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대역습이 시작됐다
  •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감염내과 교수) ()
  • 승인 200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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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은 ‘전염병의 해’였다. 전세계에서 사스를 비롯해 O157 장출혈성 대장균·푸젠 A형 독감·H5N1 조류 독감 · 광우병이 맹위를 떨친 것이다. 더 두려운 것은, 앞으로 동물을 통한 전염병이 더 극성을 떨 것이
03년은 가축과 사람에게 최악의 해였다. 사스로 시작한 전염병은 O157 장출혈성 대장균, 푸젠 A형 독감, H5N1 조류 독감, 광우병 등으로 이어지면서 닭과 오리, 소, 사람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이들 전염병은 가축이나 야생 동물과 직접 접촉하거나, 고기 같은 부산물을 섭취했다가 걸린다고 해서 인수공통전염병(zoonosis)이라고 불린다.

문제는 이들 전염병에 마땅한 치료제나 예방 백신이 없다는 점이다. 병원체를 보유한 동물을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것도 숙제로 남아 있다. 이런 이유로 새로운 인수공통전염병은 사회 전반에 심리적 공황을 초래하고, 경제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준다.

사스는 2002년 3월 중국 남부와 홍콩에서 발생해 ‘비행기 속도’로 전세계에 퍼져나갔다. 그 결과 30개국에서 환자가 8천4백39명 발생해 모두 8백12명이 사망했다. 한때 사스가 퇴치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난 연말 싱가포르·타이완 등지에서 환자가 발생하면서 재앙이 끝나지 않았음을 확인해 주었다.

사스의 원인 병원체는 현재 사스 코로나바이러스로 알려져 있다. 이 바이러스는 중국 남부의 야생 동물, 특히 사향고양이 몸에 있다가 종간 벽(species barrier)을 뛰어넘어 사람에게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사스 치료제는 아직까지 없으며, 백신도 4,5년 뒤에나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사스 공포에 묻혀버렸지만, 2003년 한 해 국내에서는 인수공통전염병 환자가 많이 발생했다. 6∼9월에는 서울·경기 지역에서 O157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 환자가 19명, 의사 환자가 33명, 무증상 감염자가 21명 발생했다(그 중 3명이 사망했다). O157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은 1982년 미국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며, 소아와 노인에게 용혈성 요독증후군을 유발해 사망 또는 만성 신부전을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O157 대장균은 주로 소의 장(腸) 내에 있다가 대변을 통해 배설되는데, 소를 도축하면서 고기로 옮겨와 발병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으깬 소고기나 부적절하게 조리된 햄버거, 멸균하지 않은 생우유가 감염원이다.

해마다 겨울에 발생하는 독감의 원인균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다. 이 바이러스는 사람뿐만 아니라, 철새를 비롯한 조류와 돼지·말 같은 포유류도 감염시킨다. 놀라운 사실은, 이 바이러스가 해마다 유전자 변이를 통해 거듭난다는 점이다. 따라서 매년 새로운 백신을 접종하지 않으면 독감에 걸릴 확률이 높다. 올해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미 ‘살인 독감’ 소리까지 듣고 있다. 10월 초 유럽과 미국에서 푸젠 A형으로 유행하면서, 어린이에게 폐렴·뇌염 같은 합병증을 유발해 목숨을 빼앗아간 것이다.

최근 조류 가축의 ‘저승사자’로 떠오른 H5 N1 조류 독감은, 이미 1997년 홍콩에서 발생해 여섯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18명 발병). 당시 감염학자들은 깜짝 놀랐다. 그때까지 조류 독감은 사람에게 감염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동물에게 있는 바이러스가 언제든지 인체에 침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충격적인 사례였다. 지금 국내 양계 농가는 조류 독감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다. 2003년 11월 말 충북 음성의 닭·오리 농장에서 처음 발생한 조류 독감은 현재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사람에게 감염된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7년 전 홍콩에서 보았듯이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된다.

지난 12월 초, 미국의 축산농장에서 발생한 광우병은 더 심각하다(74쪽 상자 기사 참조). 사람이 걸리는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인간광우병)은 우울증·불안감·정신 위축·공격 성향 등 정신 이상 증상이 초기부터 나타나며, 증상 발현 후 평균 14개월 내에 거의 모든 환자가 사망한다. 인간광우병은 1980년 중반 영국에서 최초로 발생해, 2003년 말 현재 전세계에서 1백53명이 발병한(영국에서만 1백43명) 것으로 알려졌다. 광우병은 병원체인 프리온이 어떠한 소독 및 멸균 방법으로도 파괴되지 않아, 앞으로 인류의 큰 적이 될 전망이다.

이처럼 동물로부터 사람에게 질병이 전염된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지금까지 알려진 동물 관련 전염병은 모두 1백50 가지가 넘는다. 대표 질병으로는 탄저병, 브루셀라증, 살모넬라 식중독, 페스트, 라임병, 유행성출혈열, 렙토스피라증, 광견병, 쓰쓰가무시병, 발진열 등이 있다. 특히 쥐가 매개체였던 페스트는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국내의 동물 관련 전염병으로는 가을철에 들쥐가 매개하는 유행성출혈열 및 렙토스피라증, 진드기가 매개하는 쓰쓰가무시병이 있다. 더러 오염된 소고기를 먹고 탄저병 및 브루셀라증 환자도 발생한다. 닭의 장(腸) 내에 있는 살모넬라균과 캠필로박터균은 닭고기를 충분히 조리하지 않을 경우 식중독을 유발한다.

1960년대의 전염병 전문가들은 항생제와 백신의 위력을 믿고 전염병이 모두 정복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30여 가지 신종 전염병이 발생하자 전문가들은 그같은 희망을 포기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감소 추세이던 결핵·말라리아 환자까지 다시 늘어나고 있다. 이를 두고 일부 외국 언론은 인류에 대한 ‘미생물의 반격’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현재 선진국의 사망 원인 1위는 심혈관계 질환과 암이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보면 전염병이 사망 원인 1위이다. 특히 동물과 직간접으로 접촉해 일어나는 전염병의 사망률이 점점 더 높아가고 있다.
1992년 미국 의학연구소는 의미 있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신종 전염병과 재출현 전염병이 끊이지 않는 이유 여섯 가지를 꼽은 것이다. 첫째, 인간의 인구학적 및 생태학적 변화(노령 인구 증가 및 도시화). 둘째, 산업 및 기술 발전. 셋째, 경제 발전과 더불어 토지 이용 양상의 변화. 넷째, 국제 교역 및 여행 증가. 다섯째, 미생물 적응력 변화. 여섯째, 경제적·인적 자원 부족으로 인한 공중보건 체계 이완 및 와해 등을 지적한 바 있다.

동물과 관련된 전염병이 늘어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그러나 원인 제공자는 유일하다. 바로 인간이다. 인간의 무분별한 환경 파괴와 개발이 야생 동물과 생태계 내부에 잠재해 있던 새로운 병원체를 인간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예컨대 광견병은 원래 서식처를 빼앗긴 너구리들이 농촌 또는 교외로 내려와 전염시킨다. 1981년에 출현한 에이즈(AIDS)도 에이즈바이러스를 보유한 아프리카 원숭이가 사냥꾼에게 접근해 전파했다.1999년 웨스트나일 뇌염(미국), 2003년 사스, 원숭이 천연두바이러스(미국)도 야생동물이 사람에게 옮겨 발생한 것이다.

인구 증가·도시 집중화 등으로 전염병은 더 빨리, 더 넓게 확산되고 있다. 가축 집단 사육은 전염병 확산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75~77쪽 딸린 기사 참조). 지금 인류 앞에는 더 큰 재앙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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