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용 미싱’ 발언 김홍신 의원 법정에 서나
  • 吳民秀 기자 ()
  • 승인 1998.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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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 의원 ‘미싱 발언’ 싸고 사법처리 공방… 정치적 해결 ‘미덕’ 실종 아쉬움
또검찰이다.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하는 정치의 본래 기능은 마비된 것일까. 이번 지방 선거에서도 여야 정치권은 서로 무더기 고소 고발전을 벌였다. 선거철이면 늘상 벌어지는 일이지만, 여하튼 정치권은 자신의 문제로 사법 당국에 ‘처분’을 의뢰하는 추한 꼴을 재연하고 있다. 현재 여야가 검찰로 끌고 들어간 사건만 해도 줄잡아 수십 가지.

이번에는 ‘설화(舌禍)’까지 사법 당국의 도마에 올랐다. 한나라당 김홍신 의원의 이른바 ‘공업용 미싱 발언’ 파문. 대통령의 입을 공업용 미싱으로 드르륵 박아야 한다고 했으니, 정부와 여당이 흥분할 만도 했다.

지난 5월27일 경기도 시흥 한나라당 정당연설회에서, 현정권을 비판하던 김의원은 시중의 우스갯소리라며 느닷없이 ‘염라대왕의 바늘 뜸’을 인용했다. 문제가 된 발언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살아 생전에 거짓말 많이 하고 나쁜 짓 많이 하면 죽어서 염라대왕이 잘못한 것만큼 바늘로 한뜸 한뜸 뜬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 임창렬 후보는 아마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면 거짓말도 많이 하고 너무 많은 사람을 속였기 때문에, 바늘로 뜰 시간이 없어 공업용 미싱으로 드륵드륵 박아야 할 것이다.’ 아무리 비유라 해도 고약한 언사였다.

김홍신 의원 “지방 선거 뒤 검찰 출두 여부 결정”

정부와 여당이 격분한 것은 당연했다. 조세형 총재권한대행은 즉각 “우리는 이번 일을 절대 묵과하지 않겠다. 김의원을 반드시 제명하겠다”라고 말했다. 국민회의는 자민련과 함께 5월28일 김의원에 대한 징계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고, 김의원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박지원 청와대 대변인은 “대단히 불쾌하다. 당이 적절한 조처를 취하고 있다”라며 유감을 표시했다.

검찰의 대응은 재빨랐다. 서울지검 공안1부는 김의원에게 6월1일 오후 2시까지 출석하라며 소환장을 보냈다. 김의원 발언 녹음 테이프를 정밀 분석한 검찰은, 형사 처벌이 가능하다는 내부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검찰이 검토하고 있는 사법 처리 대목은 명예훼손 및 국가 원수에 대한 비방 혐의.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법원에서 무죄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기소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언론에 과시하기도 했다.

한나라당과 김의원은 매우 곤혹스런 표정이다. 5월29일 한나라당 총재실. “미싱을 보낼 테니 김홍신 의원 입부터 꿰매라.”(한 시민) “기왕 보내려면 공업용으로 보내라.”(총재실 직원)는 식의 공방전이 연출되었다. 실제로 28일 의원회관 김의원 방에 가정용 미싱이 배달되었고, 29일에는 경남 사천의 한 시민이 공업용 미싱을 전달하기 위해 상경했다. 김 철 대변인은 28일 “시중의 우스갯소리로 비유를 하더라도 국가 원수에 대해서는 신중했어야 했다”라고 유감을 표시했다.

현재 김홍신 의원은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칩거 상태에 들어갔다. 그는 <시사저널>과의 전화 통화에서 “지나친 발언이었다. 본의 아니게 물의를 일으킨 점 국민에게 사과 드린다. 앞으로는 신중하게 처신하겠다. 의정 활동에 전념하는 것만이 국민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는다. 다만 소설가이자 야당 정치인으로서 정부와 여당에 대한 준엄한 비판은 계속하겠다”라고 밝혔다. 김의원은 또 “검찰 출두 여부는 지방 선거가 끝난 뒤, 당 지도부·동료 의원들과 상의해서 결정하겠다”라고 말했다.

현재 여권의 결기로 보아, 검찰의 사법 처리 방침은 확고해 보인다. 정치적 판정승으로는 성이 안차, 아예 상대방을 때려눕혀 KO승을 거둬야만 분이 풀린다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법정으로 가더라도, 명예훼손 및 비방 혐의의 범죄 사실 구성 요건으로 보아 김의원이 언급한 ‘DJ의 거짓말’이 사실이냐 아니냐 여부와, 이 점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공익에 부합하느냐 여부를 놓고 법정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정치인의 발언에 법의 칼을 대는 것이 바람직하느냐 하는 논란은 별개 문제다. 미국 공화당 소속 깅그리치 하원 의장은 최근 중동 평화협상 문제와 관련해 “클린턴은 이스라엘의 등을 치고,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팔레스타인 첩자 노릇을 하고 있다”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또한 공화당 소속 두 의원은 클린턴을 각각 ‘쓰레기 같은 인간’‘골 빈 대통령’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백악관이나 정부 여당이 유감을 표시했다는 얘기는 있어도, 발언자를 검찰에 고발했다는 소식은 없다. 오직 저질 발언을 한 정치인의 지적 수준과 교양이 의심받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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