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 은폐·조작 증거 보여주마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2.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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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위, 허일병 사망 관련자들의 ‘구체적 증언’ 발표
진실을 향한 주사위는 던져졌다.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는 9월2일, 허원근 일병이 부대원의 총탄에 쓰러진 순간부터 상관들이 자살로 은폐·조작해 가던 숨가빴던 과정을 공개했다. 그 주요 내용을 발췌해 원문 그대로 공개한다.



1. 과거 헌병대 수사 결과 요지



■ 7사단 헌병대는 84. 4. 2. 14:00경 허원근 사건에 대해 소속 연대장으로부터 인지하여 수사한 결과

■ 허원근은 84. 4. 2. 09:50경 중대본부 남방 약 30m 떨어진 폐유류고 울타리 옆에서 자신의 M16 소총을 반자동에 위치시키고 스스로 우측 가슴 부위에 한발을 발사하였으나 치명상을 입지 않자 다시 좌측 가슴 부위에 발사하였으나 역시 치명상을 입지 않자 마지막으로 우측 눈썹 부위에 한 발을 발사하여 자살하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2. 위원회 조사 결과



가. 육군 제7사단 3연대 1대대 3중대 간부인 장교 2명과 하사관 1명은 1984. 4. 1. 늦은 저녁부터 술자리를 가졌으며, 술자리 도중 김○○과 노○○이 말다툼을 했다.

당시 헌병대 수사기록 및 참고인 노○○, 오○○, 이○○, 전○○, 이○○, 신○○, 우○○(당시 노○○ 전령)의 각 진술을 종합하면

▶84. 4. 1. 저녁(자정 전후로 추정됨)부터 2일 새벽 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 16소초장 장○○이 소위에서 중위로 진급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김○○, 장○○, 노○○은 중대본부 중대장실에서 진급 축하 술자리를 가졌는데, 김○○의 전령이었던 허원근이 안주를 준비하는 등 뒷바라지를 했다.

▶허원근은 술자리 도중 안주가 부실하다는 이유로 중대장실에서 중대장 김○○으로부터 질책과 함께 구타를 당했다.

▶이후 계속된 술자리 와중에 술에 취한 상태였던 선임하사 노○○이 중대장 김○○에게 철책 근무에 투입되기 전에 ○○○주점에서의 중대장의 접대부 취급을 지적한 것을 이유로 김○○과 노○○은 말다툼을 했으며 화가 난 노○○은 중대장실 문을 박차고 내무반으로 뛰쳐나왔다.


나. 1984. 4. 2. 새벽(02:00~04:00 사이로 추정)에 중대본부 내무반에서 술 취한 노○○이 발사한 한 발의 총탄이 허원근의 오른쪽 가슴 부위를 관통하였다.

■노○○의 행패

선임하사 노○○, 사병 오○○, 전○○, 이○○, 우○○의 각 진술을 종합하면

▶중대장실 문을 박차고 내무반으로 나온 노○○은 사병들에게 욕설을 퍼붓고 책상 등을 걷어차고 허원근, 오○○, 손○○를 발로 걷어차는 등 사병들에게 화풀이를 하다가 손○○가 노○○을 말리자 노○○이 손○○를 밀어버리고 나서는 실탄이 들어 있는 탄창이 삽탄되어 있었던(노○○은 19소초에서 중대본부로 이동할 때 철책인 관계로 실탄이 들어 있던 탄창을 삽탄한 채로 소총을 들고 이동했으며, 중대본부에서 탄창을 빼지 않았다) 자신의 M16 소총을 들었다.


■ 노○○에 의해 발사된 총에 허원근이 맞았는지 여부

▶참고인 이○○ 및 전○○의 진술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①자신의 소총을 든 노○○이 중대장실 앞에 대기하고 있던 허원근을 개머리판으로 찍자 허원근이 팔을 들어 막았으며 그러자 노○○이 총 쏘는 자세를 잡고서 죽인다고 고함을 쳤다.

②그 순간 총이 발사되었고 총에 오른쪽 가슴을 맞은 허원근은 쓰러졌으며, 오○○과 신○○이 쓰러진 허원근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노○○은 겁먹은 표정으로 한동안 총을 양손으로 잡고 팔을 내려뜨린 상태로 서 있었다.

※19소초원 권○○, 정○○의 진술에 의하면 노○○은 사건 전에도 흥분한 상태에서 사병들 발 밑에 총을 발사해 그 파편이 사병 눈에 박혀 부상을 입힌 적도 있었다.

▶그러나, 노○○은 ‘당시 자신이 총을 들고 행정반에서 난동을 부린 것은 기억이 나지만 총을 발사했다는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으며, 이○○ 및 전○○를 제외한 사람들은 허원근이 총에 맞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위 참고인들의 서로 상반되는 진술에도 불구하고 아래와 같은 근거들을 이유로 허원근은 1984. 4. 2. 새벽에 우측 가슴에 총을 맞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1)사건 당일 대대 상황실은 새벽(04:00~06:00 사이로 추정)에, 연대장은 07:00경에 허원근이 자살했다는 보고를 받았으며, 대대와 연대에서는 아침부터 허원근이 사망(자살)했다는 것을 알았다.

①대대 장교 송○○는 “당시 새벽에 상황실에서 근무하던 사병으로부터 ‘3중대에서 자살 사고가 났다’는 보고와 함께 전화기를 넘겨받아 중대장과 통화했는데, 중대장이 ‘중대장 전령이 중대본부 바깥에서 총기로 자살했다. 대대장에게 보고해달라’는 등의 말”을 했으며, “이후 자신은 대대장과 연대 상황실에 보고”했음을 진술했으며

②1대대 사병 최○○은 위 송○○의 진술과 부합되게 “새벽에 3중대로부터 중대장 전령이 자살했다는 보고를 받았던 것 같다”고 진술했으며
③당시 3연대장 김○○는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1대대장으로부터 3중대장 전령이 자살했다는 보고를 받고 사단장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했으며

④3연대 장교 장○○, 김○○, 1대대 장교 황○○, 1대대 사병 이○○, 김○○, 배○○, 정○○, 강○○의 진술을 종합하면, 사건 당일 대대와 연대에서는 아침부터 허원근이 사망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2)사건 당일 허원근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한 1대대장 전○○은 아침(06:00∼07:00 사이로 추정)에 사건 현장인 3중대 본부로 와서 중대장과 숙의 후 돌아갔다.

(3)사건 당일 중대본부 바깥에서 근무하던 일부 사병들은 헌병대 수사기록에 적시된 시체 발견 시각 이전에 허원근의 사건 경위에 대해 중대본부원으로부터 듣고 사건 내용을 부분적으로 알고 있었다.

①당시 중대 인사계 박○○는 “사건 당일 오전에 20소초에서 (오소리 등의) 쓸개를 먹고 있었는데, 2방의 총성이 들렸다. 중대본부에 연락했더니 중대본부 사병이 ‘인사계님! 허원근이 다쳤습니다’라고 말하기에 곧바로 중대본부에 올라갔다. 중대본부에서 중대본부원으로부터 ‘새벽 술자리에서 ○○○이 술에 취해 내무반으로 나와 허원근에게 총을 쏘고 나서 다음날 대대장이 왔으며 그리고 나서 ○○○이 시체에 2발을 더 쏘았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으며

②14소초원 김○○는 “사건 당일 중대본부에 올라갔을 때 전○○가 말을 한 것 같은데, ‘누군가가 허원근에게 총을 겨누었는데 허원근이 총을 잡고 피하려고 하다가 총이 발사되어 허원근이 죽었고, 그리고 나서 자살로 은폐하려고 시체를 중대본부 내무반 밖으로 옮겨 ○○○이 2발을 더 쏘았으며 물청소를 했다”고 진술했다.

다. 허원근이 첫발을 맞은 후(04:00∼06:00 사이로 추정) 중대장은 대대 상황실로 허원근이 자살했다고 보고하는 등 사건을 은폐했으며, 사건 소식을 접한 대대장 등이 아침(06:00∼07:00 사이로 추정)에 중대본부로 온 이후 역시 사건 은폐가 계속되었다.


■대대장 등이 중대본부로 온 이후 사건 조작·은폐 지속

▶중대본부 요원 전○○ 및 이○○의 진술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①대대장과 보안주재관 허○○이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중대본부로 온 후 행정반을 둘러보았다. 당시 내무반에는 허원근이 흘린 피가 이곳저곳에 여전히 있었다.

②대대장은 중대장실에서 김○○(과 노○○)을 혼내고 난 후 내무반으로 나와 ‘중대장 지시대로 잘 움직여라’는 등 몇 마디 하고는 나갔다.

③대대장이 나간 후 김○○은 허○○에게 사건을 수습하는 데 도와 달라고 부탁하여 허○○이 승낙하자 김○○은 중대본부원들을 모아놓고 조작·은폐 지시를 내렸는데, 그때 허○○이 거들었다.

▶그러나, 참고인 노○○, 장○○, 오○○, 손○○, 이○○, 신○○, 안○○, 권○○은 위와 같은 전○○ 및 이○○의 진술 내용을 부인하고 있다.

▶위 참고인들의 서로 상반되는 진술에도 불구하고 아래와 같은 근거들을 이유로 참고인 전○○ 및 이○○의 진술이 진실에 부합된다고 본다.

(1)당시 1대대 장교 송○○는 3중대장의 보고를 대대장에게 전한 뒤 “대대장이 보고를 받고 나서 직접 3중대장에게 전화를 하여 사건 파악을 한 것 같고 다시 전화를 하여 보안주재관 허○○과 현장을 갈 테니 차를 준비하라”고 하여 허○○를 깨워 대대장에게 보냈고, 그 뒤 “허○○이 상황실로 들어와 상황병에게 ‘이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먼저 알려주어야지 왜 알려 주지 않았느냐’고 했던 것 같다. 이후 직접 나가서 3중대로 가는 대대장 차에 대대장과 허○○이 타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2)당시 1대대 사병 최○○은 “사건 당일 새벽에 3중대로부터 ‘허원근이 죽었다’는 보고를 받은 후 대대장이 06:10~06:20 사이에 운전병을 대동하고 3중대를 다녀왔던 기억이 나며 그 운전병이 3중대를 다녀왔던 사실에 대하여 말을 한 적이 있다. 대대장이 출발하기 전에 허○○이 내무반으로 들어와 욕설을 하며 이곳저곳을 발로 걷어차고 다녔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

(3)당시 1대대 사병 김○○은 “사건 당일 새벽에 시끄러운 312 전화기가 울려 대대장이 깨어 전화를 받고 있었으며 그 와중에 보안대 허○○이 대대장 방에 들어갔다가 어디론가 갔던 것 같다. 대대장이 1호차를 대기시키라고 하여 운전병을 불렀는데 아침밥도 먹지 않은 대대장이 어디론가 갔다. 이후 대대장은 09:00경 돌아온 것 같은데, 1호차 운전병으로부터 3중대에 갔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4)당시 1대대 사병 배○○은 “사건 당일 06:00이 넘어서 대대장을 태우고 3중대에 갔다가 09:00-10:00 사이에 복귀했다. 3중대에서 사병으로부터 사병이 머리에 총을 한 방 쏴 자살했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

(5)당시 1대대 사병 정○○은 “당일 아침에 3중대에서 중대장 전령이 죽었다는 소식을 내무반에서 전해 들었으며,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허○○이 내무반에 와서 집합시켜 놓고는 ‘3중대 일 터진 것 누가 보고 받았냐’는 등 하면서 화를 냈다. 그러다가 허○○은 ‘대대장이 출발한다’는 말을 듣고 밖으로 나간 것 같다”고 진술했다.

라. 대대장이 복귀한 이후 자살로 조작·은폐 행위가 계속되었으며 누군가가 10:00∼11:00 사이에 중대본부 밖에서 허원근에게 두 발을 더 쏘았다.

■누군가가 10:00∼11:00 사이에 중대본부 밖에서 허원근에게 두 발을 더 쏘았다.

▶참고인 전○○ 및 이○○의 진술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①누군가가 10:00∼11:00 사이에 중대본부 밖에서 허원근에게 총을 2발을 더 쏘았다(※ 이○○와 전○○는 내무반 안에 있어서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지만 ○○○이 2발을 더 쏘았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②누군가가 허원근에게 2발을 더 쏠 때 이○○, 전○○, 신○○은 내무반 안에서 물청소를 하고 있었으며, 더 나아가 신○○은 상황전화를 받고 있었으나 오○○, 손○○, 안○○, 권○○은 내무반에 있지 않고 밖에 있었다.

▶그러나, 참고인 노○○, 오○○, 손○○, 안○○, 권○○은 위와 같은 전○○ 및 이○○의 진술 내용은 부인하였다.

▶조사 결과, 허원근이 새벽에 내무반에서 노○○에 의해 발사된 총에 의해 한 발을 맞았다는 것은 확인했으나, 누가 어떻게 2발을 발사했으며 누가 2발을 발사하는 것을 도와주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으나, 아래와 같은 근거들을 이유로 당일 10:00∼11:00 사이에 2발이 발사되었다는 것은 확인했다.

(1)7사단 헌병대가 사건 당일인 84. 4. 2. 작성한 인지보고(헌병대 기록 제 59쪽부터 제 66쪽까지)에는 16소초원 박○○ 등 5명으로부터 10:50경 총성이 2방 울렸다는 진술이 기재되어 있으며 허원근의 시체 주위에 탄피 2개가 발견되었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2)7사단 헌병대 김○○ 수사관이 84. 4. 2. 작성한 현장 약도에는 허원근의 시체 주위에 탄피 2발만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며(헌병대 기록 제 87쪽), 역시 7사단 헌병대 서○○ 수사관이 작성한 현장 약도에도 위 김○○이 작성한 것과 동일하게 탄피 2발만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헌병대 기록 제 353쪽).

(3)참고인 전○○, 권○○, 성○○(당시 16소초원), 노○○(당시 7사단 감찰참모 사병), 팽○○(당시 헌병대 사병), 양○○(당시 헌병대 간부), 김○○(당시 헌병대 수사관), 서○○(당시 헌병대 수사관)의 진술을 종합하면, 사건 당일 탄피 한 발을 찾기 위해 수색을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는 탄피 2발만이 있었다.

(4)당시 부검의 박○○는 “사건 발생 이틀 후인 4. 4. 부검을 할 때 헌병대 수사관들로부터 탄피가 2발 밖에 없었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



3. 향후 조사 과제



(1)2, 3번째 총격을 누가 가했으며, 왜 두 발을 더 발사하였는지 여부를 규명.

(2)사건의 은폐·조작을 누가, 무슨 이유로 지시하였으며, 어느 선까지 개입되었는가를 조사하여 규명.

(3)헌병대 수사 과정에서의 강압 수사와 그 이유를 규명.

(4)이후 군 재조사 과정에서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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