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 지상군 한국 떠난다
  • 남문희 기자 (bulgot@e-sisa.co.kr)
  • 승인 2001.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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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행정부, 군 쇄신 방안 곧 확정…공군력은 강화

이젠 한국을 떠나야 할 때? : 주한미군 지상군의 일부를 빼내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기 위한 논의가 미국 안보 전략가들 사이에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사진은 팀스피리트 훈련에 참가한 미군 병사들.ⓒ조천용

지난 1월16일 윌리엄 코언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2001년 국방 보고서>를 제출했다. 매년 초 그 해의 국방계획을 작성해 대통령과 의회에 보고하는 것은 미국 국방부의 연례 행사다. 1995년 이래 보고서 내용에 커다란 변화는 별로 없었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보아 넘겨졌던 이 보고서가 올해는 언론의 눈길을 끌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미군 10만명을 유지한다'는 판에 박힌 내용이 빠진 것이다. 그 대신 이 지역에 '고도 능력을 갖춘 군사력을 유지한다'는 다소 추상적이고 모호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미국 국방부의 정세 인식이 달라진 것일까. 사실은 그 반대이다. 아·태 지역 10만 주둔론의 근거라고 할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오히려 증강되고 있다는 것이 미국측의 인식이다.

지난해 9월 미국 국방부는 주한미군 사령부가 18개월 동안 북한 군사력 동향을 추적해 작성한 보고서를 미국 의회에 제출했다. 그 내용은 놀랍게도 남북 정상회담 등 정치적 해빙 분위기에 아랑곳없이 이 기간에 △휴전선에 전진 배치된 북한군 병력이 5% 정도 증강되어 북한 전체 군사력의 70%가 전진 배치되었고 △1시간에 5천발을 발사하던 북한군 야포의 발사 능력이 약 25% 향상되었으며 △이 기간에 있었던 인민군의 동계 및 하계 훈련 규모 역시 분단 이후 손꼽을 정도의 규모였다는 것이다.

국내의 한 군사전문가는 이보다 훨씬 충격적인 내용을 귀띔했다. 당시 인민군의 군사 훈련을 분석한 주한미군 사령부는 북한 군부가 '한미연합사의 5027 작전계획'을 이미 입수했고, 그에 대응하기 위한 훈련을 벌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주한미군 사령부는 북한군에 5027계획이 넘어갔을 것이라는 이 충격적인 결론에 대해 애써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이 작전 계획에 담긴 한·미 연합군의 메시지를 북한군이 이해할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난해 9월 의회에 낸 보고서의 결론은 뻔한 것이었다. 휴전선 일대 북한 군사력이 이렇게 증강된 마당에 주한미군, 더 나아가서는 아·태 지역 10만 병력 주둔 정책에 손을 대지 말라는 것이다. 지난 3월1일 일본 방위청 방위연구소가 발표한 '동아시아 전략 개관 2001'이나 올해 초 <워싱턴 타임스> 등 미국 언론 보도 역시 미국 군부의 이같은 인식에 동조했다.


빠르면 3월 중순께 결론 내릴 듯


그렇다면 왜 이런 모순이 발생한 것일까. 앞의 군사전문가는 지난해 9월 미국 국방부 보고서는 현지 군사령부인 주한미군 사령부의 위기 의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미국의 국방 관계자 및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 형성되어온 컨센서스를 감지한 주한미군 사령부가 이를 저지하기 위해 반론을 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의 국방보고서를 통해 볼 때 이미 대세는 기울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2월15일 한국국방연구원(KIDA) 안보전략연구부 전경만 책임연구원이 입수해 언론에 제공한 미국 랜드연구소 보고서는 이 문제와 관련해 '안개를 걷어내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정권 교체 2001'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에서 랜드연구소측은 '아시아 지역의 안정을 지원하고 동남아시아에 패권 국가가 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아시아 주둔 미국 군사력을 한반도와 일본 아래 쪽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로 '한반도에서 급격한 변화가 있을 경우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이 정치적 압력에 빠질 우려가 크다'는 점을 들었다. 이 보고서는 프랭크 칼루치 전 국방장관의 책임 아래 안보 및 방위 전문가 50여명이 참여해 작성했고, 부시 대통령에게도 전달되었다고 한다. 아·태 지역 10만 미군의 주축이 주한미군 3만7천명과 주일미군 4만7천명인 점을 고려하면 어쨌거나 이 숫자를 줄여 다른 곳으로 이전시켜야 한다는 데에 미국 안보전문가들이 합의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부시 행정부는 빠르면 3월 중순께 이 문제에 대해 내부적인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군의 해외 기지 축소 문제를 포함한 군 쇄신 방안 마련에 착수해 있기 때문이다(28쪽 딸린 기사 참조).

미국의 안보 전문가들 사이에 형성된 이같은 컨센서스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하와이 호놀롤루에서는 뉴욕 대학 연구소가 주최한 안전보장 문제 세미나가 열렸다. 일본 국제 문제 전문지인 <세계주보>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전직 고관이나 퇴역 장군 그리고 태평양군사령부 현역 간부들이 참석한 이 세미나에서, 지난해 가을께 미국에서 발표된 안보 관련 논문 두 편이 단연 화제가 되었다.

그 중 하나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아태담당 국방차관보를 역임한 커트 캠벨 씨가 <워싱턴 쿼털리> 2000년 가을호에 발표한 논문. 그는 이 논문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군의 작전 거점 및 훈련 장소를 현재와 같이 한국과 일본 기지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동남아시아 및 오스트레일리아 등 아시아 전체로 분산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더 구체적으로는 싱가포르·필리핀·태국에 미군 훈련 장소를 확보해야 하고, 오키나와 주둔 미국 해병대를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전하는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이 논문에서 미국 국방부가 1995년부터 고수해온 `'아시아 10만 주둔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그가 10만 주둔 탈피론의 원조인 셈이다.

또 하나의 논문은 <뉴욕 타임스>에서 군사안보 전문 기자를 지낸 리처드 할로란 씨가 지난해 10월 뉴욕 대학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것이다. 할로란 씨는 역시 언론인 출신답게 훨씬 앞질러 갔다. '워싱턴의 군 수뇌부 외에 미군 태평양사령부,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사령부 내에서 한국과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 지상군 병력 감축 또는 철수 가능성에 대한 검토 작업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의 논문에는 각 지상군이 이전할 후보지까지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즉 주한미군 제2 보병사단 약 2만7천명은 알래스카·괌·하와이나 미국 서해안 지역으로 철수가 검토되고 있다. 오키나와 주둔 제3해병 원정군(ⅢMEF) 약 1만8천명의 이전 후보지로는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또는 인구 밀도가 비교적 낮은 오키나와 북부가 거론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의 군 수뇌부와 안보전문가들은 왜 1995년 이래 불문율처럼 유지해온 '아시아 10만 주둔론'을 포기하고 아시아 주둔군의 주력인 주한미군과 오키나와 주둔 해병대의 이전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일까.


오키나와 주둔 해병대도 이전 배치


사진설명 아주 가는 것은 아니다 : 지상군의 공백은 공군력 강화로 메우게 된다.ⓒ나명석

미국 안보전문가들이 주한미군 지상군을 철수 혹은 감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인식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지난해 6월의 남북 정상회담이다. 정상회담 바로 직후인 지난해 6월 말께 기자는 서울을 방문한 미국의 안보 전문가들과 대화를 나눈 바 있다. 그들은 정상회담 이후 한국 국민이 주한미군 주둔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나타냈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은 통일 이후에도 주한미군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한국 젊은층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볼 때 그것이 가능하겠느냐며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때 이미 그들은 '펜타곤에서 지상군 일부 철수 계획에 대한 검토가 시작되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하와이 안보 세미나에 참석한 미국측 관계자들 역시 비슷한 얘기를 했다. 특히 한반도의 평화 분위기로 인해 주한미군 지상군 부분 철수가 단행될 경우 그 충격파는 미군기지 반대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는 오키나와 주둔 미국 해병대에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키나와 해병대는 한반도 유사시 투입을 전제로 존립하고 있는 만큼 한반도 상황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남북 정상회담은 해외 주둔 미군 전력을 재검토해온 미국 내 논의에 불을 붙인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패한 이후 미국에는 '포스트 베트남 증후군'이 뿌리 깊게 형성되어 왔다. 국제 분쟁에 미군 지상군을 투입하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이 해가 갈수록 커져 온 것이다. 이런 이유로 지난해 초부터 미국에서 열린 각종 안보 세미나에서는 '주한미군 지상군과 오키나와 주둔 해병대는 소수의 기지 보안 요원만 남겨두고 철수하거나 감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것이 아시아에서의 미국 군사력 철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또한 명백한 사실이다. 어떤 면에서는 주둔 병력의 성격을 바꾸고 지역을 옮기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주한미군의 경우는 지상군을 철수하는 대신 공군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최근 미국측이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FX) 사업의 주력 기종으로 F 15를 구입하라고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커트 캠벨 전 국방차관보가 10만 주둔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고 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아시아에서 미군의 힘과 결의는 병력 수가 아닌 능력에 의해 측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설명 "양키 고 홈" : 남북 정상회담 이후 특히 젊은층 사이에 미군 철수 목소리가 커졌다.ⓒ연합뉴스

오히려 지상군 병력의 전환 배치가 아시아 전체에 새로운 분란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0월 미국 민주당 및 공화당 소속 대표적인 안보전문가 16인이 작성한 <아미티지 보고서>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일 성숙한 파트너십을 향하여'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어느 쪽이 대통령이 되든 차기 행정부의 정책으로 채택하기 위해 만든 대단히 중요한 보고서이다. 이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앞으로 미·일 관계에서 미국은 일본에 대해 '부담 분담'(버든 쉐어링)만을 요구해온 입장을 폐기하고 '권한 분담'(파워 쉐어링)까지 해나가는 전향적인 정책을 펴겠다는 내용이다. 1980년대 말 이후 미국은 일본 두들기기 등 일본 약화(위크 저팬) 정책을 펴왔는데 앞으로는 일본 강화(스트롱 저팬) 정책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로 대표되는 일본 내 군국주의적 분위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에서 긍정적인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는 것이다. 이런 미국측의 입장 선회가 최근 일본 우익의 교과서 왜곡에도 고무적인 영향을 미쳤을 법하다. 이 보고서가 일본에 대해 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금지하고 있는 일본 헌법 제9조의 사슬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국내의 한 안보 전문가는 이에 대해 '앞으로 동북아 안보는 일본 자위대가 맡고 미군은 동남아 쪽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하기 위한 정지 작업'이라고 지적했다.


새 거점 지역으로 호주·동남아 국가 선택


동북아 안보는 일본 자위대에 맡기고 미군은 동남아로 이동하겠다는 미국의 신전략은 사실 중국에 대한 압박 전선을 아시아 전체로 확대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 해군은 1990년대 중반부터 서태평양 지역에 G라인(GREEN LINE;조어도-타이완-인도네시아)과 B라인(BLUE LINE;쿠릴 열도-마리아나 군도-파푸아뉴기니)을 그어 왔다. 지난해 1월에는 신해양 전략을 발표해 2020년까지 기존 전략 가이드 라인인 G라인에서 B라인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고 한다.

따라서 미국이 아시아 주둔 미군의 새로운 거점 지역으로 오스트레일리아와 동남아 국가들을 선택한 것은 중국측의 이같은 움직임에 맞대응하는 측면이 있다. 특히 이 지역은 동 티모르와 인도네시아 그리고 남사 군도 지역을 중심으로 대규모 천연 가스와 유전이 매장되어 있는 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면 할 일이 없어질 미군을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 이전시키겠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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