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경찰 ‘밥그릇 싸움’ 이제부터
  • 李政勳 기자 ()
  • 승인 1999.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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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법률안 제·개정 착수… 전문가들 “경찰 수사권 독립 필요”
경찰 수사권 독립 등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검·경(檢·警) 다툼’이 청와대의 자제하라는 한마디에 푹 사그라들었다. 더욱이 안동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농협을 털려다 실패한 사실이 알려져 경찰 수사권 독립 주장은 된서리를 맞은 듯하다.

그러나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다. 목소리를 죽인 검·경이 다툼의 핵심인 각종 법률안 제·개정 작업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검·경 갈등은 김대중 대통령이 ‘경찰을 국가·지방 경찰로 2원화한다’는 등 경찰 개혁을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데서 말미암는다. 이에 따라 농림수산부장관을 지낸 최인기씨를 위원장으로 한 경찰개혁위원회(경개위)가 만들어졌고, 국민회의에서는 추미애 의원을 단장으로 한 ‘지방자치 경찰제 정책기획단’(기획단)이 활동했다.

경찰 개혁의 골자는 △정치 중립화 △국가·지방 경찰로 2원화 △경찰 수사권 독립으로 정리된다. 경찰 중립화와 2원화에 대해서는 이견이 적으나, 경찰 수사권 독립에 대해서는 검찰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쟁점 사항인 경찰의 수사권 독립 문제를 알려면 경찰보다는 검찰 현황부터 살펴보는 것이 지름길이다. 형사소송법 195조는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思料)될 때는… 수사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어, 검사만이 수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수사 도중 용의자가 발견되면 그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법원에 영장을 청구해야 하는데, 이때도 헌법 12조 3항에 따라 검사만이 영장을 청구할 수가 있다. 또 검사는 형사소송법 246조에 따라 공소 제기(기소)도 독점한다.

한국 검찰, 수사·정보·기소 독점

미국 등 영미법계 국가에서 검찰은, 수사는 하지 않고 기소만 전담한다. 대륙법계인 일본에서도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같은 대륙법계인 한국은, 법률 조항이 이렇다 보니 검찰이 수사에서 기소까지 모든 것을 독점한다. 이러한 법조문을 현실에 반영한 조직이, 각 지검에 있는 특수부·강력부·외사부이다.

일본 검찰에는 강력부·외사부가 아예 없고, 특수부는 도쿄와 오사카 지검 두 군데에만 있다. 두 특수부는 정치적으로 파장이 큰 사건만 인지 수사하고, 그외 수사는 경찰에 맡긴다. 선진국 검찰이 수사에 적극 참여하지 않는 것은 ‘경찰은 수사, 검찰은 경찰이 수사한 것을 스크린해 인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검찰의 경찰화’가 심해서, 검찰이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수사 과정을 스크린하는 기능은 약한 편이다.

인지 사건 수사를 위해서는 ‘정보’가 꼭 필요하다. 검찰은 올해 초 관계 법령을 개정해 대검에 범죄정보기획관실을 설치했다. 이로써 한국은 검찰이 기소·수사·정보를 모두 할 수 있게 된 흔치 않은 나라가 되었다. 과거 안기부의 인권 침해가 문제되었을 때, 많은 전문가는 관계 법령이 안기부에 정보와 수사권 모두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문민 정부 시절 안기부를 정보 수집에만 전념케 하기 위해, 수사권을 대공(對共) 분야로만 축소시켰다. 그런데 국민의 정부는 검찰 권한을 오히려 키워주어 한국을 ‘검찰 공화국화’으로 만들 가능성을 열었다.

형사소송법 등에는 ‘사법 경찰’이라는 용어가 자주 나오는데, 사법 경찰이란 ‘검찰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는 경찰관’을 말한다. 따라서 교통·방범·경무 분야 경찰관이 아닌, 형사·수사 분야 경찰관이 사법 경찰이 된다. 사법 경찰인 형사·수사 분야 경찰관은 경찰청으로부터 봉급을 받는다. 그러나 이들을 지휘하는 것은 형사소송법 196조에 따라 검사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1차 수사기관인 경찰의 수사 기능이 위축되고, 검찰의 경찰화가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체포장 제도 도입 바람직”

범죄 용의자의 신병 확보는 수사의 첫걸음인데, 법률적으로 이를 실현한 것이 영장 제도이다. 그런데 영장은 헌법에 따라 검사만이 청구할 수 있으므로 경찰은 용의자를 발견해도 검사의 허가 없이는 신병을 확보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경찰이 법원에 직접 용의자 신병 확보를 요청하는 ‘체포장’ 제도 도입이다. 전문가들은 체포장제야말로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보장하는 핵심 제도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검찰은 헌법에 ‘영장은 검사가 청구한다’고 되어 있는 만큼, 체포장제 도입은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다.

검·경 갈등은 위헌 시비로까지 비화하지만 그 내면을 살펴보면 결국 ‘밥그릇 싸움’이다. 그러나 밥그릇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국민 기본권이 제약될 수도 있고, 신장될 수도 있다. 검찰은 ‘경찰 수사권 독립은 위헌 소지가 있으며, 국민 기본권을 제약할 수도 있다’는 논리를 펼치는데, 사법 시험 합격자들은 대개 이 논리에 동의한다. 공교롭게도 변호사인 추미애 의원이 이끄는 기획단의 경찰 개혁안에는 경찰 수사권 독립 부분이 누락되어 있다.

비단 수사권 독립만이 아니라 경찰 중립화와 2원화 안도 몇 가지 관점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 두 안은 일본 경찰 제도를 모델로 작성되었다. 군국주의 일본은 미 군정 이후 국가공안위원회 제도를 도입해 경찰의 정치 중립화를 달성했다. 형식상 국가공안위원회는 총리대신 밑에 있으나, 총리대신은 국가공안위원장을 감독만 할 뿐 지휘하지 못한다. 이러한 통제 구조를 일본에서는 ‘소할(所轄)’이라고 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안전판이 추가되었다. 국가공안위원회가 국가 경찰을 ‘관리’만 할 뿐 지휘는 못하게 한 것이다. 이러한 구조이다 보니 일본 경찰은, 여당 실력자가 낀 독직(瀆職) 사건을 탐지해도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히 수사할 수 있게 되었다.

완충 기관을 두어 정치 세력이 힘 있는 기관을 장악하는 것을 막으려는 구도는 한국 행정부에서도 발견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군과 검찰인데, 한국은 대통령이 군(합참)과 검찰(대검)을 직접 지휘하지 않도록, 그 사이에 국방부와 법무부를 두었다. 대통령은 행정적으로는 국방부와 법무부를 통해 군과 검찰을 지휘하지만, 군과 검찰의 고유 업무에 대해서는 지휘할 수 없도록 해, 두 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완충 구조는 ‘눈 가리고 아웅’이다. 한국 국방부와 법무부에는 상당수의 장교와 검사가 파견되어 있다. 따라서 대통령은 군과 검찰을 사실상 직접 지휘할 수가 있다. 반면 일본 방위청과 법무성은 대부분 전문 관료들이 장악하고 있어, 총리가 장교와 검사를 직접 지휘할 방법이 없다.

경개위와 기획단의 경찰개혁안은 모두 국무총리실 산하에 국가경찰위원회를 두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무총리가 국가경찰위원회를 지휘할 수 없다’고 명문화하지 않았고, 국가경찰위원회가 국가 경찰을 ‘관리’만 하도록 규정하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무늬만 정치 중립’을 초래할 수가 있다.

93년 지방 자치가 실시된 것을 고려한다면, 경찰을 국가·지방 경찰로 2원화하는 안은 너무 늦게 채택되었다. 2원화를 위해 경개위와 기획단은 국가 경찰은 국가경찰위원회 산하로, 지방 경찰은 시·도 경찰위원회 산하로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시·도 경찰위원회는 국가경찰위원회에서처럼, 시장·도지사의 지방 경찰 장악 가능성을 차단하는 ‘소할·관리’ 구조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검·경 갈등 때문에 청와대로부터 논의 중단이라는 경고를 받기는 했지만, 경찰 개혁과 수사권 독립은 시대 변화에 발 맞추기 위해서 반드시 추진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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