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의 '옥토 점령 작전'
  •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 승인 2001.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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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토 내주고 노른자 땅 얻으려 치밀 준비…
국방부, 지자체 의견도 수렴 안해


중부 지방에 장대비가 쏟아진 지난 7월21일 오후, 김경호씨(46·가명)는 논일을 하러 갔다가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논에 빗물이 차오르는 것을 멀찌감치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김씨의 발길을 막은 것은 주한미군의 불발탄이었다. 주한미군은 훈련 중에 불발탄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농민의 출입을 통제했다. 경기도 파주시 스토리 사격장 부근에서 농사를 짓는 김씨는 "한두 번도 아닌데"라며 애써 담담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때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를 비롯한 스토리 사격장 일대 주민은 7월18일 발표된 연합토지관리계획(Land Partnership Plan)을 접하고 더욱 실의에 빠졌다.




지난 7월18일 한·미 양국은 2011년까지 주한미군 공여지 4천만평을 연차적으로 한국에 반환하고, 한국은 대형 기지 주변 토지 75만평을 사들여 미군에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군이 반환하기로 한 훈련장은 경기도 파주·동두천·포천 지역에 위치한 훈련장 세 곳(3천9백만평)과 서울·대구 등 기지 열다섯 곳(100만평)이라고 국방부는 밝혔다. 한·미 양국은 오는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최종적인 합의 각서를 체결할 예정이다.


국방부는 이 계획이 예정대로 추진되면, 전체 공여지 7천4백여만평 중 50%가 넘는 공여지를 돌려 받을 수 있다며, 주한미군 주둔 이래 가장 성공적인 협상이었다고 자평했다.




반환 협상 중인 미국 전용 공여지 현황(2000년)













































































지역 미군기지 및 시설 면적
원주 캠프 롱 726평
의정부 캠프 레드클라우드 1만1천54평
의정부 캠프 홀링워터 1만4천776평
의정부 캠프 라과디아 4만1천371평
인천시 부평구 캠프 마켓 1만7천626평
오산 비행장 7만8천948평
군산 비행장 52만평
대구 캠프 워커 2만5천60평
대구 보급소 2천859평
대구 공군기지 미군시설 7천555평
부산 캠프 하야리아 16만5천515평
부산 폐품처리소 1만500평
파주 불스아이 훈련장 2천750만평
동두천 짐볼스 공병대 훈련장 320만평



지난 7월18일 미군기지 반환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국방부가 구체적인 반환 예정지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국정감사 때 국방부는 주한미군과 반환 협상 중인 기지를 공개한 적이 있어 그 지역을 예상할 수 있다(14쪽 표 참조).


그렇다면 미군에게 추가로 매입해 주어야 할 75만평은 어느 지역일까? 이 가운데 일부는 주한미군 당국이 지역자치단체에 넌지시 통보하면서 드러났다. 그 중 한곳이 의정부시 캠프 스탠리 주변 토지 20만평이다.


현재 의정부시에 소재한 미군기지 시설은 10개로 68만평을 차지하고 있다. 그동안 의정부시와 의정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도시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의정부 역에 위치한 캠프 홀링워터와 의정부 가능동의 캠프 라 과디아를 이전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의정부시 관계자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이 두 기지를 반환하는 대신 의정부시 고산동의 캠프 스탠리 주변 20만평을 추가로 요구했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지목한 20만평은 캠프 스탠리 입구에 위치한 농지로, 법무부 소유다. 캠프 스탠리에 인접한 의정부 교도소의 재소자들이 노역장으로 사용하는 농지다. 주한미군은 민원 발생이 적은 이 농지를 지목해 국방부에 요구한 것이다. 주한미군이 얼마나 치밀하게 협상을 준비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의정부시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추가 매입지도 이처럼 민원 발생이 적어 국방부가 쉽게 매입해 줄 만한 지역을 고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권행근 국방부 용산사업단장은 "추가로 매입되는 지역은 농지·하천 부지·도시 외곽 지역이다"라고 밝혔다.


미군, 기지 이전 주도권 틀어쥐어




주한미군은 주도 면밀하게 기지이전 협상에 응한 반면 국방부는 해당 지방자치단체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아 빈축을 사고 있다. '주한미군공여지역 자치단체장 협의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이재용 대구 남구청장은 "기지 문제는 지역 발전과 직결된다. 지역 의견이 중요한데, 국방부는 지방자치단체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연합토지관리계획도 국방부가 아닌 주한미군 사령부가 일방적으로 지자체에 통보하기도 했다. 지난 6월28일 주한미군 사령부 관계자가 파주시청을 방문했다. 송달용 파주시장은 영문도 모른 채 이들을 맞았고, 미군측은 연합토지관리계획서를 송시장에게 보여주며 "주한미군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파주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를 이전할 예정이다"라고 통보했다.


주한미군은 이번 발표안을 다목적 카드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과 매향리 사격장 문제 등으로 거세진 반미 감정을 달래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 임시 공여지를 돌려주고, 대신 새로운 공여지를 요구하는 실속까지 챙겼기 때문이다. 만일 기지가 이전할 지역의 주민이 반발하면, 이를 내세워 기지 이전 계획을 철회할 수도 있어 주한미군으로서는 기지 이전에 대한 주도권을 틀어쥔 것이나 다름없다.


'의정부 우리땅 미군기지 되찾기 공동대책위원회' 이병수 집행위원장은 "미군기지 문제는 쓰레기 소각장처럼 내집 앞에 혐오 시설이 들어서는 님비 현상과는 다르다. 미군기지 문제를 지역 문제로 보아서는 곤란하다"라고 주장했다. 소파개정국민행동 김용한 집행위원장도 정부가 우리 땅을 무상으로 공여할 것이 아니라 계약 기간과 사용료를 명시해 협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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