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중수부장 인터뷰/“독립 검찰 후퇴 없을 것”
  • 고제규 기자 (unjusa@sisapress.com)
  • 승인 2004.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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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희 대검 중수부장 인터뷰/“재계는 이제 중점 단속 대상”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막을 내렸다. 지난 10개월 동안 대통령 측근과 정치인, 재계 인사들이 연일 대검으로 불려갔다. 모두 40여 명이 사법 처리되었다. 검찰은, 그 동안 못본 척 피해오던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현직 대통령까지 자유로울 수 없는 불법 대선자금에 칼을 댄 것이다.

강골 검사 20여 명 등 모두 100명에 이르는 역대 최대 수사팀을 진두 지휘한 안대희 중수부장은 뉴스 메이커로 떠올랐다. 수사를 위해서라면 감기도 걸리지 말라고 엄명을 내릴 만큼 냉정하던 그였지만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는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정치적 논란이 일기는 했지만, 이번 수사로 검찰은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벗고 독립 검찰로 거듭나는 디딤돌을 마련했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이었다. 수사 기간 내내 재계를 향한 검찰의 칼은 무뎠다. 지난 5월21일 검찰은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례적으로 열한 장짜리 발표문을 배포했다. ‘수사 결과로 모든 것을 말하겠다’던 안중수부장이 읽어 내려간 발표문 대부분은 봐주기 수사에 대한 해명으로 채워졌다. 지난 5월24일 안대희 중수부장을 대검청사 703호 집무실에서 만났다.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화제다.
눈물까지 흘린 것은 아니다. 수사에 난관이 많았다. 국민의 지지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 홀가분한 마음에 잠시 어려웠던 순간순간이 떠올라 만감이 교차했을 뿐이다.

기업 총수 봐주기 수사였다는 비판이 거세다.
알고 있다. 그런데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겠느냐. 수사만 놓고 보면 100% 완벽한 수사는 없다. 수사는 증거법 상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증거 없이 짐작이나 심증만으로 기업 총수를 처벌할 수 없다.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수사를 하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기업 총수를 소환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평가하는 검찰 수사의 한계는?
나도 아쉬움이 남는다. 불법 정치자금 제공이 워낙 은밀하게 이루어졌다. 검찰이 추적하기 어려운 현금이나 채권 형태로 정치권에 건넸다. 일반적인 계좌 추적으로 도저히 밝혀낼 수가 없었다. 이번에 명동 사채 시장을 샅샅이 뒤졌다. 사채 시장이 무너진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철저하게 들여다보았다. 기업의 은밀한 거래로 검찰의 채권 추적 수사력이 향상되었다. 그렇게 해서 겨우 채권을 찾으면, 공여자가 입을 닫았다. 그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채권 수사 노하우 덕분에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을 찾을 수 있었다.

고비가 많았을 것 같다.
세 번 고비가 있었다. 지난해 11월3일, 대선자금 수사 확대 여부를 놓고 고민할 때가 첫 번째 고비였다. 사즉생의 각오로 결정을 내렸다. 12월29일 측근 비리 수사를 발표할 때도 사실 고비였다. 특검이 발의된 상황에서, 서둘러 수사했는데도 특검이 인정할 만큼 잘했다. 5대 기업이 노무현 캠프에 제공한 불법 자금 수사가 답보 상태일 때도 고비였다. 순간순간 힘들었는데, 가장 힘들었을 때는 아무래도 정치권이 터무니없이 비난할 때였다. 솔직히 화도 많이 났다. 나중에 세월이 흐르면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겠지라며 속으로 많이 삭였다.

검찰 수사로 대통령이 재신임을 받겠다고 했다. 탄핵 소추안에는 측근 비리도 포함되어 있다. 3월12일 탄핵 소추안이 발의될 때 심정이 어땠나?
장황하게 말하기 그렇지만,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일부에서 이번 수사와 탄핵 소추를 연계해서 난감했다. 더 말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앞만 보고 수사했다.

중수부장으로 있는 동안 검찰 조사를 받은 고위층이 잇달아 자살해 강압 수사 의혹이 일었다.
정몽헌 회장부터 박태영 지사까지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연쇄 자살만 놓고 보면 검찰 수사 방식에 의혹을 제기할 만하다. 그러나 이번 수사에 임하면서 수사팀에 내가 꼭 지키라고 요구한 게 있다. 피의자나 소환자에게 고성을 지르지 말고, 반말도 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알기로 수사팀은 이런 원칙을 잘 지켰다. 물론 검찰 수사력도 한 단계 발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수사팀 가운데 일등공신이 있다면?
누구 하나 흠잡을 것 없을 만큼 잘했다. 중수 1, 2, 3 과장과 이인규 원주지청장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남기춘 중수1과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살아 있는 권력인 측근 비리를 파헤쳤다. 유재만 중수2과장도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을 세련되게 잘 밝혀냈다. 김수남 중수3과장은 썬앤문 수사를 제한된 시간에서도 잘 매듭지었다. 이인규 원주지청장은 기업 수사의 보배다. 기업체 수사와 관련해 고비 때마다 그가 돌파해 주었다.

최종 발표에서 재계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경고성 발언을 했다. 일부에서는 기업의 아킬레스건을 검찰이 쥐고 있고, 조만간 수사에 착수한다는 말도 나온다.
분명히 조건을 달았다. 과거 불법 행위가 아니라 앞으로 발생할 불법과 탈법에 대해서만 원칙적으로 수사를 벌이겠다고 했다. 이번 수사가 정치권에 초점을 맞춘 수사여서 그렇지, 사실 재계도 피해자는 아니다. 부당 내부거래를 통한 변칙 세습 등 구린 데가 있으니 정치권 요구에 응한 것이다. 앞으로 중점 단속 대상임을 경고했으니 재계도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 결과가 중수부장을 따라 다닐 것 같다.
공직을 걸고 부끄럼 없이 수사했다. 그동안 가진 역량을 후배들과 호흡하며 발휘했다. 누가 중수부장에 오더라도 잘할 것이다. 한번 독립의 맛을 본 검찰이 다시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믿어도 된다. 이번 수사가 검사로서 사실상 마지막 수사로 남을 것이다. 검찰 인사가 나면 수사 일선에서 물러나 관리직으로 가지 않겠나?
조만간 검찰 인사를 앞두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장이나 법무 차관 등 하마평에 오른다.
인사와 관련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겠다. 장관과 총장이 결정하면 그대로 따르겠다. 솔직히 지금 나는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가 없는 처지다. 무슨 말인지 알지 않느냐. 특수부 검사로서 중수부장을 했으면 할 만큼 했고, 더 바라는 것도 없다. 작은 일에 만족하면서 살겠다.

최종 수사 보고를 강금실 장관에게 직접 했나?
따로 하지 않았다. 그 전에 보고한 적은 있다.

강장관이 무슨 말을 했나?
밝히기는 좀 그렇다. 특별한 언급이 없었다고 해두자.

지난해 말 <시사저널>은 안대희 중수부장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고 그의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했다(제738호). 그때처럼 그는 카메라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늘어난 흰 머리카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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