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연말께 가동한다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2004.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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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 일정 남북 합의…시범단지 생산품 ‘남대문’에서 볼 수 있을 듯
활로를 못 찾아 헤매던 국내 중소기업들에 개성공단이 ‘희망의 땅’으로 성큼 다가왔다. 지난해부터 중소기업들 사이에 일기 시작한 개성공단 붐이 현실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지난 3월2일부터 5일까지 열린 제8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남과 북은 개성공단 개발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표에 합의했다(표 참조). 이같은 합의대로라면 늦어도 올 연말쯤 국내 중소기업이 개성공단 1단계 시범단지(1만평 규모)에서 생산한 제품을 남대문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시범공단 100 만평에 대해서는 내년부터 공사가 진척되는 대로 단계 별로 기업을 입주시키기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입주 시점만으로 볼 때 토지공사의 당초 계획인 2007년에서 적어도 2년 가까이 앞당겨진 셈이다.

정부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정부 내에서 개성공단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었다”라고 지적했다. 그같은 변화가 이번 남북간 합의를 계기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는 ‘패러다임 변화’의 사례로 1만평 규모의 시범단지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지난해 8월 중소기업 회장단의 개성 방문을 계기로 불거진 시범단지 조성 문제에 대해 정부는 그동안 마지못해 수용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해 왔다. 그러던 정부가 최근 들어 단순한 시범단지가 아니라 ‘시범공단 100만평 조성 사업의 1단계 공사’라는 식으로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정부의 인식 변화는 전력공급 계획 같은 공단 내 인프라 구축 문제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단순한 시범단지라면 발전기를 가지고 들어가 전력을 공급하는 수준의 발상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인천의 변전소에서 직접 송전하는 방식이 검토되고 있다. 1단계 시범단지를 전체 공단의 일부로 보고 인프라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공장 입주 시기를 내년으로 앞당기는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 내에서 이미 상당한 수준의 조율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지난 1월 초 토지공사가 주축이 되어, 2007년으로 되어 있는 공단 완공 시점을 앞당기는 문제가 본격적으로 검토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완공 시점을 2006년으로 1년 앞당기고, 내년 중 10만∼30만평 규모 단지를 먼저 조성해 입주시킨다는 방침이 어느 정도 세워졌다는 것이다. 이같은 정부의 변화에다 최근 북한측의 강력한 요구가 맞물리면서 전반적인 계획이 앞당겨지게 된 것이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개성공단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뜨뜻미지근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겉으로는 아니라고 부인하지만 북한 핵 문제와 연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제기될 정도였다. 그러던 중 지난해 중반을 지나면서 몇 가지 변화 요인이 발생했다. 우선, 국내에서는 더 이상 공장을 가동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중소기업들의 어려운 처지와 이에 따른 개성공단 진출의 시급성이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상층부에 전달되기 시작했다.

또한 북핵 문제를 둘러싼 긴장감이 지난해 8월 1차 6자 회담을 거치면서 완화되기 시작한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개성공단 문제를 부정적으로 보던 미국에 대한 설득이 지난해 하반기쯤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도 북핵을 둘러싼 분위기 변화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뒤이어 지난해 말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토지공사를 비롯한 개성공단 관계자들에게 “늦어도 2004년 하반기까지 개성에서 생산한 제품을 남대문시장에서 볼 수 있도록 하라”고 직접 지시했다. 노대통령의 직접 개입을 계기로 정부의 태도가 급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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