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도 울고 갈 첩보전의 거물들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3.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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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하리부터 헤밍웨이까지 ‘세계의 스파이 열전’
냉전 시대에 가장 유명한 스파이를 꼽는다면 단연 ‘제임스 본드’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영화 007 시리즈가 만들어낸,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영국 소설가 이언 플레밍이 만들어낸 허구의 주인공일 뿐이다.

현실 세계에서 펼쳐지는 스파이 전쟁은 영화 속의 그것보다 언제나 더 극적이고 냉엄하며, 비밀스럽고 치열했다. 전시와 평시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진 이같은 싸움은 또한 첩보전의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발자취를 남긴 ‘불멸의 전설’을 양산해 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배출한 스파이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아리따운 자태와 파도가 치는 듯한 자바춤 솜씨를 앞세워 미인계를 구사하는 데 탁월한 실력을 발휘했던 마타하리다. 네덜란드 태생인 그녀는 첩보원 훈련을 받은 뒤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이중 첩자 노릇을 했는데, 그녀의 간첩 행위는 실제보다 부풀려졌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 전쟁 이후 미·소 스파이 전쟁 본격화

1950년 한국전쟁 발발과 동시에 이른바 미국과 소련의 50년 사투가 펼쳐지면서 스파이 전쟁의 양상은 한층 더 살벌하고 치열해졌다. 세계 최대 규모의 스파이 전쟁 전선도 ‘연합국 대 동맹국’에서 ‘미국 대 소련’으로 옮아갔다. 미·소 스파이전의 치열함을 예고한 비극적 사건의 대표적 사례는 1951년 터진 로젠버그 가(家) 사건이다. 1940년대 히틀러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간 유태인 집안 출신 줄리어스 로젠버그와 에델 그린글래스가, 줄리어스의 처남으로부터 미국의 비밀 핵 개발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세부 사항을 캐내 소련으로 빼돌리다가 연방수사국(FBI)에 꼬리가 잡혔다는 것이 이 사건의 전말이다.

하지만 사건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죄질이 무거웠던 로젠버그 부부는 1953년 사형이 집행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때마침 몰아쳤던 매카시 광풍에 휩쓸렸던 것이다.

이 시기 서양에 악명을 떨친 또 다른 간첩 사건으로는 영국 런던의 고위층과 관계 요로에 ‘빨대’를 꽂아놓고, 영국과 미국의 고급 국가 정보를 소련측에 빼돌린 케임브리지 대학원 출신 고정 간첩 킴 필비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킴 필비는 동료 4명과 함께 이미 2차 세계대전 때부터 영국 외무부와 정보기관 등에 침투해 소련을 위해 일했으며, 전쟁이 끝난 뒤에는 영국측 정보기관원이나 미국 중앙정보국 요인의 부인들에게 접근해 환심을 사는 방법으로 정보를 캐냈다. 1950년 중반 꼬리가 밟힌 그는 1960년대 초반 소련으로 도망쳤다. 스파이 세계는 배반과 변절의 세계이기도 하다. 특히 1980년대에 암약했던 미국의 로버트 한센과 알드리치 에임즈는 최악의 배반자로 꼽힌다. 중앙정보국 분석관이었던 에임즈는 소련에서 활동하던 미국측 이중 간첩 명단을 수백만 달러에 소련에 넘겼다. 한센도 역시 워싱턴 주재 소련대사관 내부에 도청 장치가 설치된 사실, 위기 사태를 대비한 미국 최고 지도자들의 은신처 장소, 소련측 미사일 전력에 대한 미국측 평가 같은 1급 정보를 수백만 달러에 팔아넘겼다.

스파이 세계에서 고급 정보를 빼내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얼마나 감쪽같이 속여넘기느냐 하는 것이다. 이 직종에 학생·학자·문인·가수 등 여러 가지 직업이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파이들은 대개 국가에 대한 충성·신념·높은 대우가 동기가 되어 스파이 행위에 나서지만, 스릴을 맛보기 위해 스파이 세계에 뛰어드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세계적인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이 가운데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사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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