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오정’은 자본의 음모였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5.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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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등 대기업이 45세 정년 기정사실화”…정부가 ‘낙엽줄용’ 일자리 만들어야
‘사오정’은 이제 한국 노동 시장의 공인된 가이드라인이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는 2005년을 위시해 2017년과 2026년,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대규모 구조 조정의 파고가 우리 사회를 덮칠 것이라고 전망해 충격을 주었다(<고령화·저성장 시대의 기업 인적자원 관리방안>). 이 보고서가 핵심적 전제로 삼은 것이 바로 사오정 셈법이다.

한 예로, 올해는 1960년대 초반 태어나 1980년대 중반 이른바 3저 호황 속에서 사회 생활을 시작한 제1차 베이비 붐 세대가 45세 안팎에 도달하는 해이다. 그런 만큼 올해 상당 규모의 구조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연구소측은 내다보았다.

이에 대해 대한은퇴자협회 주명룡 회장은 “45세 정년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자본의 음모가 시작됐다. 그 선두에 삼성이 있다”라고 격렬히 비난했다. 그러나 삼성경제연구소 이상우 연구원은 45세 정년이 이미 주변에서 일반화해 있어 이를 지표로 삼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2003년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기업체가 일반적으로 근로자를 퇴직시키는 연령은 45세 안팎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재앙이다. 만약 당신이 45세에 조기 퇴출을 당했다고 가정해 보자. 당신에게 주어진 상황은 말 그대로 사면초가이다. 먼저 국민연금. 60세면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지금 노인들은 그나마 행복한 편이다. 2005년 현재 45세인 당신은 63세에야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2013년부터 61세로 조정된 다음 5년 간격으로 한 살씩 증가해 2033년이면 65세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금을 받게 되는 63세까지 18년 세월을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퇴직금 누진제 폐지 등으로 퇴직금은 이미 노후 보장 수단으로서 매력을 잃은 지 오래이다. 개인연금을 들어놓았다면 다행이겠지만 그것도 소수나 누리는 축복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3년 현재 경제활동인구 대비 개인연금 가입자 비율은 11.6%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녀에게 기댈 수도 없다. 아니, 기대기는커녕 자녀를 위한 지출이 가장 많은 것이 40~50대이다.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 책임연구원은 “노동 시장에서 은퇴하는 나이와 국민연금 수급 개시 나이 사이의 갭을 줄이려는 데서부터 선진국의 고령화 정책이 시작됐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간극을 국가가 모두 메우려 들었다가는 나라 살림이 거덜 나기 십상이다. 일찍부터 고령화 정책을 세운 선진국조차 연금과 건강 보험 등 사회보험 재정 부담이 급증해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도 기업대로 부담이 크다. 미래가 암울한 낙엽줄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바람에 저축률이 감소하고, 이에 따라 가용자금 및 투자가 위축되기 때문이다.이를 해결할 방법은? 낙엽줄이 노동 시장에서 떨려나지 않게끔 계속해서 일자리를 공급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가정 경제로 보나, 국가 경제로 보나 이 편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낙엽줄은 노동 시장에서 인기 하한가이다. 헤드헌터 금기원씨(크로스휴먼 어소시에이츠 대표)는 “외국계 기업 출신이라면 모를까, 40대 이상을 채용하려는 기업은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정부라도 나서야 한다고 삼성경제연구소 이상우 연구원은 주장했다. 전직 지원 제도나 임금피크제를 실시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등 각종 유인책을 써서라도 정부가 낙엽줄 구하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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