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DJ에게 토사구팽?
  • 李敎觀 기자 ()
  • 승인 1999.04.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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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이후 김대통령과 줄곧 ‘노선’ 대립… “사실상 경질”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인 최장집 교수(고려대·정치학)가 사표를 낸 시점은 지난 4월1일. 그 다음 날 언론이 사임한 이유를 묻자 최교수는 “청와대가 사흘 전부터 사표를 내주면 좋겠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라고 말해 자신이 사실상 해임되었음을 내비쳤다. 이로써 최교수가 경질되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불붙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진보·개혁 성향 지식인인 그가 경질된 것이 맞다면, 언론으로서는 이를 김대중 정부가 보수로 선회하는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김한길 정책기획수석은 최교수의 주장을 반박했다. 지난 4월1일 저녁에 최교수를 만나 사표 제출 이유를 ‘정책기획위 출범 뒤 돌출 상황이 있었고, 이에 휘말리다 보니 제 기능을 못하고 침체했으며, 청와대 주무 수석도 바뀌고 했으니 학교로 돌아가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서’로 정리했는데 무슨 해임이냐는 것이 김수석의 말이다. 그러나 사표 제출 이유를 어떤 식으로 정리하기로 논의했다는 것 자체가 청와대가 최교수를 경질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해서 최교수 경질 사건을 김대중 정부가 보수로 선회하는 신호탄이라고 곧바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많다. 그같은 해석이 가능하려면 그동안 김대통령은 최위원장이 제시한 각종 개혁적인 아젠다를 수용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김대통령과 최교수는 애초부터 ‘주파수’가 맞지 않았다. 최교수는 지난해 4월 취임 이후 사사건건 김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는 지난해 국민회의 의원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국민과의 대화’라는 김대통령의 쌍방향 대화 정치가 의회민주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고 우려했고, 제2 건국운동은 용어부터가 과격하다고 비판했다.

그래서인지 김대통령은 최교수의 제안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특히 최교수는 국민회의가 개혁에 필요한 집권 기반을 구축하려면 부산·경남 출신 한나라당 민주계와 민주대연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제안했지만 무시당했다. 게다가 최교수가 학술지 등을 통해 부익부 빈익빈 구조를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의를 지양하고 균등한 부의 분배가 가능한 케인스주의적 복지주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음에도 김대통령은 거꾸로 신자유주의에 기운 경제 구조 조정에 매달렸다.

최교수는 이처럼 지난 1년간 김대통령으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따라서 최교수 경질은 DJ 정권의 보수 회귀와 직접 맞물리는 것이라기보다 DJ와 오래 불화한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사실 자민련과의 공조 강화, 제2 건국운동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구조 조정 등 현정부의 보수적인 정책들을 주도한 정책기획위와 제2 건국위의 주류는 최교수와 임혁백 교수(고려대·정치학) 등 비호남 출신 학자들이 아나라 한상진 정신문화연구원장과 황태연 교수(동국대·정치학) 등 호남 출신 이데올로그였다.

DJ와 관계 놓고 ‘인질론’ 해석도

그렇다면 의문은 김대통령이 왜 주파수도 안 맞는 최교수를 1년이나 끌어안았느냐는 점이다. 그 이유를 둘러싼 한 가지 흥미로운 해석이‘인질론’이다. 바로 올드 레프트(Old Left·구좌파)로 불리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인질로 최교수를 붙잡았다는 것이 제2 건국위 한 관계자의 지적이다. 지난해 말 최교수를 둘러싼 사상 시비가 격렬했을 때 김대통령이 그를 경질하지 않은 것도 인질 가치가 남았기 때문이었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인질론의 관점으로 해석하자면 김대통령이 이제서야 그를 경질한 것은 야당 의원 영입 등으로 집권 기반이 웬만큼 안정되어 올드 레프트들의 지지가 더 필요없게 되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김대통령이 그를 계속 끌어안고 있다가는 16대 총선에서 보수표를 얻지 못할까 우려했을 수 있다. 문제는 비판력이 뛰어난 최교수가 인질에서 풀려난 만큼 현정부를 비판할 경우 집권 세력으로서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교수 경질은 현정권이 보수화하고 있다는 강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어 벌써부터 부담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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