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주검, 끝나지 않은 삼풍 참사
  • 李興煥 기자 ()
  • 승인 1995.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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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못찾은 삼풍 사고 실종자 가족들 ‘제2의 고통’
유품도 없다. 참사 현장 여기저기서 묻어나오던 ‘그 흔한’ 주민등록증도 없다. 이제 온전한 시신은 찾을 가망이 없어 보인다. 정말 내 피붙이인지 확인해 볼 살점 하나라도 쥐어보고 싶을 뿐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내린’ 다음에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피붙이들이다. 삼풍백화점 참사는 시신 없는 실종자 가족에게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시신을 찾지 못한 실종자 가족들은 지난 7월20일 10cc씩 피를 뽑았다. 이름 모를 주검이 혹 내 딸, 내 여동생이 아닌지 확인해 보는 마지막 절차였다. 채취된 혈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넘겨졌다. 유전자 감식을 위한 것이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과 유전자를 대조하려는 것이다.

열아홉 살 난 딸을 찾는다는 한 아주머니는 피를 뽑으러 왔다가, 부부가 같이 와야 한다는 의료진에게 울면서 간청했다. ‘아빠 없이 나 혼자 딸 하나를 키웠는데, 엄마 피는 안 되느냐’고. 유일한 혈육인 누이동생을 찾는 오빠 김석규씨(23)는 “동생이 자기 이름과 내 이름의 영문 이니셜을 새겨넣은 반지만 찾았다”고 말한다.

병원 헤매느라 택시비만 30만원

오점숙씨도 이 날 서울교대 학생회관 2층에서 피를 뽑았다. 혼자였다. 삼풍백화점 여직원이었던, 올해 스물네 살 된 딸 미선이를 찾기 위해 어머니로서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시도였다. 혈액 채취소 출구를 나서는 오씨의 왼손에는 쪽지 3장이 들려 있었다. 미선이가 남겨준 ‘유품 아닌 유품’이다. 손바닥만한 파란색 실종자 신고필증, 혈액채취 접수증, 또 하나는 오씨의 필적으로 된 ‘과학수사’ 시신 번호표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안치된 시신 가운데 혹시 내 딸이 아닌가 싶은 시신 2구의 번호를 적어온 것이다.

쪽지 3장만 달랑 들고 복도에 망연자실해 서 있는 오씨에게 남편 박씨가 다가와 위로해 주었다. 오씨는 박씨와 10년 전에 재혼했다. 박씨는 사고 직후부터 지금까지 딸 미선양을 찾아 안 가본 데 없이 다 찾아 헤맸지만, 미선양의 생부가 아니기 때문에 이 날 혈액 채취는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채취소 복도에 남아 있다가 피를 뽑고 나온 아내 오씨를 맞이했을 뿐이다.

오씨 부부가 마지막으로 기댈 것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시체 2구(시체 번호 340·356번)뿐이다. 그 많은 주검 중에서 오씨 부부가 압축해 찾아낸 ‘마지막 가능성’이다. 그나마 시신 한 구는 형체를 전혀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부패한 데다가, 또 한 구는 몸통만 남아 있을 뿐이다. 오씨 부부가 이 시신 2구 중 하나가 미선양이리라고 확신하기까지는 꼬박 22일이 걸렸다.

미선양은 생존자 유지환양과 도자기과에 함께 근무했던 언니뻘 되는 동료였다. 도자기과 직원 14명 가운데 2명은 참사 현장에서 미리 빠져나왔고, 11명의 생사는 이미 확인되었다. 단 1 명, 미선양의 생사만 확인이 안되었던 것이다. 20일 아침에야 유지환양과 겨우 전화 통화를 해서 사고 당시 같이 있었던 미선양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미선 언니랑 간식을 먹고 돌아와 같이 서 있다가 캐시 언니(금전등록기 담당 직원)가 ‘뛰어’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우왕좌왕하다가 헤어졌다”는 것이 유양이 전해준 마지막 상황이었다. 유양에게서 얻어들은 단 하나의 정보는 미선양이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는 것이다.

미선양의 아버지 박씨는 사고 직후부터 지금까지 시신이 안치된 병원 30여 곳을 헤매고 다녔다. 서울 전역은 물론 성남시까지 퍼져 있는 시신 안치소를 다 훑었다. 교통비가 얼마나 들었는지는 가늠도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실종자 가족들도 서울 시내 전역에 흩어져 있는 병원을 뒤지고 다녔다. 택시비만도 실종자 가족당 평균 25만~30만원이 들었다.

사망 확인이 ‘차라리 다행’

박씨는 또 사고 현장 주변에 돌아다니는 유인물을 모조리 긁어모았다. 사망자 명단에서 실종자 명단에 이르기까지 서초구청이 만든 것인지, 서울시 대책본부가 만든 것인지 밝혀져 있지도 않은 명단과 각종 유인물을 다 움켜쥐고 뛰어다니다 보니 옆구리에 두툼하게 끼고 다닐 만한 분량이 되었다. 시신 발굴 작업이 거의 마무리된 지금 그의 손에 들린 유인물은 단 2장이다. 미확인 시신 명단과 병원 전화번호 명단이다.

박씨가 가지고 있는 시신 명단 가운데 20구의 번호 앞에는 동그라미와 가위 표시가 어지럽게 얽혀 있다. 340과 356번만 아직 동그라미 속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나머지 번호에는 X자가 표시돼 있고, 아예 X자로 구멍이 뚫려버린 번호도 있다. 난지도 유품 수색 장소에는 벌써 다녀왔다. 박씨는 “시신 상태로 보아 미선이와 비슷한 20구 중에서 지울 건 지우고 2구만 남았다 ”고 말한다.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서울교대 체육관은 점차 썰렁해지고 있다. 가족 대부분은 사망자 번호를 들고 이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사망자 번호가 체육관을 떠날 수 있는 ‘자격증’ 노릇을 했다. 박승현양 등 마지막 생존자 3명의 가족만이 예외였다. 체육관 안팎을 뒤덮었던 실종자 찾기 벽보도 이젠 몇 장 남아 있지 않다. 검은 상복을 입은 한 20대 여인은 빗물에 젖은 우산대로 여기저기 높이 붙어 있던 벽보를 무려 5장이나 뜯어냈다. 모두 삼풍백화점에 근무했던 스무 살 안팎의 선·후배 동료였다. 그나마 사망을 확인했다는 사실이 ‘다행’으로 여겨지는 어이없는 비극은 사고 발생 한 달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시신 없는 실종자’ 가족은 후덥지근한 체육관 안을 아직도 지키고 있다. 대부분이 삼풍 직원이나 파견 직원 실종자의 가족이다. 고객 실종자 가족들은 집이 현장 주변에 있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이 체육관을 빠져나간 상태이다.

서울지검 尹鍊秀 검사(32)는 고객 실종자 가족 중 1명이다. 그는 여전히 체육관을 지키고 있다. 아내와 아이 둘을 잃었다. 가족과 같이 있던 처제의 소식도 아직 모른다. 윤검사의 장인 장모로서는 두 딸과 외손자 외손녀, 넷을 잃은 셈이다. 윤검사의 장인 서정진씨(57)는 사고 직후 안동에서 부인과 함께 올라와 지금까지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넷 중에서 단 한 사람도 생사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7개월 된 외손녀는 유모차를 타고 있었다는데, 유모차도 온데간데 없다.”

서씨는 유품 사진첩을 ‘보고 또 보고’했지만 4명의 유품 한 점을 보지 못했다. 두 딸과 외손주들은 지하 1층 아동복 매장에 있었다. 목격자에게서 들은 말이다. 발굴된 미확인 시신의 70%가 집중적으로 발굴된 곳이 지하 1층이다. 현장에서 생존자 수색 작업을 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얻어 들은 지하 1층의 상황은 ‘타다 남은 재만 수북이 내려앉아 있었다’는 것이었다.

한 소방대원한테서는 ‘초기 화재 진화 때 불에 타는 시신들을 한켠에 치워놓은 채 작업했다’는 말도 들었다. 그 시신들은 지금 어디에 가 있는지도 모른다. 서씨는 물론 현장 감시단으로 시신 발굴 현장을 지켜보기도 했다. “유모차를 끌고, 두 살짜리 애와 같이 있었을 테니 4명이 서로 4~5m도 안 떨어져 있었을 것 아니냐. 뛰고 말고 할 수도 없이 서로 엉켜있었을 것이다. 타다 남은 뼈라도 나와야 할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서씨는 이미 사위 윤검사를 앞세워 혈액 채취를 끝냈다. 서씨가 할 수 있는 최후의 확인 절차였다.

난지도로 옮겨진 ‘현장’

실종자 가족들은 지금도 난지도를 뒤지고 있다. 사고 현장이 난지도로 옮겨진 셈이다.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현장을 다른 곳으로 옮겨놓고 제2차 유실물 수색 작업을 벌이는 어이없는 상황을 탓하고 질책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다.

실종자들은 이제 유실물로만 말하고 있다. 플라스틱 명찰 하나에 이름 석자만을 남긴 강○○씨는 그나마 이름이라도 확인이 된 셈이다. 허니문 보험증서 1장, 운전면허증 , 자동차 열쇠 하나, 명함판 증명 사진 1장, 자동차 번호판만 남긴 실종자도 있다.

삼풍 참사의 후유증은 실종자 가족들의 비통함에서 끝나지 않는다. 일부 훼손된 시체 조각들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피해자 보상의 주체는 누구인가, 과연 정확한 사고 원인을 밝혀낼 수나 있을 것인가. 정작 더 큰 의문은 삼풍 참사가 과연 한 개인 사업주의 사적인 과욕에서만 말미암았겠는가 하는 것이다. 건국 이래 최대 참사로 기록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은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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