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ㆍ경‘수사권 줄다리기’ 2회전 돌입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1999.07.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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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고위 공직자 비리 수집 등 활동 영역 넓혀…검찰 “수사권 독립 노린 압박”
수사권 독립을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힘 겨루기가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경찰청은 전국 검찰청에 파견된 경찰 수사 인력을 속속 원대 복귀하도록 지시한 데 이어 6월25일에는 고위 공직자 비리 수집을 주업무로 하는 ‘범죄첩보수집관제’를 신설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전국 각지의 검찰에 파견된 경찰 인력은 속속 경찰로 복귀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검찰에 파견된 경찰관은 모두 2백37명. 이들 중 1백69명이 해당 지방경찰청장의 승인을 받지 않고 검찰의 구두 요청만으로 수사 협조 차원에서 임의로 파견되었다는 것이다.

경찰, 검찰 고유 영역에 들어서다

또 경찰청이 이번에 신설한 범죄첩보수집관 제도는 검사를 포함한 고위 공직자 비리 첩보 수집과 마약·조직 폭력 등 강력 범죄 첩보 수집을 임무로 하고 있다. 이들 분야의 범죄 수사 정보 수집은 그동안 검찰이 주로 해 왔다. 고위 공직자 비리는 대검 중수부, 마약 범죄는 대검 마약과, 조직 폭력 정보 수집은 대검 강력부 등이 맡아 왔다. 경찰청은 바로 이런 분야에 대한 정보 수집을 목적으로 전국 13개 지방경찰청과 2백25개 경찰서 수사과에 각각 1∼3명씩 범죄 첩보 수집관 4백여명을 편성했다. 이와 함께 경찰은 ‘범죄 첩보 활성화 계획’이라는 공문을 전국 경찰에 내려보냈다.

이 공문에 따르면, 경찰은 앞으로 고위 공직자 범죄를 적발하면 인사 고과에서 가장 높은 평점을 받는다. 3급 이상 고위 공무원 및 이에 상당하는 특가법상 공무원의 비리 첩보에는 포상 최고 점수인 30점을 주기로 했다. 또 4~5급 공무원 비리 첩보에는 25점, 마약·살인 등 강력 범죄 첩보에는 20점을 내걸었다. 이같은 경찰 조처에 대해 검찰은 경찰이 수사권 독립을 위해 검찰을 압박하는 처사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은 채 바짝 긴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검찰의 주된 수사 영역에 경찰이 공개적으로 도전했다는 점이 검찰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인력 부족을 이유로 검찰에 파견된 경찰관들을 대거 원대 복귀시키면서 범죄 정보 수집에 신규로 4백여명을 투입하겠다는 것은 수사권 독립을 목표로 검찰에 도전하는 행위라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경찰의 잇단 조처가 검·경 갈등 재연 또는 경찰의 ‘수사권 독립 운동’으로 비치는 데 대해 경찰청은 사실과 다르다며 펄쩍 뛴다. 검찰에 파견한 경찰관들을 원대 복귀시키는 것은 경찰관서 신설을 앞두고 경찰 인력이 절대 부족해 부득이 취한 조처라는 것이다. 경찰청은 7월 초순 울산경찰청·부산 사상경찰서·창원 서부경찰서 등 3개 경찰관서를 신설한다. 여기에 필요한 인력은 모두 4백84명. 또 경찰이 범죄첩보수집관제를 신설한 것도 민생 치안 강화 차원에서 불가피하다는 것이 경찰청 주장이다.

그러나 경찰의 이번 조처들은 경찰 수사권 독립 문제를 둘러싸고 검찰과 갈등하는 연장 선상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지난 5월8일 청와대의 ‘함구령’으로 한창 불붙던 경찰 수사권 독립 논쟁이 소강 상태에 빠진 이후 경찰에는 검찰에 알게 모르게 당하기만 해 왔다는 피해 의식이 퍼져 있었다. 검찰은 당시 이례적으로 파출소 운영 실태를 검열하는가 하면, 경찰이 수사를 마친 아파트 비리 사건을 다시 수사하기도 했다. 또 박희원 전 경찰청 정보국장이 수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경찰대학 출신 간부들이 잇달아 회동했는데, 공교롭게도 경찰의 조처들이 뒤이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검찰과 경찰 제도의 가장 큰 이해 당사자가 국민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두 집단이 벌이는 갈등 국면을 해결하는 데 더 이상 팔짱을 끼어서는 안될 상황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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