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내몰린 위기의 검찰
  • 나권일 기자 (nafree@sisapress.com)
  • 승인 2002.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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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자 폭행 치사 ‘날벼락’ 일파만파…이명재 총장은 사표 제출



대통령 아들인 홍업·홍걸 씨를 사법 처리하고 ‘병풍’ 고비까지 무사히 넘긴 검찰이 ‘피의자 사망 사건’으로 날벼락을 맞았다. 이명재 검찰총장은 지난 11월4일, 서울지검에서 조사받다 숨진 조천호씨(31)의 사망 원인이 수사관들의 가혹 행위 때문인 것으로 드러나자 국민에게 사과하고 “책임을 지겠다”라며 사표를 제출했다. 이명재 총장의 사퇴 표명까지 부른 조천호씨 폭행 치사 사건은 검찰 수사관이 용의자를 마구 때려 숨지게 했다는 것으로 전근대적 악습이었던 ‘고문 치사’가 부활한 것이나 다름없다(20쪽 상자 기사 참조).


검찰 내부에서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분위기는 지난 11월1일부터 감지되었다. 살인 용의자 조씨의 ‘자해에 따른 뇌출혈’ 가능성에 무게를 두어왔던 검찰은 막상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구타에 따른 쇼크사’ 가능성을 통보하자 경악했다. 사법권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검찰청사 사무실에서 수사관들이 형사 사건 용의자를 때려 숨지게 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사태이기 때문이다.


김진환 서울지검장은 11월2일 오전 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사색이 된 얼굴로 ‘국민 앞에 사죄하며’라는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김지검장은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서울지검 청사에서 가혹 행위가 벌어지고 고귀한 생명이 희생된 데 대해 말할 수 없는 자책감을 느낀다며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이 날 오후 1시, 서울고검 출입기자들과 경기도 과천의 휴양림 산행을 계획했던 이종찬 서울고검장은 산행을 취소했다. 조씨 사망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박태종 대검 감찰부장은 간부들 처벌 수위나 국과수의 부검 내용을 먼저 알아내려는 기자들의 공세 때문에 퇴근도 못한 채 하루 종일 시달렸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이 날 검찰 수뇌부와 법무부장관 퇴진을 거론하며 압박에 나섰다. 결국 장고에 들어간 이명재 총장은 11월4일 오전 대검 확대간부회의에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라며 법무부에 사표를 제출했다.


이명재 총장은 ‘인권 옹호를 핵심적인 책무로 삼고 있는 우리 검찰의 청사 내 조사실에서 검찰 사상 초유의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이라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단으로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총장은 수사 담당 검찰 직원에 대한 특별 교육과 직무 감찰 강화 등 실현 가능한 종합 대책을 마련해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수뇌부 물갈이·홍검사 사법 처리 불가피


검찰 수뇌부가 직접 ‘폭행 치사’를 인정함에따라 검찰은 문책 인사와 인사 태풍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김진환 서울지검장은 물론 강력부 지휘 라인인 정현태 3차장 검사와 노상균 전 강력부장도 경질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수사관들의 구타 행위를 눈감아준 혐의를 받고 있는 홍경령 주임검사에 대해서는 ‘일벌백계’에 따라 사법 처리(구속)가 예상되고 있다.


조직의 수장이 사표를 제출할 정도로 유례 없는 파장을 겪고 있는 검찰이지만 정작 검찰 내부는 이번 사건을 우발적인 ‘악재’로 보는 시각이 우세해 ‘사태 인식이 안이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김진환 서울지검장은 11월2일 “직원들이 의욕이 지나쳐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다”라며 국민들에게 관용을 호소했다.


일선 검사들의 시각 역시 김검사장과 다르지 않다. 한 강력부 검사는 “이번 사건을 빌미 삼아 검찰을 몰아세운다면 앞으로 어느 검사가 조직폭력배를 잡으려고 갖은 고생을 하겠느냐”라며 검찰에 대한 여론의 뭇매에 서운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검찰 밖의 여론은 내부 분위기와는 판이하다. 당장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박재승)는 지난 11월1일 성명을 내고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검찰의 비인권적 수사 구조와 체질화한 관행에서 필연적으로 야기된 결과이다”라고 지적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검찰이 인권 침해를 제도적으로 감시할 수 있도록 감독 기능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검찰을 상대로 싸우겠다고 밝혀 검찰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경실련 정책실 김미영 간사는 “사람이 죽었는데도 검찰은 일선 검사들의 무력감이나 좌절감에 더 신경 쓰고 있다”라며 검찰의 진심 어린 반성을 촉구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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