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혁신, 먼동이 튼다
  • 장영희·차형석 기자 ()
  • 승인 2004.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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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 공직 사회에는 혁신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일고 있다. 그 선봉에 선 혁신담당관들은 ‘참여정부 최고 실세’답게 의미 있는 성과들을 일구어내고 있다.
“혁신 보고를 한다고 하면 아무리 바빠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보고받는다. 아무 때든 대통령을 만나는 사람이 실세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7월3일 열린 장·차관과의 정부혁신토론회에서 각 부처의 ‘혁신(인사)담당관’을 참여정부의 최고 실세라고 치켜세웠다. 잘해야 초임 부이사관(3급)이고, 대부분 고참 서기관(4급)에 불과한 혁신담당관을 대통령이 이처럼 높이 평가한 이유는 대통령의 혁신 의지를 강조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한껏 힘을 실어주고자 하는 의도로 풀이된다.

지난 3월22일 정부 직제 개정에 따라 탄생한 46개 중앙 행정기관의 혁신담당관은 노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변화 관리자(change agent)요 혁신 추진 조직의 구심체이며 총괄 간사이다(16개 시·도와 2백34개 시·군·구 지방자치단체에도 지난 5월 혁신담당 기구가 설치되었다). 대통령의 최고 실세 발언에 대해 혁신담당관들은 엇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혁신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는 자부심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혁신담당관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매우 특별한 과장이다. 혁신담당관은 그가 소속된 기획관리실의 선임 과장이며, 일부 부처는 조직을 통틀어 넘버원 과장이라는 최상급의 예우를 받는다. 간부회의 등 중요한 회의에도 모두 배석한다. 과장급으로서는 꿈도 못 꿀 대접이다. 대부분의 부처가 혁신담당관실을 장관실과 가깝게 배치한 것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긴다는 상징적 조처이다. 노대통령은 혁신담당자들에게 장관이 최대 ‘혁신 스폰서’(지지자)가 되어 적극 돕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교육부 박춘란 혁신담당관은 안병영 부총리의 강력한 엄호 사격을 받아 ‘작은 성공’ 사례를 하나 만들어냈다. 박담당관은 지난 3월 말 간부회의에 배석해 간부회의 생중계를 제안했다. 안부총리는 4월6일 추진 의지를 표명했지만, 이틀 뒤 차관이 주재한 간부회의에서 실·국장들은 한목소리로 반대했다. 4월12일 생중계가 강행되었지만 실·국장들은 중단하라고 맞섰다.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하기 어려우며, 무엇보다 출입기자 등 외부에 정보가 유출될 것을 문제 삼았다. 박과장의 방어 무기는 생중계에 대한 직원 대상 설문조사. 그 결과는 그를 고무하기에 충분했다. 직원 60%가 참여한 이 조사에서 각각 94%와 76%의 직원들이 의사 소통과 업무 추진에 도움이 된다고 답해 그가 꾀했던 효과가 즉각 나타났던 것이다. 또 직원 88%가 생중계가 계속되기를 희망했다. 간부들도 더 반대하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박담당관이 승리에 도취한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정보 유출에 대한 간부들의 우려가 일리 있다고 여겨 이를 불식할 방법이 없을까 궁리했다. 결국 그는 6월7일부터 생중계 방식을 스피커에서 직원 개인별 컴퓨터로 바꾸면서 이런 우려도 말끔히 없앴다. 교육부의 간부회의 생중계 시도는 모든 부처에 소개되어 벤치마킹 대상으로 떠올랐다. 정보 공유와 직원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이점 외에도 시간과 회의 비용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까지도 간부 회의가 끝난 뒤 교육부에서는 실·국장은 과장들을, 과장은 또 직원들을 불러모아 이른바 전달 회의라는 것을 통상 2~3회 해왔다. 교육부는 전달 회의가 없어짐으로써 월평균 3천8백만원의 예산이 절감되리라고 추정한다.
문화관광부 강봉석 혁신인사담당관 역시 작지만 이미 조직에 파장을 일으키는 혁신 사례를 확보하고 있다. 그가 고안한 제도는 ‘정책현장 체험학습’. 이른바 탁상 행정을 타개할 작은 대안인 셈인데, 문광부는 정책이 현장과 유리되어 있다는 정책 고객(국민)의 따가운 비난에 직면해 있었다. 강담당관은 지난 3월 어렵사리 이 제도를 도입했으나 자원하는 직원이 없었다. 부서장들이 탐탁치 않아 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강담당관은 자신이 거느리는 혁신인사담당관실에서 성공 사례를 만들기로 했다. 작은 성공이 큰 혁신을 만들어낸다고 확신하는 그가 대학로로 특파한 혁신에이전트는 이경직 사무관. 이사무관은 4월20일부터 27일까지 대학로를 누비며 연극 연출가와 배우, 소극장 대표, 예술축제 기획자, 연극단체 대표 등을 만났다. 그가 가장 먼저 부닥친 것은 냉소라는 높은 벽이었지만 진정성이 통했을까. 그의 표현을 빌리면 연극인들과 ‘망가지고 깨지면서’ 그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정책을 원하는지에 대한 절절한 목소리를 담아 문광부 인트라넷에 올렸다. 이 현장 체험기는 대히트를 쳤다.

물론 이 성공은 시작일 뿐이다. 강담당관은 지난 5월 간부 대상 혁신 워크숍에서 현장 학습의 취지를 적극 설명했고 이들로부터 매월 각 과별 한명 이상씩 현장학습을 보내겠다는 결의를 받아냈다. 지난 6월 직원 4명이 관광 현장 체험에 나선 것을 필두로 체험학습 추진이 본격화했다. 7월 한 달에만 무려 30명이 몇 명씩 짝을 지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체육시설과 건축물·미술장식, 템플스테이·선비문화, 지역 국제 음악제, 어린이 전용 도서관 등 하나같이 문광부가 챙겨야 하는 현장들이다. 공연연습실 건립과 소도구 보관소 건립 따위 현장 학습을 통해 발굴한 정책 과제는 이미 내년도 예산(23억5천만원)에 반영했다.
정책현장 체험학습과 간부회의 생중계는 어쩌면 단편적이고 사소한 예에 불과하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일 잘하기’와 ‘대화 잘하기’라는 정부 혁신의 목표와 연결된다. 정책 품질을 높여 공공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고 국민과 함께 하는 행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각 부처가 일 잘하기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벌이는 노력 가운데 눈여겨볼 것은 선결 과제로 채택한 ‘불필요한 일 줄이기’이다. 거의 모든 부처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집중 분류하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아예 서울대 행정대학원·삼성경제연구소·일본능률협회 컨소시엄에 조직 진단을 의뢰했다. 꼭 해야 할 일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서다. 재경부 임성균 혁신담당관은 “야근과 휴일 근무를 밥먹듯이 할 정도로 일에 치여 살지만, 국민이나 다른 부처 공무원들은 재경부가 독주하고 있으며 고압적이라는 비판을 쏟아낸다”라고 토로한다. 1~2년도 아니고 10년 이상 일에 매몰되면 세상과 유리될 수밖에 없어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고 전한다.

많은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하지만, 스스로도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바깥의 평가도 나쁜 것은, 갖은 명목의 회의와 행사, 보고 자료를 만드는 데 힘을 빼고 있기 때문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형식이 실질을 압도해온 것이 관료 사회라는 것이다. 교육부·문광부·재경부·정통부 등이 불필요한 회의를 과감히 줄이고 전자 결재와 전화·e메일·쪽지 보고 등을 시도하고 있는 것도 이런 문제 의식에서 출발했다. 교육부는 연말까지 회의 경비 50% 감축 운동에 나섰다. 전자 결재 및 구두·전화·쪽지 보고가 활성화하면 보고 시간과 건수가 30% 가량 줄어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방부는 매주 수요일을 ‘종이 없는 날’로 정했다. 이 날은 모든 업무를 e메일로 처리한다. 행정자치부의 위임 전결 규정을 준수하면 업무가 80.8% 줄어든다는 교육부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일 잘하기 노력과 관련해 정통부의 정책관리시스템(GPLCS) 구축도 주목할 만하다. 서병조 혁신담당관은 “이 시스템은 정통부가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불필요한 일에 정력과 시간을 소진하는 것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비로소 정책의 품질을 생각할 여유를 되찾게 되고 결국 국민에게 좋은 정책을 선보일 수 있게 된다”라고 말한다. 진대제 정통부장관이 실·국장에게 매년 고유 업무와 별도로 새 임무를 부여하는 ‘CEO 미션제’도 일 잘하는 정통부 구현과 맥이 닿아 있다. 문광부는 ‘과제 탑승제’를 연구하고 있다. 기존 조직의 직무 범위를 넘거나 환경 변화에 따른 특별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임시 조직을 만들었다가 목적 달성 후 해체하는 새로운 대안 조직이다.

매뉴얼화와 시스템화로 대표되는 일하는 방식 개선은 결국 일 잘하는 정부를 만들겠지만, 정부 조직의 학습 조직화에도 위력을 발휘한다. 거꾸로 학습 조직화는 창의와 아이디어로 무장한 공무원을 양산해 일 잘하는 정부를 더욱 촉진한다. 재경부는 주택보유과세·경기 조절 정책·투자활성화 대책 따위 항상 논란이 되는 현안을 주제로 격주 토요일에 토론회를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매주 목요일 점심에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햄버거를 먹으며 토론하는 ‘브라운백 미팅’도 뿌리를 내리고 있다. 토론 모임이 단순 정보 공유뿐 아니라 공무원 개개인에게 체화한 노하우를 결집할 수 있어 정책 개발에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 재경부의 자체 평가다.
토론 그 자체가 시도되는 것만 해도 일대 혁명 같은 변화라는 평가가 나오는 부처가 국방부다. 다른 부처보다 상명하복의 위계가 엄격한 탓이다. 국방부는 전국 최초로 45세 미만 4급 이하 공무원, 중령 이하 현역 장교로 구성한 주니어보드를 만들어 국방부가 변할 수 있는 점을 제안하게 했다. 국방부 사상 첫 시도였다. 7월14일 기능직 공무원까지 포함한 2기 주니어보드도 출범시켰다. 1기 주니어보드는 32건을 제안했는데 장관부터 이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

주니어보드의 건의로 불합리한 점이 개선된 좋은 사례가 식당과 이발관 같은 복지시설 이용을 직급 별로 달리한 제도를 없앤 것이다. 외부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상할 정도지만, 점심 때가 되면 국장은 국장 식당으로, 과장은 과장 식당으로, 일반 직원은 일반 식당으로 각기 ‘찢어지던’ 것이 국방부였다. 물론 보안상의 이유로 주니어보드의 건의가 일찌감치 채택 불가 판정을 받은 것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황희종 혁신담당관은 “논의 자체가 되는 것이 큰 변화다. 행정 정보를 공개하기 시작했는데 이 조직에 오래 몸 담은 나 같은 사람이 보기에는 정말 놀라운 변화다”라고 말한다.

토론과 학습 부재의 국방부에도 매월 셋째 주 토요일을 ‘발상 전환의 날’로 정해 집중 토론을 벌이고 있으며 스터디 그룹도 생겼다. 항공·우주산업·국제법 연구회 등 총 23개의 학습 모임을 꾸리고 있다. 거의 모든 부처가 학습 조직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은 이 대목을 노대통령이 유독 강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대통령은 6월4일 혁신담당관들과의 비공개 토론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되든지 안되든지 간에 무조건 혁신 과정에 참여하고 학습하는 것 자체를 혁신 성과로 인정하겠다.” 노무현 정부의 모든 국정 운영 과정에서 참여·자율·분권이 강조되지만, 특히 정부 혁신에서는 성패를 좌우한다. 행정 주체인 공무원의 자발적 참여 없이 정부 혁신이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성과와 보상 연계론이 각광받는 것도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는 좋은 방책이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부처에서 ‘혁신 마일리지’ 제도를 도입하고 ‘혁신 스타’와 조직을 발굴해 포상하며 궁극적으로 인사상 혜택을 주겠다는 방안이 강구되고 있다.

지자체인 서울 강남구는 중앙 부처와 사뭇 다르다. 이들의 혁신 키워드는 전산화와 아웃소싱이다. 무인발급기를 통해 모든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고 문화센터 운영·복지관 시설 관리·도서관 운영·청사 관리·불법 광고물 단속 등을 아웃소싱했다. 그 결과 예산 절감은 물론 무엇보다 구민의 호평을 받고 있다.

혁신에 대한 내부 반발을 없애기 위해 인센티브제도 도입했다. 남원준 행정관리국장은 “나도 공무원이지만 공무원은 변화를 싫어한다. 혁신을 잘한 사람에게 격려금을 지급하니 고무되는 듯했다. 일을 열심히 하려다 잘못을 범하면 책임을 묻지 않는 것도 혁신을 성공시키는 데 중요한 요소다”라고 지적한다.
대통령과 장관이 팍팍 밀어주는 공무원이 혁신담당관이라지만, 이들의 애로가 없을 수 없다.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혁신은 ‘어렵고 어느 정도 별난 것’이다.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와 함께 정부 혁신을 진두 지휘하는 부처인 행정자치부 허성관 장관은 혁신(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혁명은 보이는 적과의 싸움이지만, 혁신은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교육부 박춘란 담당관과 문광부 강봉석 담당관은 냉소주의와 거부감을 혁신의 최대 적으로 꼽았다. 두 사람은 혁신이 자기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보여주고 직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통부 서병조 담당관이 혁신과 일이 별개가 아니라는 ‘혁업불이(革業不二)’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노무현 정부는 지난해부터 사실 정부 혁신을 부르짖었고 정부혁신 로드맵(단계별 이행 계획)을 거의 1년 동안 만들었지만, 혁신 전위 부대인 혁신담당관이 생긴 지는 이제 4개월밖에 안된다. 정부 혁신은 실행 초기 단계이지만, 지난해부터 고민해온 일부 부처에서는 작지만 의미 있는 성과도 엿보인다. 문광부 강봉석 담당관은 자신에게 건네는 직원들의 말에서 변화의 기운을 읽는다고 말한다. ‘혁신 잘되어갑니까?’에서 ‘혁신하기 어렵죠’, 다시 ‘이런 것을 혁신합시다’로, 혁신에 대한 반응이 냉소에서 참여로 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공무원은 ‘518족’이라고 불린다. 50대에도 일하는 팔자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국민의 공복이기도 하지만, 민간보다 좋은 조건이니 혁신을 마다하면 안된다는 것이 대통령의 생각이다. 지금 공직 사회에는 혁신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일고 있다. 부처간 혁신 경쟁도 불붙고 있다. 공무원 사이에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생존 전략이라는 인식이 이제 막 자리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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