·박한샘 씨가 공동 조사한 바에 따르면, ‘왕따 당하는 아이 스스로 따돌림 당할 만한 원인을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가해자·방관자가 80% 이상인 데 비해, 왕따 피해자의 42%는 ‘따돌림 당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고 응답했다.

따돌림 당하는 아이들은 자기를 표현하는 데도 서투르다. 이들의 행동 유형은 대략 세 가지. 친구들이 놀릴 때 △몸과 얼굴이 굳어지거나 퉁명스런 표정으로 가만히 견디는 ‘무반응’ 유형 △화장실에 가거나, 아이들에게 복수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식으로 현실을 외면하는 ‘소극적 회피’ 유형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거나 막대기를 들고 친구들을 위협하는 식으로 상대를 당황하게 하는 ‘적극적 행동 표현’ 유형이 그것이다. 이들 행동 유형은 상황에 적절하지 않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신경정신과 병원이나 서울시 청소년종합상담실(02-285-1318) 같은 전문 상담 기관에서는 객관적인 자기 인식·자기 존중감·감정 표현 능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왕따 극복을 유도한다. 문제는 왕따 피해자와 마찬가지로 가해자나 방관자 또한 정신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의 경우 다른 사람이 받는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이 없는 것 자체가 문제일 뿐더러 죄책감, 후회감, 불의에 굴복한 데 대한 무기력감 따위도 아이의 정신 건강에 평생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상담 기관을 찾는 경우란 거의 없다.

모든 정신 건강 문제에서 예방은 치료보다 중요하다. 여기에서 왕따 현상 또한 예외가 아니다. 진태원 원장(진태원 신경정신과)은 “문제 학생 뒤에 문제 부모 있다”라고 잘라 말한다. 자식을 과잉 보호하는 부모, 정반대로 지나치게 명령·처벌 위주이거나 냉담·무심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대인 관계에 미숙할 확률이 높다.

학교 현장 또한 마찬가지이다. 전문가들은 입시·통제 위주 교육이 왕따 현상을 키우는 자양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를 극복하려면 교육 전반에 걸친 개혁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가르치는 정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계중학교(경기도 안산시)의 실험은 그런 의미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학교는 지난해부터 ‘사랑 나누기’ 반이라는 특별 활동반을 신설하고, 여기에 ‘도울 학생’들을 집중 배치했다. 도울 학생이란 과거식 표현으로 ‘요(要) 선도 학생’, 즉 동료 학생을 괴롭힌 전력이 많은 아이이다. 그렇지만 사랑 나누기 반을 통해 한 달에 두 차례 시설에 수용된 어린이·노인을 방문해 봉사 활동을 하는 동안 도울 학생들의 공격성은 눈에 띄게 줄었다. “이제는 길거리에서 지체 장애자를 만나면 반갑기까지 하다”라는 것이 사랑 나누기 반에 속한 ㅇ양(16)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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