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귀며 운동 즐기는 어른들 놀이터
  • 안은주·신호철 기자 ()
  • 승인 2002.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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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인테리어와 최첨단 시설을 갖춘 휘트니스센터가 사람들로 넘쳐나며
캘리포니아스휘트니스센터(CFC) 압구정클럽 스피닝룸. 화려한 조명 아래 헤드셋을 쓴 디제이(트레이너)가 “예~, 예~” 하면서 추임새를 넣자 사람들이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사람들은 트레이너가 이끄는 대로,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격렬하게 페달을 밟으며 몸을 흔들었다. 자전거를 타는 것인지 에어로빅을 하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휘트니스센터가 아니라 나이트클럽에 온 듯했다.




발리토탈휘트니스 분당점. 사방이 유리로 된 방에서 30명이 넘는 여성들이 재즈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었다. 운동복을 입은 이가 대부분이었지만, 댄스 유니폼에 슈즈까지 갖춘 이도 더러 눈에 띄었다. 댄스 교습이 끝나자 땀으로 흠뻑 젖은 사람들은 휘트니스 코너로 몰려갔다. 러닝머신에 올라서는 이가 있는가 하면, 웨이트 트레이닝 기구에 앉는 이도 있었다.


휘트니스 문화에 새 바람이 일고 있다. 일부 보디빌더들이 애용하던 동네 헬스클럽은 썰렁해진 대신, 화려한 인테리어와 현란한 음악 그리고 최신 시설을 갖춘 대형 휘트니스 센터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과거에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클럽을 선호했지만, 요즘에는 멀리 떨어진 곳까지 일부러 찾아간다. 발리토탈휘트니스 분당점에는 서초동이나 양재동에서 오는 회원이 적지 않고, CFC 압구정클럽에는 인천이나 일산에서 오는 회원까지 있다.


휘트니스 문화의 변화를 주도하는 곳은 외국에서 들어온 대형 업체들이다. 2000년 8월 명동클럽을 열면서 한국에 처음 상륙한 CFC는 전세계 4백여 도시에 체인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압구정동에 2천1백 평 규모의 대형 클럽을 열어 강남의 젊은 휘트니스 마니아들을 싹쓸이하다시피 하고 있다. 뉴욕 증권 시장에 상장되어 있는 세계 최대 휘트니스 기업 발리토탈휘트니스도 올 여름 한국에 상륙했다.


“동네 헬스클럽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이들 외국계 휘트니스 센터에서는 전문 강사진이 회원들 개개인에게 ‘맞춤 휘트니스 노하우’를 전수한다. 기초 체력 검사와 체지방 분석은 물론 운동 성향까지 파악해 각 개인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짜고 과정을 지도한다. 유산소 운동과 기구를 이용한 웨이트 트레이닝은 물론 보디펌프·힙합댄스·재즈댄스·킥복싱·요가 등 전문 강좌만 수십 가지에 이른다. 심지어 4개의 복근을 세분화한 운동 프로그램으로 뱃살만 집중해서 빼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최첨단 설비를 수백 가지씩 갖춘 것은 물론이다. 분당의 한 대형 휘트니스 센터에서 3개월째 운동하는 김건우씨(63)는 휘트니스 예찬론자로 변했다. 김씨는 “골프나 등산도 해봤지만, 휘트니스에 비하면 운동도 아니다. 여러 가지 첨단 시설로 운동하니까 힘이 좋아지고 근육에 탄력이 생겨서 젊어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첨단 설비와 전문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외국계 휘트니스 클럽이 사람들을 유혹하자, 국내 호텔 휘트니스나 중소형 휘트니스 센터들도 점점 고급화·대형화하는 추세이다. 과거에는 호텔 헬스클럽이라고 해도 웨이트 트레이닝 사용법을 알려주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고객 별로 건강을 진단한 뒤 연간 계획표를 만들어 지도하는가 하면 요가·아쿠아로빅·기공술·검도 등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있다. 위기 의식을 느낀 동네 헬스클럽도 고급 기구들을 들여놓거나 점점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특히 사무실 밀집 지역에는 첨단 설비와 화려한 인테리어, 전문 프로그램을 도입해 외국계와 견줄 만한 중형 규모의 휘트니스 클럽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새로 생긴 휘트니스 클럽이 인기를 끄는 또 다른 이유는 고단한 운동에서 즐거운 운동으로 바꾸어주기 때문이다. CFC 김기연 차장은 “휘트니스 클럽은 근육을 만들기 위해 또는 살을 빼기 위해 죽기 살기로 달리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전쟁터가 아니라 즐겁게 운동하는 ‘엑서테인먼트’가 있는 놀이터이다”라고 주장한다. 물론 처음부터 엑서테인먼트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훈련된 전문가들이 고달픈 운동에서 즐거운 여가 활동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회원끼리 인터넷 동호회 만들기도


명동의 한 휘트니스 센터에 2년째 다니는 고재환씨(39·산부인과전문의)는 이 곳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새로 찾았다. 어릴 때부터 만성 비만에 시달려온 고씨는 디스크 증세가 심해지면서 운동을 시작했다. 그 전에는 운동을 시작하면 ‘작심삼일’로 끝나곤 했지만 트레이너들이 달라붙어서 지속적으로 도와주니까 지겹지 않았다. 2년 동안 꾸준히 운동한 덕에 110kg에 육박하던 고씨의 체중은 75kg으로 떨어졌다. 100m만 달려도 헉헉대던 그가 얼마 전에는 100km를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까지 완주했다. 고씨는 “몸이 가벼워지니까 한결 자신감이 생기고,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변하면서 내 삶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국제헬스라켓스포츠클럽연맹(IHRSA)이 조사한 자료에서도, 헬스클럽에 꾸준히 다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자신의 삶을 잘 조절할 수 있고, 리더가 될 가능성이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한 직업인들을 자연스럽게 사귈 수 있다는 점도 중·대형 휘트니스 센터의 장점이다. 젊은층은 오로지 운동만 하기 위해 클럽에 가지 않는다. 권혜미씨(23·의류 디자이너)는 살을 빼기 위해 클럽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클럽이 그녀의 가장 중요한 생활터가 되었다. 권씨는 “하루라도 거르면 중요한 일을 빼먹은 것처럼 뼛속에서부터 경고 메시지가 울린다”라고 말했다. 팔을 다쳐 운동할 수 없었을 때에도 날마다 클럽을 찾았다. 운동은 못해도 사람들과 수다 떠는 재미를 포기할 수 없었다. 클럽에 다닌 지난 6개월 동안 그녀가 새로 사귄 친구만 100명이 넘는다.


대학원생이자 벤처 사업가인 최성신씨(29·듀크리퍼블릭 대표)는 젊은층의 이런 욕구에 착안해 클럽 회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동호회를 만들었다. 현재 이 동호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회원만 6백명이 넘는다. 회원들은 한 달에 두 번씩 클럽 밖에서 만난다. ‘싱글 파티’라는 이름으로 토요일에 만나 함께 영화를 보거나 칵테일 파티를 열기도 하고, 모든 회원이 만나는 자리도 따로 있다. 회원들은 동호회 웹사이트를 매개로 시간을 맞추어 함께 운동하러 가기도 하고, 싱글 회원에게는 미팅도 주선한다. 최씨는 “운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정보도 얻을 수 있어서 더 오래 다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클럽이 사교장 구실을 하는 것은 회사측도 원하는 일이다. ‘멋진 사람들과 즐겁게 운동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수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클럽이 ‘다리’ 역할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매달 멤버십 행사를 열어 회원끼리 만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댄스 경연대회·요리 강습을 하는가 하면, 할로윈데이 때에는 모든 회원이 분장하고 운동하는 날로 지정하기도 했다. 발리토탈휘트니스 윤정민 과장은 “친구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휘트니스 센터에 가는 외국의 문화가 한국에서도 싹트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 종 교수(수원대·체육학부)는 “외국 업체들이 들어오면서 사회적 가치와 사교를 목적으로 한 상류층의 고급 휘트니스 문화가 빠르게 대중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런 변화의 흐름을 타고 국내 대기업들도 휘트니스 산업에 뛰어들 채비를 서두르고 있고(70쪽 딸린 기사 참조), 어린이 전용 헬스 클럽도 등장했다(66쪽 상자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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