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성문화를 이해하는 키워드③/포르노
  • 김은남·고재열 기자 ()
  • 승인 2001.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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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년들의 비공식적 성 교과서' 포르노는 이제 초등학생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초등학교 4∼5학년께 시작해 중학생 때 정점을 이루다가 고등학생이 되면 약간 시들해지는 것이 남학생들의 포르노 시청 행태라고 김현수 박사(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지적한다.

지금은 세운상가나 청계천을 기웃거리며, 또는 집안의 장롱을 뒤지며 빨간 테이프를 찾던 그런 시대가 아니다. 이제 음란물은 인터넷을 타고 '빛의 속도'로 전파되고 있다. "중학교 때만 해도 컴퓨터로 야동(야한 동영상)을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모뎀 전화선으로 10M가 넘는 동영상을 내려받으려면 몇 시간은 걸렸으니까. 그러나 인터넷 전용선이 깔린 지금은 못 볼 것이 없다. 가까운 PC방만 가도 음란물이 디렉토리 별로 정리되어 있어, "생각만 있으면 엄마나 선생님 눈치 볼 것 없이 마음껏 포르노를 볼 수 있다"라는 것이 조석희군(ㅅ고 2년)의 말이다.

비디오에서 인터넷으로 포르노의 용기가 바뀌면서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이제 단순한 정사나 동성애·집단 성관계 장면 따위를 담은 포르노는 보통물(소프트코어)로 분류되고, 어린이 강간이나 수간(獸姦) 정도 되는 내용을 담아야 찐한 작품(하드코어)으로 대접받는다.


기성 세대의 퇴폐적 성문화 재생산


그렇다면 소년들은, 어른들이 믿는 대로 단순히 성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포르노를 보는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고 청소년 문화 연구가 엄기호씨는 주장한다. 아이들이 진부하고 식상한 일상에서 탈출하기 위한, 스트레스 해소 도구로 포르노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포르노-All boys do it! designtimesp=21563>). 실제로 소년들은 '질리지만, 그래도 심심해서' 포르노를 본다고 말한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금기를 위반하는 데서 얻는 '은밀한 쾌감'도 여기에 한몫을 한다.

기성 세대는 흔히 포르노가 모방 범죄를 충동질하기 때문에 나쁘다고 생각한다. 음란물 중독 현상을 걱정하는 시각도 있다.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포르노를 통해 우리 사회의 왜곡된 성 문화를 10대가 흡수하게 된다는 점이라고 엄기호씨는 지적한다. 곧 포르노는 모든 성행위를 남성 성기 중심으로 이해하게 만들며(남성이 사정함으로써 포르노는 끝난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다. 그뿐인가. 포르노를 보며 소년들은 어느새 이런 행위를 같이할 여자(매춘 여성·하룻밤 상대)와 해서는 안될 여자(아내·연인)를 구분한다. 이중적이고, 성차별적이고, 퇴폐적인 기성 세대의 성 문화는 이렇게 재생산의 순환 회로를 밟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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