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전화 요금도 가격파괴를
  • 張榮熙 기자 ()
  • 승인 1995.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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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보원 ‘국제전화 요금 체계’ 문제제기 허와 실
지난해 한국에서 다른 나라로 건 국제 전화 건수는 1억 통이 훨씬 넘었다. 국제 전화 이용자는 88년 이후 연평균 25%씩 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최근 한국소비자보호원(소보원)이 제기한 `‘국제 자동전화 요금 체계의 문제점’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기본적으로 국제 전화에 이해 관계가 걸린 소비자가 많기 때문이다.

소보원은 소비자보호법에 따라 설치된 특수 법인이다. 소비자 이익을 향상시키는 것이 가장 큰 설립 목적인 이 기관이 언론을 통해 국제 전화 요금 체계의 문제점을 들고 나왔으니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사업자들 “변경해도 문제 없다”

소보원이 제기한 문제는 두 가지다. 현행 국제 자동전화 요금 부과 기준인 분 단위를 초 단위로 바꿔야 하며, 통화 대상국에 따른 요금 책정을 3개 대역에서 대폭 넓히거나 국가별 체계로 전환하라는 주문이다. 현행 체계로는 1초를 쓴 사람과 1분을 쓴 사람이 무는 국제 전화 요금이 같다. 또 1분1초를 쓴 사람과 2분 통화한 사람도 같은 요금을 적용받는다. 한국통신과 데이콤이 분 단위로 요금을 매기고 있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이런 불합리한 경우가 생긴다.

소보원의 문제 제기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전화 요금과 같은 서비스의 가치는 제공 받는 시간이나 질에 따라 재는 것이 합당하다. 이런 점에서 전화 요금을 매기는 단위는 세분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쓴 만큼 부담한다는 수익자 부담 원칙과도 일치한다. 1초~ 59초를 쓴 사람이 1분을 쓴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억울하다는 피해 의식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이다.

통화 대역도 이런 논리로 따져 볼 수 있다. 거리를 기준으로 한 현행 3대 대역(영국은 특수 대역으로 유럽과 별도 분리)에서 통화량이나 국가간 협정 요금 같은 요소를 고려해 잘게 쪼갠다면 국가간 특성을 고려하는 것이 된다.
소보원의 이강현 국장은 “이럴 경우 국제 자동전화 이용 횟수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22.4%)·일본(27.8%) 지역 소비자들은 가격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추정했다. `‘규모의 경제’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사실상 결정권을 가진 정부는 당장 고치고 싶어하는 마음이 없다(통신산업은 정부가 사업자 지정은 물론 요금 체계와 수준 같은 세밀한 부분까지 간여한다). 정보통신부 김동수 통신업무과장은 “초 단위보다 분 단위 체계가 소비자에게 반드시 유리하지는 않다”며, 실제 일본 등과 같이 1분을 10개로 쪼개 6초 단위로 부과하는 방식을 택할 경우도 30초 이내의 짧은 통화만이 이용자에게 다소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통화 대역 세분화 문제에 대해서도, 앞으로 통신 기술이 더욱 발달하면 시외 전화와 마찬가지로 통화 대역이 점차 축소되어 전세계 단일 요금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는 주장했다.

사업자인 한국통신과 데이콤은 현 요금 체계를 변경해도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초 단위로 전환하자는 주장은 89년에도 제기된 적이 있었다. 한국통신측은 당시 기계식 전화 가입자가 상당히 있는 데다가 기술적 어려움이 있어 보류했지만 현재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통화 대역의 경우도 86년 9월 이전에는 23개 대역으로 나눠 요금을 매겼다가 `‘인근 국가간 요금 차이가 심하다’는 호된 비판을 받고 현재의 3개 대역으로 축소한 것이라고 한국통신의 가재모 영업국장은 밝혔다. 또 데이콤의 한 관계자는 대역을 넓히는 것이 오히려 사업자에게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자동전화로 표준시간에 전화를 걸 때 최초 1분에는 1천1백50원이 부과된다. 이후 추가 1분(최초 1분 요금에서 25% 할인)에는 8백60원이 든다. 반면 6초 단위 체계인 일본에서 한국으로 걸면(KDD사 기준) 최초 1분간 2천8백62원이 들고 1분이 추가하면 4천3백36원을 부담해야 한다(3월8일 현재 1백엔당 8백67원 환율 적용). 일본이 한국에 비해 요금이 싼 구간은 24초까지다. 그 뒤부터는 일본이 비싸다.
체계 바뀌어도 소비자 혜택 안 커

이강현 국장은 현행 요금 체계가 소비자에게 절대적으로 불이익을 주기 때문이 아니라 불합리하기 때문에 소보원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의 과금 단위가 불합리한 측면이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요금 체계가 바뀌었을 때 소비자에게 주는 실질적인 혜택이 크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이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볼 필요가 있다.

자동전화로 3분간 미국에 전화를 건다고 할 때 표준 시간대인 주간에는 3천7백60원이 든다. 30% 할인 시간대인 아침이나 야간에는 2천6백30원이며 심야(50% 특별 할인 구간)에는 1천8백90원이 든다. 반면 미국에서 걸면 AT&T사 기준으로 각각 5천40원, 3천8백30원, 3천2백70원을 물어야 한다(다른 사업자인 MCI나 스프린트 등과는 1센트 정도의 차이이므로 무시할 수준이다).

한국의 사업자들이 그동안 몇 차례 요금을 인하한 까닭에 한국에서 거는 국제 전화 요금은 미국에 비해 싸다. 그러나 이들 국제 전화 회사로부터 국제 회선을 빌려 영업하는 미국의 재판매 회사들과 비교하면 한국의 요금은 싸지 않다. 비아텔이나 유에스에이링크 같은 재판매 회사들은 국제 요금의 카르텔 체제를 무너뜨린 주역이다. 이들은 국내에도 상륙해 한국통신과 데이콤을 위협할 기세다.

소비자들은 이용량이 많은 국가에 대해 사업자에게 지속적인 요금 인하 압력을 넣는 것이 현명하다.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전화 사업자를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미 한국의 소비자들은, 91년 12월에 데이콤이 한국통신의 독점 아성에 진출해 요금 인하와 서비스 경쟁이 촉발된 즐거운 경험을 갖고 있다. 그것이 바로 경쟁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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