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만화 영광을 우리 품안에”
  • 趙瑢俊 기자 ()
  • 승인 1995.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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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20여명 ‘우리만화협의회’ 결성…일본 만화에 대항할 한국적 캐릭터 모색중
지난 68년 창립해 문화체육부 산하 단체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만화가협회(회장 권영섭)의 회원은 94년 1월 현재 3백75명이다.

그러나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의 심의 결과를 보면 만화 생산이 일부 작가에 극심하게 편중되어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93년의 경우 총 2백27명의 작가가 만화 심의를 신청했는데, 이 중 백 권 이상을 신청한 작가는 전체의 13.2%인 30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이 제작한 작품은 5천3백16권으로 전체 심의 신청 권수의 76.5%에 달한다. 이에 반해 10권 미만을 제작한 작가는 1백56명으로 68.3%나 되어 인기 작가 편중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대본소용 만화 그리기 탈피

90년대에 들어오면서 만화가들은 대본소용 만화 생산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중견·신인 작가들이 대량 생산에서 오는 질적 저하와 만화 공장의 폐해를 주장하며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다. 92년 12월 발족한‘우리만화협의회’(우만협)가 대표적 예이다.

우만협은, 상업성보다는 우리 만화를 찾자는 의욕으로 만화 공장 체계를 거부하는 만화가들이 주축이 되어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모임은 기존 만화가협회의 작가 20여 명이 조직했던‘바른만화연구회’를 기반으로, 만화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하던 ‘만화패’들의 새로운 집결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만화 산업의 미래는 이들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수정·김형배·오세영·이두호·이희재·허영만 등이 주축을 이룬 이 모임은, 만화가들의 역동적인 힘을 결집해 만화시장 개방 이후를 대비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상업적으로 일본 만화에 대항할 수 있는 한국적 캐릭터를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이들을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자.

<날자 고돌이>와 <오달자의 봄>이 출세작인 김수정씨는 <아기 공룡 둘리>로 스타 반열에 올라섰다. 그러나‘둘리’는 사실 사전 심의를 피하기 위한 방편에서 나온 캐릭터였다. 최근 간행된 <우리 만화 가까이 보기>(눈빛)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김씨는“당시의 만화 심의는 말도 못할 정도로 까다로웠다. 악당은 존재하지도 못했고, 늘 착한 어린이만 나와야 했다. 그런데 동물로 의인화하면 심의가 완화되기 때문에 둘리가 탄생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결국 심의제도가 한국 최고의 캐릭터를 만들어낸 셈이다.

현재 김수정씨는 둘리를 이용한 장편 만화 영화 제작에 골몰하고 있다. 이미 세 차례나 텔레비전 만화 영화로 나오고, 영어 학습교재에도 둘리가 애니메이션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극장용 만화 영화 제작이 꿈이기 때문이다.

김형배씨가 만화계에 입문한 것은 68년인데, 76년 <로보트 태권V>로 이름을 떨쳤다. 70년대 후반 월간 <새소년>에 <20세기 기사단>을 연재하면서 공상과학 만화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그는 87년 <투이호와 블루스>라는 사회성 짙은 전쟁 만화를 그리면서 사회 문제를 깊이 천착하는 작가로 일대 변신을 했다.

김씨는 “만화가로 나설 때부터 전쟁의 상흔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당시 사회 분위기와 심의는 만화가 그런 주제를 그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상과학 쪽으로 관심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한다. 이두호씨는 ‘만화계의 이외수’라는 별명이 붙은 김형배씨를 ‘진국 중의 진국’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그런지 김씨는 94년부터 우리만화협의회 회장을 맡아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아트 만화’계열에 가까운 오세영씨의 작품에는 특정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사회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만화계의 틀을 깨고 월북 작가 단편 순례라는 시리즈를 통해 안회남의 <투계>, 이태준의 <행복> 같은 작품을 만화화했다. <고샅을 지키는 아이> 같은 작품은 만화라기보다 한편의 예술 작품을 보는 느낌을 준다. 그는 ‘우리를 속박하는 현대사’를 그리고자 노력한다.

“모순 고치기 위해 모였다”

홍익대 회화과 재학중 본격 만화가의 길로 들어선 이두호씨는 미술전에서 신인상을 받을 만큼 기대되는 화가 지망생이었다. 한 대담에서 밝힌 바 있지만 ‘단식이란 배고픔을 모르는 자의 잔치’라고 생각하리만큼 생활고에 쫓기던 그는, 재학중 아르바이트로 만화를 그리다가 결국 만화가의 길로 돌아섰다. 그의 만화는 ‘바지 저고리’로 불릴 정도로, 주로 ‘독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역사물만을 독특한 필치로 다루는 것이 특징이다.

그의 만화는 여러 차례 애니메이션이나 텔레비전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89년 문화방송에서 <머털도사>와 후속편인 <머털도사와 또매>가 방영되었으며, 90년에는 <뛰어야 벼룩이지>가 만화 영화로 만들어졌다. 조선조 색상(色商)을 다룬 <바람소리>는 문화방송에서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머털도사>는 어린이날 특집 뮤지컬로 만들어져 5월3일부터 11일까지 공연된다.

그는 만화가 대중 문화의 인기 장르로 떠오르는 것에 대해 언제나 같은 말을 한다. “만화가는 스타도 있어야 하고 쟁이도 있어야 한다. 스타들이 생겨남으로써 만화에 대한 사명감 내지 사회적 책임 의식이 확산된다”고 말한다.

스물한 살에 첫 작품을 발표했지만 30대에 그린 <억새>나 <명인>을 데뷔작이라고 생각하는 이희재씨는, 80년대 중반의 만화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참한 작가이다. 그는 88년 바른만화연구회를 창립한 것에 대해 “우리 만화는 그동안 조악한 유통·창작 구조 속에서 바깥 세상과 담을 쌓았다. 모순을 개선하려면 만화판에도 새로운 기운이 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끼리 모여 움직였다”고 설명한다.

<각시탈>과 <무당거미>의 작가 허영만씨는 <카멜레온의 시>와 <오 한강>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확고한 스타덤에 올랐다. 그 후에 그는 도박꾼의 세계를 다룬 <48+1>, 일본 야쿠자의 세계를 깊이 파헤친 <들개 이빨> 같은 독특한 만화를 그려냈다. <아스팔트 위의 사나이>는 SBS 드라마로 만들어져 곧 방영될 예정인데, 미국 3대 자동차 메이커인 포드·제너럴 모터스·크라이슬러의 자동차 개발 싸움에 뛰어든 한 한국인의 활약상을 다룬다.

이밖에도 너무나 잘 알려져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이현세씨와 백성민·박재동·최정현·황미나 씨 등이 한국 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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