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자동차산업 메카에 가다
  • 프랑스 릴르·蘇成玟 기자 ()
  • 승인 1999.12.16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 자동차산업 메카로 떠올라… 분야별 연구실 2백50여개
뤽베송이 주연한 프랑스 영화 〈택시〉(감독 제라르 피레)를 보면 주인공 다니엘(사미 나세리)이 운전하는 승용차 푸조가, 독일인 은행 강도단이 몰고다니는 벤츠와 경주를 벌여 벤츠를 보기 좋게 따돌린다.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벤츠를 꼼짝없이 누르는 푸조의 강력한 힘에 프랑스를 제외한 나라의 관객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국산 자동차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PSA 푸조 시트로엥 그룹’의 로베르 푸조 이사는 영화 〈택시〉가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 대목에 푸조를 넣어도 사실성에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PSA그룹은 영화 〈택시〉 제작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반 프랑스인들 또한 푸조나 시트로엥·르노 같은 프랑스 대중차의 품질이 벤츠나 BMW 같은 독일의 고급차에 비해 별로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자동차 성능을 결정하는 요소는 부품이며, 프랑스 자동차들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자국산 부품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자동차산업은 연평균 50억 달러의 순이익을 내는 효자 산업이다. 프랑스 자동차 부품 설비 산업의 매출 규모는 연평균 1백70억 달러가 넘는데, 그 가운데 수출이 36%를 차지한다. 프랑스산 자동차 부품의 주고객은 독일(전체 수출량의 20.4%)·스페인(20%)·영국(9.9%) 순이다.

유럽연합, 개발 기금 7천2백억원 투자

프랑스 자동차 부품 산업의 메카는 ‘노르-파 드 칼레(Nord-Pas de Calais)’이다. 노르-파 드 칼레는 ‘노르(Nord)’ 주와 ‘파 드 칼레(Pas de Calais)’ 주가 합쳐진, 오각형 형태인 프랑스에서 북쪽 꼭지점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노르-파 드 칼레의 면적(1만2천5백㎢)은 프랑스 전체의 2%에 불과하지만, 인구는 전체 인구의 7%가 몰려 있는 산업화 지역이다. 일본·미국·독일에 이어 세계 4위 승용차 생산국인 프랑스에서도 노르-파 드 칼레는 지난해 국내 전체 생산량의 16%(57만대)가 넘는 제품을 생산했다.

‘손발이 맞아야 장사를 해먹지’라는 불만은 적어도 노르-파 드 칼레 같은 곳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대학 혹은 기술 연구소와 자동차 부품 업체 간의 ‘산학 협동’은 물론 생산 업체들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노르-파 드 칼레에서 연구 분야 별로 분산되어 있는 자동차 기술 센터 4곳이 그 대표적인 예다. CREPIM(화재 예방)과 IEMN(전자), C3T(육상교통연구소;소음·진동 경감 및 안전)와 그를 돕는 CRITTM2A(엔진 기술 및 소음 방지)는 모든 대학과 자동차 관련 업체에 개방되어 있으며, 전문 연구원이 4백여 명에 달한다. 자동차 기술 연구소들은 정부 단체 GRRT(노르-파 드 칼레 지역 교통 연구 단체)의 지원과 협조 아래, 연구소끼리는 물론 대학 연구 기관들과도 활발히 교류하며 작업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GRRT 프란시스 왈라 대표는 “자동차 기술 연구소들은 매우 강력한 인트라넷 시스템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연구소를 활용하고자 하는 노르-파 드 칼레 지역 기업들은 언제 어디에서나 공동으로 연구 시설과 인력 들을 활용할 수 있다”라고 밝혔다.

노르-파 드 칼레의 연구소들이 이처럼 공동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는 것은 공적 자금이 투입되어 건설되는 덕택이다. 이 지역 서부 도시인 발랑시앙에 위치한 연구소 C3T의 본관 건물 입구에는 건설 재원이 그대로 공개되어 있다.

건물 신축과 장비 구입에 들어간 전체 예산 4천6백2만 프랑(약 83억원) 가운데 유럽연합(EU) 기금 2천7백30만 프랑(약 49억원), 노르-파 드 칼레 지역 의회 기금 1천4백70만 프랑(약 26억원)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지역 예산이 많이 투입되는 이유야 자동차산업이 노르-파 드 칼레의 가장 큰 젖줄이기에 그렇다 치자. 유럽연합이 전체 규모 40억 프랑(약 7천2백억 원)에 달하는 거액을 개발 기금으로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동차 관련 기업 1백50여개… 특수 공과대 23개

그 까닭은 노르-파 드 칼레가 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광산업·섬유업 등 전통 산업을 위주로 한 저개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70년대 이후 산업 합리화 바람이 불어닥치면서 노르-파 드 칼레는 자동차 및 전자·통신 산업을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다. GRRT 소속인 필립 리고 씨는 “유럽연합의 지원금이 공짜는 아니다. 회원국들이 자기 예산의 3∼5%를 내어 모은 기금이므로 공공 부조 형식으로 활용하는 것일 따름이다”라고 밝혔다.

노르-파 드 칼레에는 현재 1백50여 개 자동차 관련 기업에서 4만 명이 넘는 직원이 일하고 있다. 노르-파 드 칼레의 중심 도시인 릴르를 중심으로 대학교가 7개, 특수 공학 단과대학(에콜)이 23개 그리고 분야별 연구실 2백50여 개에 연구원만 6천여 명이 종사하고 있다. 이 지역에 대한 국가적 지원은 프랑스 자동차산업을 장차 세계 정상권으로 발돋움시키기 위한 장기 포석이다. 뛰어난 완성차를 생산하려면 부품이 훌륭해야 하고, 우수한 부품을 만들려면 그에 합당한 기술 지원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체계적이면서도 강력한 정부의 지원 아래 체질 개선을 꾀해온 결과, 노르-파 드 칼레는 이제 외국 기업까지 투자하러 몰려드는 세계 자동차산업의 요람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혈연·지연 등을 통해 완성차 회사에 독점 납품하는 대신 그에 예속되는 자동차 부품 업체들. 완성차 업체가 흔들리면 연쇄 도산을 피하지 못하는 취약한 산업 기반. 그같은 현실을 개선해 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부. 프랑스 자동차산업은 그런 한국이 벤치 마킹할 본보기가 될 만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